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나자레 (1)
세상에는 이렇게 상냥하고 이상적인 모습의 동네가 존재하는구나 하고 실감했다. 집집마다 색이 다른 창문과 대문은 집주인의 고유한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확실하다. 눈길이 가지 않을 골목의 구석마저도 우아한 패턴의 타일이 벽을 수놓고 있다. 부드러운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들은 여기가 연간 일조량 2,800시간의 도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만 같다. 뜨거운 태양이 달군 골목을 걸어 다니며 생각했는데, 저 빨래들이 없었다면 왠지 모르게 허전했을 거라고.
나자레는 좀 그런 도시였다. "나바빠요"같은 느낌으로 내 앞을 휙 지나쳐가는 게 아니라 "원하는 만큼 당신의 시간을 가져요. 우리도 오늘 하루는 여유로우니까"하고 느긋하게 기다려준다. 골목길에서 보잘것없는 것에 사진을 찍다가 뒤를 돌아보면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느낌으로 웃으며 서있는다. 그다음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골목길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내가 받았던 방식의 친절한 표현을 하는 것뿐이다.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것은 멀리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히 이런 상황은 여행이 내 삶에 확실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관찰하지 않으면 만끽하지 못하는 것. 낯선 도시가 제공하는 좋은 것들을 잔뜩 흡수해서 마음에 가득 담아둔 다음, 그대로 나의 일상에 들여놓는다. 잃어버렸던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을 간직하고 또 그렇게 생활해 보면 점차 나다운 모습을 되찾아간다. 물론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온몸으로 느꼈던 친절한 감각만은 꼭 기억한다.
아름다운 해변가의 소도시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가 있었다. 서퍼 '개릿 맥나마라'가 나자레 해변에서 24m의 파도를 타며 기네스북에 올랐다. 2011년의 일이었다. 그 이후 나자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핑의 메카가 되었다. 매년 많은 서퍼들이 빅웨이브라 불리는 거대한 파도를 타러 여기 남유럽의 작은 도시로 모여들고 있다.
빅웨이브(Big Wave)는 30m 높이의 큰 파도를 말한다. 나자레 해안 근접한 곳에 깊은 수심의 협곡이 파도를 증폭시키며 빅웨이브를 형성한다. 해저 협곡이 심해의 거대한 에너지를 모아서 폭발적인 높이의 파도를 만드는 것이다.
"파도에 휘말리는 것조차 하나의 선택이죠." 서퍼 맥나마라는 말한다. 그에게 나자레의 파도는 정복 대상이 아니라 함께 춤을 추는 파트너다. 자연의 흐름을 이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잠시 존재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는 파도 위에서의 순간을
'the purest form of being alive'라고 표현한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가장 분명한 순간이며 거센 파도를 맞으며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나자레에서 빅웨이브를 볼 수 있는 시기는 10월에서 2월 사이의 겨울철이다. 북대서양의 강한 겨울 폭풍이 불어오는 때. 그에 반해 내가 갔던 5월의 나자레는 참 평온하다. 빅웨이브는커녕 스몰웨이브조차 일지 않는 바다는 커다란 강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잠잠했다. 하지만 집채만 한 파도를 보지 못한다고 아쉬운 마음이 들 필요는 없었다. 세계적인 서핑의 도시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건 광활한 바다뿐만이 아니다.
지나가는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관람차일지라도 오랜 시간 버텨왔을 작은 건축물의 우아함을 해치지 않아서 좋았다. 도시의 주민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시간의 축적이 대비되는 것들이 함께 있을 때 종종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한다. 현대적인 도시에서 편리함과 효율성에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감동을 받는 건 19세기말의 움직임이 남아있는 작은 마을이다.
나자레 2편에서 계속-
* <allwaves.surp> Waves Explained:Nazare, Portugal
* <GQ> You Can Choose to Enjoy Getting Pummeled, and other Lessons From Big Wave Surfer Garrett McNam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