37년간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다. 바로 아름다움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동유럽의 보석 프라하로의 여행이다.
비행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비즈니스석에서 편안한 비행은 특별했다.
웰컴드링크로 시작하여 플라잉 쉐프가 정성껏 제공해 주는 코스요리를 즐기며 베딩 서비스 덕분에 아늑한 잠자리를 누렸다. 승무원의 세심한 체크와 친절한 서비스가 여행의 시작을 풍요롭게 열어주었다.
보헤미아왕국의 수도로 1000년의 세월을 품은 고색창연한 프라하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문화유산과 낭만이 깃든 예술과 역사의 보고寶庫이다.
눈앞에 전개되는 예스러운 건축물들에서 중세의 숨결에 휩싸인다. 블타바강이 도시 중앙을 흐르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자연스럽게 나눈다.
수많은 예술가가 사랑했던 이 도시는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낭만의 스튜디오이다. 그런 곳을 낭군과 함께 걸을 수 있어 더 특별하다.
이미 한번 다녀온 곳이지만 프라하의 구석구석 배어있는 중세의 신비로움과 낭만 속을 거닐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구시가지 광장으로 들어갔다. 유구한 역사의 숨결을 머금은 이곳은 현대와 중세가 공존하는 프라하의 심부深部였다. 여행의 중심지이자 시작점인 광장에 서니 여행 세포들이 스멀스멀 열린다.
프라하의 예술이 농축된 이 광장은 여행의 발판이었다. 중세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여기에 서 있기만 해도 유럽의 향취가 온몸을 감싼다.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로마네스크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은 프라하 역사, 예술의 증인들이다. 서양 건축의 박람회장을 방불케 한다.
광장 한가운데 체코의 종교 개혁자이고 민족운동 지도자인 얀 후스 동상의 위상이 광장에 가득 차 있다.
시즌마다 열리는 시장과 다채로운 이벤트, 거리 곳곳에서 혼신의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로 광장은 생동감이 흐른다. 온갖 예술로, 낭만으로 가득 찬 이 광장은 프라하 사람들의 삶의 근거지이자 아이덴디티를 품고 있다.
여행객을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는 올드카와 마차, 그리고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에서는 중세의 낭만이 되살아난다.
광장에서 가장 고고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쌍둥이 첨탑의 성당이 시선을 잡는다. 80m의 첨탑 2개에 4개의 작은 첨탑이 하늘을 우러르며 광장을 거룩하게 밝힌다.
좀 더 높은 첨탑은 아담, 낮은 첨탑은 이브라 한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화려하면서 정교하다. 예수가 사용했던 황금 술잔을 녹여서 만든 첨탑의 성모 마리아상이 광장의 여행객을 굽어보며 축복을 내린다.
유럽의 보도블록은 묘한 매력이 있다. 수많은 여행객이 디디고 간 반들반들한 길이 언제부턴가 여행의 한몫을 단단히 한다. 골목골목을 탐미하며 걷기만 해도 그저 좋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빽빽이 들어선 광장에서 수많은 여행객을 열광시키는 것은 구시청사이다. 구시청사 벽에는 600여 년 잘 보존되어 온 중세의 유물이자 보물이 걸려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금도 작동하는 시계이다. 이 명물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몰려온다. 위쪽 시계는 천동설을 기반으로 천체의 움직임과 시간을 보여준다. 아래쪽에는 열두 개의 별자리와 1년 열두 달 농사법을 그려놓은 달력이 있다.
매시 정각만 되면 아름다운 천문시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계 인형들이 20초동안 펼치는 짧은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도무蹈舞하듯 넋을 잃고 바라본다.
죽음의 때를 알리는 해골 조각상이 종을 치면, 양옆에 탐욕과 허영에 찬 인형들이 운명을 거부하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어 창문이 열리면 예수의 열두 제자가 삶의 의미가 담긴 물건을 들고 행진한다.
매시 반복되는 이 짧은 마법 같은 공연은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늘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구시가 광장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란츠 카프카가 태어나 자라며 문학의 꿈을 키워간 곳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유명한 ‘뜨르들로’ 라 하는 굴뚝빵에 토핑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골목마다 남아있는 카프카의 흔적을 따라가 걸었다.
카프카의 얼굴을 형상화한 거대한 움직이는 조형물이 보였다. 진짜 대단한 상상력으로 문학의 지평을 연 카프카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블타바강 건너 신시가지로 향하니 프라하성 뒤편에 황금소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16세기 연금술사들이 거주했던 이 좁은 골목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특유의 신비로운 기운이 스며있다. 이 유니크한 바이브에 매료되어 예술가들의 발길이 멈추질 않는단다.
