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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곁을 내어주는 여행

by 파묵칼레

이제 사회의 일원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해외여행을 함께 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그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준 아이들이 고마워 감사한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가족이 다시 뭉쳐 여행을 떠난다는 그 자체로 설렜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어느새 괌 아가나에 도착하였다. 휴양지답게 잔잔함이 흐르는 분위기였다.


첫째 날


아름다운 투몬만에 자리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고 있는 호텔에 체크인했다.


괌에서 우수한 서비스와 시설을 자랑하는 최대 호텔스럽게 넓은 대지에 다양한 열대식물들이 자라고 있으며 부대시설, 편의시설과 레스토랑이 잘 갖추어져 있어 매우 흡족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맛집을 찾아 나섰다. 우리가 간 곳은 ‘토니 로마스’ 아메리칸 레스토랑으로 스테이크가 입소문 난 맛집이다.


립 스테이크, 립 앤 쉬림프 등 우리는 여러 메뉴를 주문했다. 이국에서 만찬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각이 소중하고 소중할 뿐이다.


잘 갖춰진 호텔의 부대시설을 이용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하루해가 저물었다.


둘째 날


괌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아가나 전망대로 향했다. 실지로 전쟁에 사용한 포와 성벽이 남아 있었다.


한때는 미국의 통신기지로 사용되었고 일본군 역시 포대를 배치했던 곳으로 군사 요충지였던 괌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랑의 절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절벽에 오르니 괌 중부 해변과 언덕, 숲이 어우러진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가족과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엔 슬픈 사랑의 전설이 전해온다. 아름다운 차모로 여인과 차모로 청년이 사랑을 했다.


여인은 부모의 강압으로 권력 있는 스페인 장교와 혼사를 치른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괴로워하던 두 연인은 섬을 빠져나가 도망치다가 절벽에서 머리를 한데 묶고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아름다움과 애틋함이 뒤엉긴 이야기이다.


절벽에 서린 슬픈 전설의 여운을 안은 채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아가나 중심부에 있으며 스페인 탐험가 레가스피에 의해 스페인이 괌 통치 선언을 한 이후 333년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피시아이 마린 파크 수중 전망대를 찾았다. 수중 30피트 깊이에서 열대어들의 잔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괌의 바닷속을 바라보며 새로운 기쁨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수압을 견디도록 설계된 2중 유리창을 통해 다양한 열대어들과 형형색색의 산호들을 보며 우리는 마냥 즐거움을, 시간을 가졌다.


가끔 스쿠버다이버가 먹이를 주기 위해 등장한다. 이때 많은 열대어가 모여드는 장관이 펼쳐졌다. 관람을 마친 뒤 열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이파오비치 해변을 걸었다. 다양한 액티비티가 해변의 활력을 더해 주었다. 바다를 안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호텔로 돌아와 인피니티 풀로 갔다. 미끄럼틀도 타고 공놀이도 하며 신나는 물놀이로 하루가 또 저물어갔다.


셋째 날


괌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쇼핑이다. 오죽하면 쇼퍼들의 천국이라 했을까.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괌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출발하였다. 무료 셔틀버스가 수시로 다녀서 이동하기가 수월하였다.

여행 오기 전에 남편과 상의해 평소 검약하게 생활하는 우리 아이들 명품 하나씩 사주기로 약속했었다.


쇼핑의 중심지에 도착하니 다양한 기념품부터 럭셔리한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딸아이는 신바람이 났다. 이미 보아 둔 것이 있었는지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딸에게는 가방을, 아들에게는 지갑을 아낌없이 선사했다. 기쁨에 들뜬 그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나이쯤이면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손쉽게 사고도 남음 직한데 늘 중저가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고마웠다. 경제적이고 꼭 필요한 곳에만 쓰는 생활 습관이 대견했다.


괌에서 쇼핑은 단순히 욕구만족의 쇼핑이 아니라 아이들이 생활해 온 성실한 삶속을 들여다보고 부모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그 기쁨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따듯하게 밝혀줄 것이다.


마지막 날 아침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상념에 잠겼다. 여행은 참 매력적이다. 머릿속의 잡념을 거두고 오직 ‘지금’에만 집중하게 한다.


이번 여행 역시 가족의 쉼과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의 시선이 한 층 깊어짐을 느꼈다.

여행에는 시기가 있다. 언제 떠나느냐에 따라 그때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며 다녀온 여행은 오래 기억에 남고 내 삶에 뜻깊은 장면으로 새겨진다.


가족여행을 할 때마다 ‘아, 진정 이런 것이 여행이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아 서녘 하늘을 황홀함으로 적시는 붉은 노을을 보며 조용하게 되뇌었다. ‘여행은 내 일상을 잘 굴러가게 해주는 윤활유이다’라고

곁을 내주어 엄마가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여행하면서 마주한 내 아이들의 마음은 소박하면서 유달리 아름다웠다.


또 여행내내 부모의 안위를 살피고 시종 온화한 얼굴로 곁을 지켜준 모습에 가슴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눈보라 치는 겨울이 수십 번이 닥쳐와도 나는 늘 너희 곁에 머물 것이다.

가족이란 어느 순간 손을 잡아줌을 넘어 서로의 삶에 스며들 곁을 내어주는 존재임을 이번 여행이 깨우쳐 주었다.


우리가 괌에서 함께 보낸 행복했던 순간순간들은 흘러갔지만 내 삶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이 되어, 멈추지 않고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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