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서 버스로 8시간을 달려 오슬로에 도착했다. 차창밖에 함께 달리는 이국의 자연풍광들이 나를 피오르드와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에 데려다주었다.
스칸디나비아반도 서쪽에 있는 노르웨이는 해안선이 2천km나 길게 뻗어있다.
내륙에 깊이 들어앉은 피오르드는 노르웨이의 아이덴티티이자 상징이다. 그 피오르드에 대한 나의 열망이 나를 북유럽 끝자락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여행은 오슬로부터 빗장을 풀었다.
내가 아는 오슬로는 노르웨이의 수도로 900여 년 전 바이킹들이 가장 사랑했던 도시라는 것뿐이다.
얕은 지식만을 갖고 도착한 이 도시는 휘황하지 않으며 뭔가 은근히 여행객이 찾아 들게끔 하는 매력이 있었다.
비겔란 조각공원
오슬로 서쪽 프로그네르 공원에 있으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의 조각 작품이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조각공원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스케일이 장대하였다. 이 넓은 공간을 한 사람의 조각 작품으로 조성되었다는 것도 놀랍다.
입구부터 남달랐다. 인간의 탄생과 성장, 사랑과 갈등, 늙음과 죽음에 이르는 삶의 전 과정을 테마로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121명의 인물이 뒤엉켜 하늘로 솟아오른 조각상으로 표현한 ‘모놀리스’가 인상 깊었다.
‘모놀리스’에는 과장된 감정이 들어있지 않고 그렇다고 어떤 비애감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인생사의 흐름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내 삶의 순간들이 조각품을 보는 동안 언뜻언뜻 스쳤다.
오슬로에서 첫 여행은 유적이나 자연풍광이 아닌 나를 사유케 하는 시간이었다.
오슬로 시청사
붉은 벽돌로 세워진 63m의 쌍둥이 타워가 시선에 강하게 와 닿는다. 화려하지 않으며 북유럽 특유의 감성으로 도심을 굽어보고 있었다.
타워 벽면에 금장시계가 걸려 있다. 15분마다 울리는 종소리는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 시간을 잡아라.”하고 언질을 준다.
입구에 들어서 1층 홀로 가니 뭔가 공간의 엄숙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곳은 매년 12월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모든 노벨상이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데 노벨의 유언에 따라 평화상만 이곳에서 수여된다.
그 사실을 알고 홀에 서 있으니, 공간의 기품이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많은 영예로운 순간과 우레와 같은 박수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곳. 그 영광의 소리는 온데간데없지만 그 자리를 걸어본다. 여행은 아마도 그런 흔적을 찾으며 내 마음을 얹어 음미하는 시간일 것이다.
시청사 규모도 크지만 메인홀 벽면에 그려진 벽화에 압도되었다. 벽면을 가득 메꾼 장대한 그림들은 장식품이 아닌 노르웨이의 서사였다.
노르웨이의 역사와 노동운동, 사회성장과 공동체의 삶 등 다양한 주제가 실려있었다. 중앙홀 정면에 거대한 프레스코화에도 노르웨이 사회가 지향하는 점이 잘 그려져 있다.
특히 뒤쪽 벽면은 노동의 신성함을 다룬 다양한 직업군 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해 제작되었단다.
어느 직업 하나 도드라지게 표현하지 않았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귀천이 없고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벽화는 보여주고 있다.
노르웨이가 무엇을 존중하고 추구하는지를 말없이 표현하고 있다.
벽화에 시선을 빼앗겨 1층 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밖으로 나왔다. 시청사 양옆 회랑의 벽에는 이색적인 작품이 시선을 끌었다.
북유럽 신화를 주제로 한 부조들로 가득 메웠다. 노르딕 신화를 조각한 이것을‘프리즈(frieze)’라 한다.
오딘과 토르, 인간과 신이 한데 어우러진 노르딕 신화의 장면들은 현대적인 시청사 건물과 이질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노르웨이의 신화와 역사 그리고 현재를 아우르는 이야기였다.
시청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의 행정업무만 보는 곳이 아니라 이 나라의 미술, 문학, 사회를 알 수 있고 노벨상 시상을 하는 영예롭고 가치 있는 곳이었다.