프란츠 카프카도 역시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 ‘城’을 저술하였다. 그의 작업실이었던 22호 집은 천장이 너무 낮고 협소해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힐 듯했다.
지금은 작은 기념품 가게로 변해 카프카의 굿즈를 사기 위해 여행객들이 쉼 없이 들락거리나, 여전히 그 작은 공간에는 집필에 집중한 카프카의 숨결이 고요히 담겨있다.
체코의 국가적 상징물인 프라하성은 명성만큼 여행객들이 들끓는다.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왕과 황제가 머물렀던 이곳에는 체코 대통령의 직무실이 있다.
특히 성 중심부에 우뚝 솟은 성 비투스 대성당은 무려 천년에 걸쳐 완성된 건축물이다. 그 위엄이 하늘을 찌를듯하다.
고딕양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높이가 33m나 되는 특유한 천장과 파사드의 정교한 조각,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채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예술적 분위기 속에 경건함과 숭고함이 흐르고 있다.
프라하의 보석이라 불리는 이 성당은 블타바강 건너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웅장하며 체코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다.
혁명 히스토리를 품은 바츨라프 광장에 들어서자, 젊은 청춘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광장 한가운데는 체코의 수호신이자 국민적 영웅인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위용을 드러내며 서 있다. 그 옆에 있는 체코 성인 4명과 함께 이 나라의 신앙과 자부심을 구현한다.
초대 군주였던 바츨라프 1세는 사후 성인으로 추앙되어 체코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1968년 체코인들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이 바로 바츨라프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뜨거운 열망은 구소련의 무자비한 침공으로 짓밟히고 말았다.
프라하의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한 소련의 침공 소식은 전 세계를 뒤흔든 뉴스가 되었고, 이 광장은 역사 속의 상징적인 장소로 남았다.
프라하는 그냥 여행을 즐기기만 할 도시가 아니다. 체코인들을 비극으로 빠지게 한 바츨라프 광장을 걸어 내려오다 보면 자유를 갈망했던 청춘들의 희생이 떠올라 코끝이 찡하고 숙연해진다.
지금의 광장은 프라하 교통문화의 집약체인 최고의 번화가로 늘 많은 인파로 북적북적한다.
저녁 식사를 위해 찾은 체코 정통 레스토랑에는 옛 풍취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고풍스러운 실내에서 관후寬厚한 중년 신사들로 구성된 악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객들을 위해 각 나라의 곡들이 차례로 흘러나왔다.
그때 익숙한 선율이 들려왔다 — 우리나라의 ‘아리랑’이었다. 애잔한 곡조가 울려 퍼지고, 이어서 ‘바위섬’이 연주되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그러자 바이올린을 켜던 악사가 내 앞에 다가와 열정적으로 연주했고, 나도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프라하 사람들과 함께한 저녁 식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천문시계탑이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현재를 직시하라. 그리고 즐겨라.”
해 질 무렵 빼놓을 수 없는 프라하의 야경을 보러 나섰다. 카를교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의 불빛은 로맨틱하고, 그 풍경에는 고요한 기품이 깃들어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밤 풍광에 숨이 멎는 듯했다.
카를 4세가 온갖 토목 기술을 동원해 만든 카를교는 S자 모양으로 굽이치는 블타바강을 가로질러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이어준다. 그 자체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 불릴 만하다.
다리 위에는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 속에서도 거리 악사들의 품격 있는 연주가 울려 퍼지고, 화가들은 여행자들의 초상 속에 프라하의 빛을 그려내느라 여념이 없다. 보헤미안의 애환이 깃든 랩소디가 여전히 귓가에 흐른다.
17세기, 카를 4세의 명으로 세워진 다리 위의 조각상들은 프라하의 역사를 말없이 대변하고 있다. 성서 속 인물들과 체코의 성인 등, 모두 30인의 석상이 다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이 모이는 곳은 성 요한 네포무츠키 상 앞이다. 바람을 피운 왕비의 비밀을 끝내 밝히지 않아 혀가 잘린 채 강물에 던져져 순교했다는 전설의 성인이다. 그의 순교 후, 머리 위에 다섯 개의 별이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동상 아래의 부조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면 행운이 온다는 구전으로, 수많은 여행자의 손길로 그 부분은 반질반질 윤이 났다.
우리도 그곳에 조심스레 손을 얹고, 남은 인생의 고요와 평안을 주문하였다.
중세의 도시가 마법처럼 반짝이는 밤,
낭군과 함께 카를교를 걸으며 우리가 함께 엮어온 이야기 또한
이 밤처럼 아름답게, 영원히 남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