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블스톤 끌어당기기

유효하게 조각된 맥락 없는 기억

by 혜아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된 여자아이가 어디선가 사진 한 장을 보게 된다. 사진은 마카오에 있는 세나도 광장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이국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바람에 컬러로 프린트를 해서 방 한편에 붙여둔 채 몇 년을 지낸다. 그 광장을 가로지르는 곡선의 물결무늬는 땅바닥에 파도가 그려진 것 같았다. 매일 등교할 때 보게 되는 아스팔트 도로와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단단하고 딱딱한 돌바닥이 춤을 출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술학원에서 쓰던 물감보다는 한층 낮아진 파스텔 톤의 건물, 과거에서 온 것 같은 건축 양식, 우아해 보이는 분수대. 사진 안의 모든 것들이 지금껏 실제로 보고 듣고 상상할 수 있었던 경계선을 제멋대로 넘나들고 있었다.


그 컬러로 프린트된 종이 한 장은 온갖 사진들이 범람하고 원한다면 몇 천장이라도 손안에 쥘 수 있는 현대 시대에는 느낄 수 없는 섬세한 감성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지금처럼 휴대폰 하나로 경험 없이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렀을 때, 사실은 그 사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든 국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럽 대륙 가장 남쪽에 있는 나라. 우연이었나? 그건 잘 기억이 안 난다. '세나도'는 포르투갈어로 '의회'를 뜻하며 포르투갈인들이 도시의 중심부를 계획하고 건설하며 만든 광장이 그 사진 속의 세나도 광장이었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의 일이었다. 마카오는 명목상 중국의 영토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포르투갈이 행정과 도시 계획을 주도하며 통치하던 시기였다.

한 나라가 다른 국가의 지배 하에 있었다는 사실이 어딘가 마음 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개인의 삶은 어떨까. 하지만 그건 세계가 굴러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은 복잡하고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도시에는 남겨진 것이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공포와 비애의 흔적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저 아름다운 광장을 만들어두고 간 나라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이름조차 꽤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신기한 점은 너무 많이 상상한 장면이 현실로 나타나면 그게 신기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그 장면을 익숙하고 당연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에 신기함을 느끼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방 한편에서 알록달록했던 컬러가 허옇게 닳도록 붙어있던 코블스톤이 눈앞에서 물리적으로 춤을 추고 있었던 건 이번 5월이었다.

*코블스톤(Cobblestone)은 아름답고 정교한 포르투갈 전통 방식의 보도 포장을 의미한다.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집필한 작가 페터 비에리는 상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상상이 비록 정기적으로 일어나더라도 나의 겉만 훑고 지나가느냐 아니면 그 실마리를 추적해서 꽉 붙들고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를 풀어내느냐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후자를 택할 때 나의 자유는 더 커지게 된다. 상상된 것을 전부 다 거부하고 내치지는 않더라도 앞으로의 미래에는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의외의 결정이 가능할 것이다."


그는 우리 안에 전혀 다른 새로운 소망과 의지가 흐를 때에도 상상력은 그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생각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지를 만들어내고 또 다른 자아를 형성한다. 종종 그중에 일부분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내적 쇄신에 한몫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자신과 함께, 또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려워지는 건 주름보다는 얼굴에 새겨지는 경직성일지도 모른다. 상상하고 생각하기를 멈춘 표정에서 나오는 생기의 부재. 잃어버린 고유한 감수성.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시간. 페터 비에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사람을 표류자라고 불렀다. 표류자의 미래는 어떠할까. 표류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가장 자연스러운 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건 경험을 완전히 흡수하는 일이다. 사진으로 담았던 눈앞의 이미지를 문장으로 만들어 숙성시켜 본다. 의무도 경쟁도 없이 허술하면 허술한 대로 날것의 행복을 얻는다. 이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


하루키는 '상상력은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 없는 기억'이라고 말한다.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이 그 자체로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된다고. 우리에게 호기심을 주는 것들에게 끌리는 감각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이 되었든.


가방 옆 주머니에 물 한 병을 꽂은 채, 사랑을 가지고 낯선 도시에 접근해요. 그곳에서 얻어온 친절함과 다정함, 두 번째 진자운동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Historic Centre of Macao

*삶의 격 <페터 비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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