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도서관의 매력

시공간을 초월한 독자들의 대화

by 혜아

누군가 주말을 근사하게 시작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묻는다면, 토요일 오전에 공공도서관에 가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시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게으름을 부리며 가도 충분하다. 도시의 시끌벅적함이 살아나기 전,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요즘은 대개 헤드폰을 귀에 걸치고 가는데, 흠뻑 빠진 밴드의 음악이 흘러나오면 조용한 동네의 아침이 온전히 나만의 소유가 된다.


아침이 주는 차분함을 모든 세포로 흡수하며 걷다가 도서관 입구에 들어선다. 곧바로 조잘대는 새소리 마저 끊겨 미묘하게 바뀐 분위기를 감지하면 언제나 그 찰나의 순간에 집중할 필요성을 느낀다. 둔탁한 복사기와 밤새도록 전원이 켜져 있었을 컴퓨터, 부담스럽게 쌓여있는 이메일이 가득한 대도시의 거대한 빌딩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심리적으로 확실히 다른 차원의 일이니까 말이다.



내가 공공도서관에 매료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현대 도시의 다른 물리적 공간들과는 다르게 그곳에 머물기 위한 암묵적인 경제, 사회적 필요조건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며,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는 매우 안정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어도 누군가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으며 각자의 우주에 집중하고 있는 말 없는 사람들의 묵직함에, 비슷한 종류의 상승 곡선을 그리는 에너지를 받을 뿐이다.


분야를 막론한 내면의 호기심과 궁금증의 실마리를 책에서 찾을 마음만 있다면 될 일이다. 그러니 가까운 곳에 쉽게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음에도, 그곳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일상의 크고 작은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까지 느껴진다.


대학생 때부터 이어온 꽤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다면, 읽고 싶은 책은 우선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면 무턱대고 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어떤 책을 한번 읽고 '이건 도저히 소장하지 않고는 못 배기잖아'하는 책이 나타나면 그때 서점으로 달려간다. 그러니 내가 값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책은 순전히 읽으려는 목적보다는 소장용인 경우가 많다.


그나저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빌릴 수 있는 최대 권수를 가방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심리적으로 풍족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물론 기간 내에 그 책들을 다 읽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아무렴 어때'하고 읽고 싶은 것들이 보이면 마구 빌려오는 편이다.


그러나 진짜 매력은 꽤 의외인 곳에 숨어있는데, 빌려 읽는 책을 통해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비슷하거나 동일한 정서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책이 오래되었을 경우, 그 가능성은 조금 높아지는데 이를 테면 책의 가장자리가 세모나게 접혀있거나 어떤 문장에 연필로 주욱-줄이 그어져 있는 경우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에 언제나 미간을 찌푸리게 되지만, 이런 경우 (에잇 책을 이렇게 더럽게 보면 되나-하는 순간) 에는 어쩔 수 없이 피식하고 웃게 되는 것이다.


미세하게 초점이 맞지 않았던 카메라의 렌즈가 마침내 피사체를 찾아내어 높은 해상도로 근사한 사진이 찍혔을 때처럼, 독서를 하다 보면 머릿속에 희미했던 개념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와 내가 이 책 안에서 만난 지점이 같을 때.


내게 책상을 탁탁 치게 만들었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83페이지의 모서리가 이 책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십 번이 접혀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이건 그 한 줄의 문장을 읽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틀어막았던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의미다. 저자에게 받은 영감의 형식은 서로 다를지라도 우리는 접혀있는 모서리를 통해 누군가와 미세하지만 확실한 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문장에 남겨진 연필 자국은 누군가의 감정을 담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런 '누군가'가 내가 사는 이 동네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독서라는 숲을 거닐어 볼 수 있었다.


공공도서관 서가에서의 즐거운 방황이 지지부진한 하루의 끝자락을 다시 아름답게 변모시켜 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대단한 작가들이 여기저기에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나의 손을 꽉 잡아주고 멈춰있던 발바닥에서도 뭔가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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