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을 태우고 긴 밤을 방황했지만
우리는 보통 알고리즘에 지배당한다는 표현을 쓰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내게는 Young Gun Silver Fox의 노래를 알게 되었을 때가 그랬다. 유튜브로 오아시스의 노래를 틀어놓았는데 자연스럽게 다음 곡으로 흘러나온 것이 Young Gun Silver Fox의 노래였다. 처음 들었던 그 노래의 제목은 소름 돋게 귀여웠다. Baby Girl.
어떤 노래가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갈지 말지는 보통 전주에서 알게 된다. 이 노래는 깜직한 제목과는 다르게 오래된 팝송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듣자마자 이 밴드의 모든 앨범을 찾아들었다. 생각해 보면 꽤 올드팝을 즐겨 듣는데, 그건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나 추억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한 취향에 기반한 것이다.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 번 들을 때마다 새로운 레이어를 발견하게 된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대의 음악이 주는 이상한 즐거움도 함께 누리는 기쁨.
각자 오랜 음악 이력을 가지고 있는 두 아티스트가 만났다. Andy Platts는 영국 밴드 마마스건의 보컬리스트고, Shawn Lee는 미국 출신의 멀티-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자 베테랑 음악 프로듀서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새롭게 알게 된 장르가 있다. '요트 록(Yacht Rock)'이라는 용어는, 이 장르로 여겨지는 밴드들이 1970년대 중후반과 80년대 초 미국 음악 차트를 휩쓸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다. 요트 록은 미서부 해안 기반의 소프트 록 스타일의 장르인데, 재즈와 R&B, 펑크 등이 융합된 안정적이고 리듬감 있는 구조가 특징이다. 중요한 것은 매끄럽게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느낌을 구현하는 것이다. 요트를 타고 바다의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항해할 때처럼. 요트록이라는 용어는 당대에는 사용되지 않다가 2005년 미국의 어느 코미디 웹 시리즈에서 유래되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떠나는 희열. 다큐멘터리 제작자, Katie Puckrik는 요트록의 본질을 이렇게 표현했다.
Young Gun Silver Fox는 진짜 경험과 애정을 바탕으로 '요트 록'이라는 장르를 현시대에 되살리고 있다. 두 사람이 듣고 자란 음악과 지금까지의 이력을 보면 밴드는 복고를 의도적으로 카피할래야 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들의 음악은 자칫 현실을 잊게 만들만큼 낭만적이면서도 지나친 위로나 화려한 자기 과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 작업은 2015년 데뷔 앨범, West End Coast부터 시작되었다.
밴드의 이름은 단순한 단어를 조합해서 만든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Young Gun은 젊고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Silver Fox는 영어권에서 쓰는 속어로 회색 머리를 멋지게 소화할 정도로 세련된 중년 남성을 의미한다. 왠지 반짝이는 은색 갈기를 휘날리는 새침한 여우의 모습이 생각난다. Baby Girl의 뮤직비디오로 둘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밴드의 이름이 이해되었다.
"노래에 멋 부림은 전혀 없이요! 우리가 만드는 음악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는 그저 오래도록 남을 좋은 노래와 앨범을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궁극적으로 음악은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아야 하고, 현미경처럼 들여다봐도 흥미로워야 해요. 그게 곡을 만드는 사람의 책임이죠- '흥미로운 것'을 만드는 것"
무슨 뜻인지 유추하기도 어려웠던 밴드의 이름은 세대의 경계를 허문 협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두 멤버의 나이는 20살 가까이 차이가 난다)
서로의 음악적인 언어를 깊이 존중하고 이해하지 않았다면 Burning Daylight 같은 곡이 나올 수 있었을까.
2012년에 결성되어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다섯 장의 앨범. 두 사람은 Young Gun Silver Fox에서 70~80년대 AOR(Album-Oriented Rock)/웨스트코스트의 음악적 질감을 정확히 구현하고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음악을 만든다고 한다. 아날로그 감성의 재해석이라는 표현이 제대로 어울리는 밴드가 아닐까 생각했다.
세련된 올드스쿨과 빈티지한 영건의 만남에 여름이 즐거워졌다.
그러니까 최근에 알고리즘이 나를 다시 그들에게 데려가준 곳이 최근에 나온 Pleasure라는 다섯 번째 앨범이고,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Burning Daylight가 되었다. Burning Daylight는 시간을 낭비하다는 뜻의 관용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burning(타고 있는, 뜨거운)이라는 단어의 뜻을 의역해 낮을 태우다는 표현이 이 노래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유능한 젊은이와 세련된 은빛 여우의 노래는 고급스러운 해변가가 생각나면서도 사치스럽고 화려한 느낌은 아니다. 실패나 두려움은 담백하게 말하지만 꿈과 삶을 뜨겁게 열망한다.
"얕은 곳에서만 머무르며 그늘 속에 숨어 있었어. 절대 깊은 곳으로는 나아가지 않고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긴 시간을 보내며 낮을 태우고, 긴 밤을 방황했지만 이제는 내일을 맞을 준비가 됐어. 더 이상 낮을 허비하는 일은 없고 그 밤을 지새우며 갈망하는 것도 끝이야. 내가 흘린 모든 눈물이 결국 날 열린 문 앞으로 데려가준 거야. 더는 용기가 날 찾아오기만을 바라지 않아. 이제는 알겠거든. 이 순간이 바로 제대로 된 내일이라는 걸" (가사는 자유롭게 번역한 것이니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역 가능성 있음!)
*레퍼런스
The Big Take Over : Interview(Andy Platts and Shawn Lee of Young Gun Silver Fox)
Houstonia : This is the Definitive Definition of Yacht R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