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한 다발

현재를 감각하기

by 혜아

3월은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어쩐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춥지만 따뜻한 느낌의 이미지가 있다. 영화 중에서는 <냉정과 열정사이>가 생각나며 외유내강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한여름처럼 자신의 모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어딘가에 신비스러운 존재를 감추고 있지만, 그 비밀스러움을 지켜주고 싶은 달. 일 년 중 세 번째 달은 이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3월에 태어났다. 생일을 굳이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은연중에 자신이 태어난 달을 특별하게 품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3월을 좋아하는 이유는 생일을 소중한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날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것이 화려한 파티나 고급스러운 선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오히려 그 반대다. 가장 일상적인 일들로 하루를 채우다가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 하나쯤이면 충분하다. 그건 좋아하는 산책길을 평소보다 길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을 내는 것,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평소에는 먹지 않는 달달한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먹는 일 같은 것이다. 이것저것 해본 결과, 이런 방식으로 생일을 보냈을 때 가장 충만하게 행복함을 느꼈다.


그래서 내게 생일은 평소에 미뤄두었던 소박한 일을 마음껏 해내는 날인데, 올해는 생일 주간에 붉은 장미 한 다발을 샀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렇게 강렬한 색감의 장미는 사본 기억이 없다. 강렬하게 자신을 자랑하는 장미들 속에 여리여리한 색감의 한송이는 수줍어 보이지만 가장 눈에 띄는 꽃이었다. 빨간 장미만 있었으면 눈길이 가지 않았을 꽃다발이지만 가운데 한 송이를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 2025 by hyeah


예전에 꽃 사는 거.. 좀 아까운 건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잠시 동안만 아름답고 금방 시들어버리니까.

하지만 요즘은 그 아름다운 순간에 집중하게 할 수 있는 것이 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꽃이 주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망각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곧 시들어버릴 모습만 생각하며 현재의 가치를 평가절하했던 것이다. 우리는 매일 순간을 쌓아가며 살아가고 있고 그 순간을 맛보지 못하면 모든 건 그저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리고 말 것인데.


꽃이 시든 모습을 예단하는 것보다 활짝 피어있는 장미의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훨씬 좋겠다.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에서는 국내 화훼 농가에서 직접 구입하여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한 방식으로 꽃을 판매하고 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단품 5,900원, 다발 9,9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향기롭고 싱그러운 꽃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구조이며 동시에 무인양품은 어려운 지역 화훼 농가를 돕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내가 산 붉은 장미도 무인양품에서 산 꽃다발이다.

(모든 매장에서 판매하는 건 아니고 강남점, 여의도 ifc몰, 스타필드 수원, 스타필드 고양점에서 판매 중이다)


잠깐 다른 이야기지만, 무인양품 강남점에 가보면 '시락'이라는 도시락을 판매한다. 제철 식재료를 가지고 한식을 베이스로 도시락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국내 회사의 도시락을 무인양품에 입점되어 있는 것이다. 1층에 있는 무인양품 카페에서 먹으면 커트러리도 제공해 주기 때문에 혼자 간단히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 가끔 이용했었다. 외국 브랜드이지만 로컬 회사와 활발히 협업하고, 지역의 화훼 농가를 돕는 모습이 도시에 잘 어우러진 느낌이 들게 한다. 이 브랜드가 국내에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비결이지 않을까.


몇 년 전부터 꽃 정기구독이나 온라인 꽃배달, 무인 꽃집 등이 많이 생겨나면서 꽃에 대한 인식이 조금 변화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여전히 꽃은 특별한 행사 시즌에만 다뤄지는 비싸고 한시적인 것에 대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면 화훼 유통 시스템의 노후화, 인프라 구축 미비, 화훼 재배면적이나 농가 등 생산 기반의 감소로 화훼 생산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다양하다고 들었다. 이러나저러나 꽃을 일상에서 쉽고 가깝게 여겨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호주와 캐나다를 여행했을 때 사람들의 일상 안에서 꽃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물론 문화나 시장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형마트 입구에 꽃 가판대가 있는 건 너무도 이국적이었고 재래시장에서는 언제나 돌돌 말린 신문지 안의 아름답고 소박한 꽃다발을 사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90년대 미국영화만 봐도 작은 테이블 위 유리병에 꽂혀있는 몇 송이의 튤립이 허름하고 낡은 부엌을 사랑스럽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우리 일상 안에 꽃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마음의 여유 공간이 존재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사랑스러운 꽃 한단이 현재를 감각할 수 있게 하며 까다롭게 구는 현실에만 얽매여 있기엔 우리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말해준다.


5월엔 무인양품에서 프리지아를 살 계획이다.


ⓒ 2025 by hyeah


호주 시드니의 본다이 마켓, 사랑스러운 모습 ⓒ 2025 by h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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