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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by 파묵칼레

밀라노까지 직항편이라 마음은 한결 편했다. 승무원은 식사 때를 거르지 않고 어김없이 지킨다.


간밤에 잠을 설쳤는데도 사람이 만든 가짜의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군데군데 나같이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 프로그램을 뒤적거려보았다. 이것저것 처음 부분만 보다가 이내 꺼버린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적막감이 감도는 가운데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12시간을 비행하여 밀라노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묘한 설렘에 휩싸였다.

이탈리아의 경제, 예술, 패션의 메카인 밀라노 시내로 걸어 들어갔다. 도심 곳곳에 화려한 패션 광고 간판이‘여기 밀라노다’하고 우뚝 서 있다.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는 곳임이 실감 났다. 유럽으로 가는 관문 밀라노의 처음 느껴진 인상은 생동감 그 자체였다. 가방을 들러메고 밀라노 속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재촉했다.

두오모 광장 한복판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두오모, 스칼라, 비토리오 임마누엘레가 모여 있는 곳이다.


밀라노는 해발 122m의 롬바르디아주 중심에 있는 경제, 문화의 핵심지이다. 패션뿐 아니라 음식, 오페라, 건축 등으로 명성이 높다.


여행의 시작점인 두오모 광장에는 제각기 설렘을 안고 많은 여행객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탈리아 고딕 건축의 정수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관에 넋이 나갔다.


수천 개의 조각군들로 섬세하게 장식이 되어 있으며 135개의 첨탑이 하늘로 치솟아있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길이 157m 높이 108.5m로 제일 높은 첨탑에 황금 마리아상이 있다. 어느 쪽에서 봐도 화려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리석으로 가득한 경이로운 모습은 보면 볼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높고 화려한 천장은 웅장하다 못해 엄숙하였다. 곳곳에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벽면에는 이곳을 지켜온 인물들이 돌로 된 관에 안치되어 있다.


두오모 광장 한가운데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인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동상이 서 있다. 사방에서 탄성 소리와 함께 사진 찍는 즐거운 모습을 보며 한걸음 물러서서 밀라노를 상징하는 고딕 건축의 진수를 다시 느껴본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멋진 건물을 뒤로하고 다음 명소로 발길을 옮겼다. 두오모 광장과 스칼라 극장을 이어주는 세계 최초 아케이드형 쇼핑센터,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이다.


굉장한 규모의 아케이드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와 유명 브랜드의 명품 숍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1년 내내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의상과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품의 디자인이 독특하고 화려하며 가격도 만만치 않다. 독특하게 진열이 된 상품들과 개성 넘치는 디자인,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이곳이 진정한 패션 스폿이고 밀라노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천천히 탐미하며 둘러보았다.

고개를 꺾고 바라본 아케이드 천장은 유리로 되어 있었고 격자 모양의 아치와 둥근 지붕의 조화에 웅장함이 서려있다.


천장 주변은 프레스코화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고 바닥은 화려하게 타일 모자이크가 깔려있다. 특히 황소 그림 모자이크의 특정 부분을 밟고 한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서 서있다. 우리도 재빨리 대열에 합류했다.


갤러리아의 상점마다 개성과 휘황찬란함을 드러내어 눈 돌릴 겨를이 없다. 며칠 머무르면서 구경해도 부족할 것 같다.

볼거리가 너무 많아 돌아다니다 보니 금세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그 유명하다는‘파스티체리아 마르케지’카페를 찾아갔다. 역시나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1824년부터 이어져온 이곳은 레트로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녹색 계열의 벨벳 소파와 쇼케이스에 달콤함으로 입맛을 당기는 케이크와 쿠키의 비주얼에 반했다.


우리는 라테와 초코를 주문했다. 그윽한 향이 코끝에서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힘이 솟고 정신이 맑아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갤러리아의 화려한 조명들이 한층 더 특별하게 와 닿았다.

아케이드를 쭉 걸어 나와서 세계적인 오페라의 메카, 스칼라 극장에 갔다. 파리, 비인과 더불어 유럽 3대 오페라 하우스라 불리고 세계의 음악을 이끌어가는 곳이다.


1778년에 세워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1946년에 재건되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지만 3,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내부는 검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극장의 품격을 한껏 드높인다.


베르디, 로시니, 푸치니 등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들의 작품을 초연했던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성악가 조수미의 공연 무대였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했다.


공연 일정을 맞추지 못해 관람은 못하여 아쉬웠다. 지금도 유명한 음악가들이 이 무대를 거쳐 갈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위엄이 있고 명성이 대단하다. 예술 감성이 솟구치는 공간이다.

커피에 자부심이 대단한 이탈리아에 처음 들어온 밀라노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가 궁금하였다. 고풍스러운 외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입구에 깔끔한 차림의 가이드가 인원을 컨트롤하며 입장시켰다. 안으로 들어가자 웅장한 규모와 장식의 화려함에 놀랐다. 매장은 발 디딜 틈새 없이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쳤다.


이곳은 스페셜 한 원두를 비축했다가 리저브 매장에서만 한정 판매한다. 일반 매장과 차별화된 볼펜, 의류, 에코 백, 스탠리 텀블러, 머그컵 등에 세이렌 로고가 들어간 다양한 MD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인의 입맛에 걸맞은 다양한 빵과 케이크류, 피자 등 디저트류를 판매하여 구경하는데 온통 정신을 빼앗겼다.


매장 가운데 거대한 로스팅 기계가 자리하고 있고 로스팅된 원두가 천정의 배관을 통해 이동하는 장면이 흥미로워 한동안 바라보았다. 전광판에는 실시간으로 로스팅되는 커피의 정보가 흘러내렸다. 마치 학교 과학실 같은 분위기였다.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커피 향에 더 매료되었다.

회색 구름이 낮게 드리운 두오모 광장으로 나가서 나도 모르게 서성거렸다.


한산해진 광장의 차가운 공기가 손을 내민다. 잠시 밀라노의 특유한 감흥을 새겼다. 아쉬움을 안고 발걸음을 떼었다.


패션의 화려하고 섬려함이 뒤섞인 밀라노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요동친다. 밀라노에는 말로 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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