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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그곳에 가다

by 파묵칼레

세월은 그저 무심할 따름이다. 40년이 훌쩍 지난 근무지를 오늘 지나는 길에 들렀다.

옛 생각에 젖은 나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서서히 눈길을 돌려본다.

학교로 들어가던 산골짝 오솔길은 온데간데없지만 희미하게 윤곽은 있었다. 그 희미함이 반갑고 고마웠다.

예전에 삼거리였던 버스 타던 곳에 작은 가게가 딸린 집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그 위에 아스팔트가 덮어지고 작은 공장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차를 타고 좀 더 들어가니 옛 자취를 조금 느낄 수 있는 길이 나왔다. 학교로 진입하는 길이다.

낯익은 학교 모습에 코끝이 찡하였다. 학교는 학생 수가 점점 줄어 분교장으로 바뀌었다.

운동장은 예전 그대로이나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그늘을 만들어주던 낙엽수들의 자취는 온데간데없고 황량하기만 했다. 공사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랑하는 **국민학교 제자들의 함성이 운동장 가득 아직도 고여있다. 가슴이 뭉클하였다.


건물 주변을 돌아봤다.

아,

'독서하는 소녀'

이 동상이 아직도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긴 세월 속에 칠이 벗겨지고 온갖 풍상에 얼굴 모습이 희미하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만져보고 핸드폰에 담았다. 교정의 나무들이 세월이 많이 흘러갔음을 알려준다. 줄기가 굵고 단단하게 큰 나무들이 되었다.


체육 창고와 숙직실 건물이 옛 모습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너무 반갑고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 시절 학교 주무관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분들이다.

더운 여름에 아이들과 체육 창고 정리하던 일, 가을이면 낙엽 줍고 쓸고 하던 일, 겨울이면 솔방울 주워 쌓아 놓던 일 등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추억이 있는 학교이다.

학교앞 버스에서 내려 정문을 들어서서 내려오던 약간 비탈진 통로가 지금은 계단으로 단장이 잘 되어있다. 나를 기다리며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함박웃음으로 맞이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복도 창가에 그려진다.

단단한 파이프로 만든 학교 교문에 **초등학교 분교장이라는 교명이 눈에 띄었다.

교문 바로 옆에 그 시절 아이들의 참새방앗간이 있었다. 학생들이 군것질할 수 있던 유일한 곳인 문구점이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지붕이 녹이 슬어 삭아서 떨어지고 담벼락이 무너지고 문은 굳게 닫혀있다. 가슴 한쪽이 쓸쓸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되었다. 운동회 연습이 끝나고 아이들과 아이스크림 사 먹으며 행복해하였던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옛 출근길을 떠올리며 다시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보았다. 재잘재잘 초롱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 듯하여 한참을 서서 텅 빈 창가를 바라보았다.

교무실에 가보니 풋풋하고 단정한 선생님 3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의 그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 친절하고 공손한 선생님들은 음료수를 건네며 학교를 천천히 둘러보라고 하였다.

내가 2년간 지냈던 교실로 가보니 수업 중이었다. 학교 건물은 규모는 그대로이나 최신식 기기와 인테리어로 리모델링되어 있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좀 아쉬웠다.

그 교실에서 난 너무 행복했었지. 호기심이 많고 의욕이 넘치던 아이들은 천사였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내게 축복처럼 다가온 아이들이다.


현관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구령대가 보였다. 운동회와 야영, 체육 등의 나의 열정이 담긴 무대였다.

야영하던 날, 달빛 아래 아이들과 함께 '칭기즈칸“곡에 맞추어 춤을 추었던 한여름 밤이 스쳐 간다.


들꽃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운 아이들과의 찬란한 추억의 장을 한장씩 넘기며 천천히 교문을 나섰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참, 순수하고 멋진 제자들이다.


오늘도 너희들의 안녕을 빌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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