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과 상냥함으로 무장한 과일
꽤 오랫동안 아침마다 무화과를 먹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릭요거트에 무화과를 넣어서 먹는다. 무화과의 제철은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특히 바깥의 모든 풍경이 무르익어가는 9월과 10월에 가장 맛있는 무화과가 나온다. 그럼 제철이 아닌 지금 같은 시기에 그것을 어떻게 먹느냐 하면 말린 무화과를 사서 먹는다. 말린 무화과 하나를 잘게 잘라서 그릭 요거트에 쏙 넣고 견과류나 바나나, 시리얼 같은 것을 곁들이면 가장 간단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가 된다.
어느 날 친구와 대화하다가 과일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무화과랑 아보카도야. 당연히 딸기랑 바나나는 기본적으로 좋아하고. 아 복숭아도 좋아하네. 사과랑 키위도! 수박..체리..
사실 좋아하지 않는 과일을 찾기가 더 힘든데, 친구가 내 과일 취향에 고개를 저은 종류는 오직 무화과랑 아보카도였다. 무화과를 무슨 맛으로 먹어? 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무슨 맛으로 먹지? 하고 생각해 보니 딱히 무슨 맛이 나는 건 아니어서 그냥 무화과 맛으로 먹어.. 하고 답했을 뿐이었다.
무화과와 아보카도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란 참 쉽지는 않은 일이다. 오렌지처럼 상큼하고 신 것도 아니고 수박처럼 여름에 보약으로 먹는 과일도 아니다. 생각해 보니 무화과의 매력을 모르는 게 더 쉬운 것 같기는 하다.
책상에 앉아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10권 정도의 책이 놓여있다. 책의 종류가 그때그때 바뀌긴 하지만 벽에 고정된 붙박이장 같은 책이 세 권 정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알랭드보통의 사유식탁이라는 요리책이다. 여느 때처럼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무화과를 설명하는 부분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왜 이 부분을 못 보고 지나쳤을까
책에서 알랭드보통은 무화과를 성숙함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80년 동안 쉬지 않고 자라는 나무에서 열린 열매는 부드럽고 겸손하며 수줍음이 많다. 조용한 별미에 맛을 들인 이들에게 최고로 통하는 과일, 바로 무화과다."
첫 문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알랭드보통의 책을 읽으면 보통 첫 문장에 홀려버리고 만다. 그다음은 이렇게 말한다.
"무화과에는 성숙함이 깃들어 있다. 무화과 껍질은 수수하고 보잘것없다 보니, 그 안에 밝고 풍성하면서 달콤한 속살이 감춰져 있으리라 예상하기 어렵다. 겉만 보고 쉽게 판단하기를 멈춰야 비로소 무화과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달콤한 무화과는 함박웃음이나 환호성보다는 조용한 미소나 이해한다는 표정의 부드러움을 연상시킨다. 무화과는 서두르거나 주위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애쓰는 대신 차분히 참고 기다린다."
친구와 과일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부분을 읽었더라면 우리 무화과가 가진 매력을 차분히 설명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아침마다 무화과를 먹는 사람의 자격으로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무화과는 성숙함의 상징이 정확하다. 레몬이나 복숭아처럼 깜찍 발랄한 겉모습으로 어느 스킨케어 브랜드의 마케팅 도구로 활용될 리도 없고 좋아하는 과일이 뭐에요?하면 사람들 입에서 결코 쉽게 나오는 과일은 아니지만.
그 맛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무화과를 찾아낸다. 그릭 요거트에 곁들이는 사이드 재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화과에 요거트를 곁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성숙한 이들은 타인의 관심을 받는 일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한다. 황홀경이나 장황한 토로에 익숙하지도 않다. 그들은 비참해지지 않고도 어그러진 계획과 희미해지는 희망, 내용은 부실하고 소문만 무성한 잔치의 동향을 알아챈다. 이런 이유로 친절함과 상냥함으로 무장한 성숙한 이들은 타인을 안심시키고 사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전문가로 통한다."
올 늦여름에는 무화과 하나 드셔보시겠어요?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저자(글) · 이용재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