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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역사의 시발점 기마랑이스

by 파묵칼레

기마랑이스는 포르투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걸린다. 엽서 속의 한 컷 그림을 보고 꽂혀서 찾아간 곳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포르투갈 건국의 출발지로 포르투갈을 떠받쳐 주는 부모 같은 도시이다.


십자군에 의해 세워진 포르투갈은 이베리아반도에서 무슬림을 몰아내는데 공로가 큰 전사 엔히크가 1096년 백작으로 애대되면서 시작된다.


1112년 엔히크가 죽은 후 백작 부인 테레사가 섭정을 맡고 그의 아들인 아폰수 엔히크가 성장하여 포르투갈 왕국을 세우면서 부르고뉴왕조가 확립된다.


초대 왕 아폰수 엔히크는 기마랑이스를 수도로 하고 정치, 군사력을 확장하였다. 코임브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40여 년간 왕국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데 이곳은 요지 역할을 했다.


중심가에 들어서면 성벽에 ‘AQUI NASCEU PORTUGALl’ ‘포르투갈은 이곳에서 탄생했다‘ 는 글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포르투갈 초대 왕 아폰수 1세가 왕위에 오르고 기념하기 위해 새긴 문구이다. 포르투갈의 시작이며 최초의 수도임을 기념하기 위해 벽에다 새겨 붙인 기마랑이스 시민들의 자긍심인 듯하다.


허름한 회색 건물이 있어 들어갔다. 아폰수 엔히크 1세가 세례를 받아 유명한 성 미겔 교회이다. 내부는 아무것도 없이 낡고 모서리가 부스러진 화강암 벽돌담만이 알 수 없는 긍엄함을 일으킨다. 아담한 성당 안에 경건함이 한가득 차 신성함이 밀려왔다.


기마랑이스 성으로 가는 길목에 아폰수 1세 동상이 위풍당당 서 있다. 초기 포르투갈 왕국을 설립하는 시발점이고 그 중심에 기마랑이스 성이 있었다.


10세기 중반, 이 지역 영주인 백작 부인 무마도나 디아스에 의해 돌을 쌓아 만들기 시작했다. 무어인과 노르만인들의 침략에 대비한 수도원을 방어할 목적으로 지었다. 여덟 개의 방패 모양 탑이 성의 위상을 드높인다.

수많은 세월을 겪으며 개축하고 훼손된 곳을 복원하며 오늘날 찬란한 유적으로 빛나게 되었다. 초대 왕 아폰수 엔히크 1세가 출생한 뜻깊은 곳이지만 어머니와 권력다툼을 벌이며 싸운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하다.


켜켜이 단단하게 쌓아 올린 돌 틈에 이끼가 끼고 거뭇거뭇 곰팡이가 핀 성벽이 오랜 역사를 대변해 준다.


성으로 올라가는 옛 계단은 폐쇄하고 새로 만든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돌 틈 사이사이마다 이름 모를 풀들은 기마랑이스의 역사를 아는 듯 서로 시새워 성을 지키고 있다.


성을 내려와 역사 지구로 들어섰다. 역시 여행객으로 북적였다. 골목골목 오래된 건물들이 중세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러나 그 건물에서 사는 현지인들은 삶의 모습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기마랑이스 역사 지구는 중세도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포르투갈 전통 건축양식을 지닌 다양한 건축물과 문화유산 덕분에 200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브라간사 왕궁은 무어인과 노르만인의 침입이 잦던 16세기까지 브라간사 가문의 삶의 터전이었다. 19세기에 감옥으로 사용하다가 성으로 재탄생되었다.


지붕과 굴뚝이 특히 유니크하다. 저택을 지탱하는 수많은 돌, 쾌쾌하나 싫지 않은 오래된 나무들 냄새의 첫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유구한 역사적 향기가 묵직하게 깔려있었다. 독특한 건물이 준 인상은 오래갈 것 같다.


올리베이라 광장으로 갔다. 기마랑이스의 심장 역할을 했던 곳답게 시청사 등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레스토랑, 술집(bar), 카페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세 경관이 그대로 남아있다.


갈증이 나던 찰나 salado bar 야외테이블에서 시원한 포르투갈 ’슈퍼복‘ 맥주를 한잔씩 쭉 들이켰다. 온몸의 기운이 살아났다. 광장에 앉아 여행자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 지금, 이 순간의 자유에 만족감을 느꼈다.


고딕 양식의 독특한 건축물이 눈에 유독 띄었다. 살라도 전투 기념비였다. 8세기 무어인들을 몰아낸 수훈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역사의 숨결이 숨 쉬는 곳에 한 줌 햇살이 비치니 돌 빛이 찬란히 일어섰다.

때마침 운이 좋게도 이벤트를 열고 있는 올리베이라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리스본의 상인이 가져온 올리브나무가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나 잎이 나고 열매까지 맺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놀라운 기적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광장과 성당 이름을 ‘올리베이라’ 라 했단다.


15세기의 국립 기념물로 지정된 올리베이라 성당은 오르간이 역사적으로 자랑거리이고 가치가 높은 보물이란다.


우리는 오르간이 있는 2층에 올라가서 오르간 연주를 직관하는 행운을 얻었다. 천상의 선율 울림에 온몸이 전율하였다. 일상의 무거웠던 일들을 잊게 하는 변주곡처럼 들렸다.


직접 간단한 몇 개의 키를 눌러보기도 하였다. 멋진 포르투갈 남성의 손놀림은 환상적이었다. 매력에 빠져 함께 사진들을 찍느라 아우성쳤다. 나도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구시가지 새로운 문화에 기웃거리며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단단하고 반들반들한 유럽의 보도블록은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얀 돌로 박아서 만든 건널목을 건너갔다. 잘 다듬어진 공원이 도로 한복판에 조성되었다. 브라질 헤푸블리카 정원이다.

기하학적 무늬로 단장된 정원의 분수대에 걸터앉아 기마랑이스 역사 도시의 기품을 새겨본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깨끗하게 보존을 잘해온 국민성에 존경을 표한다.


역사적 가치가 담긴 볼거리가 기대 이상이었다. 예상치 않은 이런 시간으로 행복이 물밀듯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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