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이 먹고 싶을 만큼 추웠으면

밤의 더위에 걷고 맥문동을 살피기

by 혜아


호떡이 먹고 싶을 만큼 춥고 싶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렇다. 무더위가 일상에 괴팍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온도보다 습도가 문제다. 녹아내릴 것 같은 느낌은 밤까지 이어질 뿐만 아니라 조금만 걸어도 금방 지치고 만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내 몸은 더위에 취약한 것이 틀림없다. 요즘 누가 더위에 강해! 하고 물을 수도 있지만 꽤 오래전부터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기후 변화로 변해버린 지구가 있기 전부터다.


단순히 불쾌지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름이 오면 꼭 한 번은 어김없이 더위를 먹는다. 더위를 먹어서 떨어진 입맛은 영양 부족을 일으켜 심리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친다. 번아웃에 가까운 무기력함을 처음 느껴본 것도 여름이었다. 그건 분명히 계절의 영향이었다.


내게 여름은 휴양이 아니라 요양이 필요할 정도로 몸과 마음을 잘 쉬게 해주어야 하는 시기다. 누구나 반기는 여름을 나만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있지만, 어젯밤에 시킨 냉소바가 집 앞에 턱 하니 와있는 것을 보면 참 배부른 속상함이구나 싶다. 누군가는 더위를 고스란히 느끼며 일을 한다.


도대체 작년 여름은 어떻게 지낸 거야 하고 일기를 펴본다. 오늘 같은 온도에 버틸 수 있는 어떤 단서가 있을 거야. 8월 말에 이런 내용이 쓰여있다.


정확히 8월 27일 기준으로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다. 아주 기념일로 지정하고 싶을 정도로 반가운 가을의 느낌이다. 거의 두 달 동안 산책도 제대로 못하다가 이제 좀 선선한 날씨의 혜택을 받는 것 같다. 요즘은 자기 전에 음악도 틀어놓지 않고 책을 읽는다. 밖에서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게 좋아서다. 밤에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되니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주말에는 책표지에 식빵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을 빌려왔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귀여워서.


카프카는 일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911년 12월 23일.

일기를 쓰는 장점은 지속해서 겪는 변화를 편안하고 명료하게 의식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대체로 우리는 당연히 이 변화를 믿고 예감하고 인정하지만, 그로부터 희망 혹은 평화를 얻어 내야 할 때면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그 변화를 부인한다.


일기에서 우리는 오늘은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살았고, 주변을 둘러봤고, 관찰한 것들을 기록했다는 증거를, 우리가 과거의 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기에 더 현명할지도 모르는 오늘처럼 당시에도 이 오른손이 움직였다는 증거를 발견한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집요하게 계속했던 우리의 과거 노력의 대담성을 그만큼 더 많이 인정해야만 한다."



카프카처럼 주변을 둘러봤다는 건 작년의 또 다른 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더위에도 말이다.


이 꽃의 이름을 드디어 알아냈다. 올여름에 자주 마주쳤는데 호기심은 그만두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너무 더워서. 꽃은 반드시 쾌적한 환경에서만 피어나는 줄 알았는데,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는 꽃이 있다. 어쩐지 나무 밑에서 자주 보이더라. 이름은 맥문동. 독특하고 예쁜 이름이다.


아 그리고 운동을 하다가 어깨에 담이 걸렸다. 이 정도 수준의 담은 처음이라 근육통증완화제까지 먹고 있다. 이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이잖아. 그러니까 괜히 이런 생각이 든다. 여름은 왜이럴까.


여름의 일기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더위가 너무 힘들다고 징징대다가 복숭아의 계절이니 용서해준다고 한다. 다시 터질듯한 더위에 지친다고 했다가 생기를 되찾기 위해 코랄색 블러셔를 샀단다. 다음날엔 핑크색 하나를 추가 주문했다고. (얼굴이 많이 익었었나 보다) 어떻게든 더운 여름을 잘 지내려고 엉성하게 애를 쓰는 모습이 지금 보면 가여운 코미디 같다.


하지만 카프카의 말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 계속했던 우리의 집요한 노력은 그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는 오늘을 더 지혜롭게 만들어준다.


일시적이고 아름다운 여름의 경험은 잊힐 가능성이 컸지만 일기를 통해 보존되었으며, 그때의 짧은 문단 하나는 마음에 도움이 된다. 그러고보면 일기는 과거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되돌아본 과거를 현명하게 이해할 때, 현재의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으니까.


ⓒ 2025 by hyeah



*<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 프란츠 카프카 잠언 일기집> 프란츠 카프카 / 홍성광 옮김


*제목에 있는 사진은 프랑스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의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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