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 어원을 아시나요
도시를 떠나는 건 언제나 나만 어렵다. 고작 두 번 갔다고 단골이라 칭하는 숙소 앞 작은 카페와 매일 저녁 들렀던 동네 마트, 5층 방 창밖으로 내려다보던 조용한 골목길. 고풍스러운 가로등에 은은한 조명이 켜진 늦은 밤. 평범한 골목도 웨스 앤더슨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정 붙였던 낯설고도 익숙한 것들을 모두 그대로 놓고 이제는 정말 나서야 할 때.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른 아침 우버를 타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사님이 트렁크를 열고 우리의 무거운 캐리어를 꺼내신다. 20kg가 넘는 캐리어를 작고 예쁜 그릇을 다루듯 조심조심. 두 개의 짐 가방을 내려두고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그에게 함께 손을 흔든다. 상냥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친절함이라 생각되는 작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은 하나의 능력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기차 플랫폼을 확인해 둔다. 9:20분 포르투행. 출발 시간까지 30분 정도 여유가 있으니 기차역 주변에 유일하게 문을 연 카페에 들어간다. 툭툭 자연스러운 인테리어와 진열대 안에 무심히 놓여있는 아침 식사빵들.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바쁜 아침 시간, 숙련된 바리스타가 일을 처리하는 과정은 보기만 해도 신기하다. 당황스러움이란 모를 것 같은 빠릿빠릿한 동작 안에 따뜻한 커피 두 잔과 크루아상이 나왔다.
이제 내게 '빵'하면 생각나는 나라는 프랑스가 아니라 포르투갈이다.
'빵의 어원을 살펴보면 의외로 포르투갈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 시작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한 이후, 포르투갈은 말라카와 마카오 같은 주요 항구 도시를 장악하며 향신료, 비단, 도자기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인도양을 중심으로 거대한 교역망을 형성하던 중, 포르투갈 상인들은 중국으로 향하다가 일본 규슈의 다네가시마에 표류하게 된다. 당시 은이 풍부했던 일본과 새로운 무역 관계를 구축하였고 그 과정에서 포르투갈의 pão(빵)가 일본에 전파되었다. 그렇게 일본어로 빵을 의미하는 パン(pan)은 포르투갈어 pão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빵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빵이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인의 우연한 표류에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닐까.
좁은 골목길 한편에 어스름히 불이 켜진 곳이 보인다. 어디선가 고소한 빵 냄새가 나는 것 같더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도시는 아직 조용하다. 이렇게 인적 드문 시간에 걷다 보면 모든 감각이 더 섬세해지는 것 같다. 발걸음은 결국 유리 진열장 안에 빼곡히 채워져 있는 크루아상을 보고 나서야 멈춰진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러 명의 제빵사들이 분주하게 카운터를 오고 간다. 포르투에서는 항상 좁은 입구와는 다르게 넓은 내부에 놀라게 된다.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은 이미 아침 식사 중. 대부분의 테이블 위에는 에스프레소 한잔과 크루아상이 하나씩 놓여있다. 숙소 앞에 이런 집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아침은 먹고 나오지 말걸.
달콤한 케이크부터 브리오슈, 도넛, 생과일이 듬뿍 올라간 타르트는 물론이고 포르투갈에서 식사 대용으로 먹는 담백한 빵까지. 모든 것이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와 카운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입구부터 페이스트리 냄새가 풍겨오는 이유가 있었다. 계산을 위해 길게 늘어서있는 줄. 동네 주민들의 품에는 한두 봉지 빵이 가득히 안겨있다. 초콜릿과 헤이즐넛 크림이 올라앉은 크루아상 몇 개를 집어 들고 그 끝에 서본다. 주인은 바쁜 와중에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빵을 포장하고 계산한다. 당연히 매일 아침 보는 단골과의 대화도 빼놓을 리 없다.
세련되었지만 영혼이 없는 곳보다 오래되어 인간적인 느낌이 나는 장소에 마음이 끌린다. 그런 곳은 대개 기다리는 일에 관대하고 분주하지만 조급하지 않은 분위기가 존재한다. 무슨 일이든 웃으면서 대하는 공기가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는지 모른다. 이제 '빵'하면 생각나는 단 한 곳의 빵집이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진다. 동루이스 다리 근처의 멋지고 소박한 카페. 역시 평범한 외관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