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희열을 준다. 떠나기 위해 공항에 발만 디뎌도 설레는 마음은 감출 길 없다.
가끔 수고한 나에게 호사스런 선물을 하기도한다. 루프트한자 B석에 앉아 누리는 다양한 서비스는 퍼팩트했다. 깨끗한 시트와 어메니티, 앉자마자 나오는 웰컴드링크 물과 샴페인까지 하얀 테이블보를 깔고 전채, 메인, 디저트는 나를 즐겁게 한다.
수시로 승무원이 필요한 것이 없나 살피며 정성스럽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간식거리를 챙기고 온전히 서비스를 즐기며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다 보니 저 아래 멀리 초록 들판이 보이고 건물들이 작게 클로즈업된다. 가슴이 뛴다. 드뎌 도착이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는 관세동맹을 맺으면서 베네룩스라고 불린다. 이 나라들은 솅겐 협정에 가입하여 공통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하여 국경통행에 제한이 없다. 이번 첫 여행지는 룩셈부르크이다.
유럽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공국인 룩셈부르크는 인구는 60만 명에 불과하다. 가장 작은 땅덩어리를 뛰어넘어 금융업, 물류산업, IT산업의 중심국으로 부상했다.
1인당 GDP가 세계 1위인 부정부패가 없고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다. 오랜 기간 강대국의 지배도 받고 외세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존 유지하여 국가의 아이덴티티를 잘 지켜가고 있다.
벨기에, 독일,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작은 나라가 이토록 단단해질 수 있는 원천이 궁금해지면서 여행은 시작된다.
쾌적한 공기와 진회색 지붕들이 도시 전체의 차분함과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자연석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보도, 그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고급스러운 트램이 룩셈부르크 사람은 물론 방문자, 여행자들에게 모두 전면 무료화인 것이 놀랍다. 1인당 국민소득 1위 국가의 위엄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룩셈부르크 날씨의 변덕스러움에 혼란스러웠다.
진짜 작은 나라이다 보니 볼 것이 많진 않지만 유럽 여행의 화룡점정 코스로 언제 다시 오겠나 하는 마음으로 한 컷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깊은 골짜기에 계곡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나무들이 우거져 노루라도 튀어나올 풍광이다. 이 두 시가지를 이어주는 아돌프 다리 쪽으로 갔다.
페트루세 계곡의 알제트강 위에 놓인 다리이다. ‘뉴브릿지’라고도 부른다. 유럽에서 뛰어난 건축물 중의 하나이며 룩셈부르크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다리이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돌 아치교였으며 룩셈부르크의 통치자 ‘아돌프 대공작’의 이름을 따서 지은 다리이다.
다리 위를 한가로이 트램과 버스가 오고 가는 아름다운 장면은 엽서에서 보던 사진을 눈앞에 옮겨 놓은 듯 환상적이었다. 웅장한 아치교 아돌프 다리와 어우러진 풍치가 왜 세상의 이목을 끌었는지 알만하였다.
시가지를 걷다 보니 헌법 광장이 나왔다. 황금 여신상이 룩셈부르크를 수호하며 월계관을 번쩍 들어올린 형상은 승리와 평화를 상징한다.
광장 중심에는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 있다. 위령탑이 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것도 신기하였다. 오가는 사람들이 꽃 한 송이 올리며 순국선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누구나 아무 때나 참배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의 발길 뜸한 곳에 있는 외로운 현충탑을 떠올랐다. 초등학생들의 해맑은 목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우고 선생님과 같이 묵념하는 모습을 보니 옛생각도 나고 가슴이 뭉클하였다.
1951~1954 한국전쟁도 새겨져 있다. 룩셈부르크는 한국전쟁 시 병력의 10%를 파견하여 도움을 준 고마운 나라이다.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음이 감사했고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했다. 전쟁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고 평화로운 세계가 되길 기도한다.
구도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13세기에 만들어진 기욤 광장이 나타났다.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번화하고 심장같은 광장이다.
유럽은 어디를 가나 광장이 화려하고 그곳에서 문화이벤트가 많이 열린다.
광장 가운데 룩셈부르크 독립의 상징인 윌리엄 대공 2세의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그는 네덜란드 왕이자 룩셈부르크 대공으로 통치자였다. 기욤광장은 룩셈부르크가 프랑스 지배를 받을 때 나폴레옹이 룩셈부르크를 방문한다 하니 그 일정에 맞춰 광장이 만들어졌다. 그 당시 나폴레옹의 위력이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흔적이기도 하다. 여행의 시작점인 광장은 삼삼오오 여행객들이 모여들고 분주했다.
광장을 지나가면 그랜드 두칼 대공궁이 나온다. 룩셈부르크의 국가원수인 대공의 관저이다. 대공작의 궁전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행정부가 있고 공식적인 행사시에만
대공이 체류한다.
대공이 머물때는 국기가 게양되고 근위병은 2시간마다 교대식을 한다. 마침 근위병 교대식을 하여 볼 수 있었다. 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꿋꿋하게 서있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궁은 여름철 성수기에만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광장에서 왼쪽으로 좀 걷다 보면 성당을 마주한다. 1613년에 건립된 노트르담 성당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오래된 역사를 지닌만큼 더 신성하게 다가왔다.
노트르담이 성모 마리아를 일컫는 말이어서 노트르담 성당은 서유럽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가행사나 대공가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행해진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3개의 높은 첨탑이 우뚝 솟아 어디서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규모는 작으나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움이 돋보이고 그 위용과 성스러움은 다른 성당에 못지않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과 화려하지 않은 정갈한 제단,
그리고 가장 숭배되는 성모 마리아상과 아기예수상은 편안함과 경건함을 안겨준다.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평온함으로 충만해지는 분위기는 잊을 수 없다.
다름 광장에 들어서니 시청과 관광 안내소가 보였다. 예전에 룩셈부르크를 방어했던 위병들이 주둔했던 곳이어서 무기 광장이라고 했던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다름 광장은 여행의 중심 광장이다.
레스토랑과 예쁜 카페들,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 ‘룩셈부르크의 응접실’로 불릴 만큼 현지인뿐 아니라 여행객들로 붐빈다. 프리마켓 구경도 쏠쏠하다. 광장 주변을 우산 쓰고 걷는 것도 먼 이국땅에서 색다른 즐거움이다.
비도 내리고 쌀쌀하다. 유명한 NB 초콜릿 하우스에 들어갔다. 룩셈부르크에 오면 누구나 한번은 꼭 찾는 수제 디저트 카페로
여행의 필수 코스이다.
초콜릿 진열에 깜짝 놀랐다.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기가 힘들었다. 다양하게 진열된 스푼초콜릿 중 하나를 골라 2층으로 올라갔다.
카페 안은 복고풍 목재 테이블과 낡은 의자,고풍스런 색감으로 관록이 묻어난다.
스푼초콜릿을 따뜻한 우유에 넣어 녹여가며 핫초코처럼 마시니 진한 초콜릿 맛이 마음의 온기를 넣어주었다. 괜히 명성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그니처 메뉴가 가장 인기 있다.
달콤한 맛이 온몸의 피로를 가셔주고 메마른 감정을 몽글몽글 피어오르게 하며 여행의 마법은 시작되었다.
다음 여행지 브뤼셀에서는 어떤 일로 설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