노르웨이가 근간으로 삼는 본질적 가치를 건물의 벽과 벽화, 조각에서 읽을 수 있었다.
국립미술관
노르웨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뮤지엄답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다. 바로 뭉크를 만나기 위해서다. 노르웨이가 내세우는 뭉크의 그 명성만큼 대기 줄이 만만치 않았다.
긴 대기시간마저도 뭉크를 마주하기 위한 통과의식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유럽 미술사가 펼쳐졌다. 시대별 예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전시 되어있다.
처음 접한 작은 방에는 뭉크의 초창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형 전시실에 뭉크의 대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절규 ,마돈나 , 사춘기’등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이었다.
교과서나 엽서에서 보던 그림을 직관하자 화폭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나는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숨을 고르며 마음속에 담았다.
옆 방으로 가니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 마네, 세잔, 피카소의 작품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
특히 세잔의 그림 앞에 오래 머물렀다. 세잔의 너절하지 않은 깔끔하고 단정한 터치와 색감에 빠져들었다.
뭔가 묵직하고 간결하고 안정된 절제미 속에 세잔만의 특유함이 있다. 블루계통의 차가운 색감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각각 다른 시대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예술의 다른 흐름을 보여주었다.
국립미술관은 전시 공간을 넘어 예술가의 열정과 시간이 내려앉은 곳이자 화폭에 스며든 혼이 여행자들의 사유를 이끄는 안식처였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다음 날 아침 일찍 오슬로를 떠나 북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숲이 더 깊어지고 물색이 더 짙어졌다. 드디어 노르웨이의 진 모습이 드러나는 듯했다. 노르웨이 여행은 바로 길 위에 있었다. 그 길에서 최고의 감동과 신비함을 마주했다.
게이랑에르로 이동하는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구불구불 산속의 길을 달리다가 전망대에서 잠시 멈춰 내렸다. 이 전망대는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내려다보기에 최적의 장소인 플라이달슈벳 전망대이다.
여기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을과 어우러진 피오르드를 그 어떤 명화에 비유할까. 감탄의 소리조차 내기가 조심스러운 풍광이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수려하기로 손꼽히며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롬스달 지역 최남단에 있는 보석처럼 찬란한 마을 게이랑에르에 있는 해발 1,500m의 산맥들 사이에 아름답게 끼어있는 피오르드이다.
대단한 규모의 빙하가 산 아래로 떠밀려가 육지를 깎아 만든 U자 골짜기에 바닷물이 스며서 탄생한 피오르드는 莊嚴 無比 했다.
빙하가 남긴 짙푸른 물빛과 깊은 협곡은 두말할 것 없이 장관이었다.
피오르드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산길을 내려갔다. 페리를 타지않고 피오르드를 논하지 말라고 하니 그 풍광이 기대된다. 게이랑에르 선착장에 도착했다.
우리도 페리에 탑승했다. 무조건 위로 올라갔다. 피오르드를 접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다. 게이랑에르에서 헬레쉴트까지 절벽 사이의 물길을 1시간 동안 항해하였다. 물결침 없이 거울같이 잔잔했다.
페리 여행이 가져다준 피오르드의 감흥을 어찌해야 할까. 전망대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웅혼함에 전율이 일었다. 페리를 타고 바라보는 피오르드는 자연경관의 극치였다.
빙하가 녹아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일곱 개의 물줄기, 여름에만 허락되는 장관이었다. 일곱 자매 폭포가 절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장대한 빙하가 만들어낸 걸작의 피오르드여행, 한여름의 판타지가 막을 내렸다. 평안과 감사가 급습하며 대자연에 머리 숙여지는 시간이었다.
조각으로 인간의 삶을, 벽화로 노동을, 피오르드로 자연을 대변한 노르웨이는 가르침을 주었다. 스스로 나를 낮추라고.
자연에서 힘을 얻고 피요르드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는 말은 이번 여행에 제격이었다. 노르웨이는 대자연 앞에서 우리 인간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기를 낮추는 것임을 묵묵히 일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