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하고 촉촉한 수육으로

점심과 저녁이 같아도 괜찮은 날이 있지

by 호단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다. 매일 밥 얘기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늘 쓸모 있음을 추구해서인지, 내가 무언가를 할 때에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의미다. 그 의미에 관해선 다소 편협한 생각이 있었지.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그것도 강력하게.


그런데 의미는 메시지를 제외한 것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어제와 다른

하루의 시작


오늘은 기분이 유난히 가라앉은 날이었다. 시작은 꽤 괜찮았는데 말이다. 좁은 방에서 고군분투하며 침대 위치를 바꿨다. 한 사람만 오갈 수 있는 좁은 문틈을 얻게 되었지만, 침대를 의자 겸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지였다. 눈 뜨고 제일 먼저 봤던 영상 덕분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뭐라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반성도, 인정도, 성취도 생긴다고.


이땐 이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공복 상태로 시작한 대대적인 가구 이동. 뭐 하나 해야겠다고 시작하면 끝장 볼 때까지 딴 일을 못하는 사람이기에 장장 2시간을 옮기고, 닦고, 넣고, 버리는 데에 썼다. 덕분에 점심은 느지막한 2시께. 다행인 건 잘 썰어둔 수육이 있었다는 것.



도라지에 소금 간 한 배추, 꼬막 무침까지.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과일을 먹을 생각으로 간소하게 밥을 먹었는데 막상 다 먹고 나니 식사를 더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 흘러 저녁. 점심과 같은 상차림이었다. 같은 걸 하루 두 끼 모두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오래간만에 먹어서인지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이번엔 후식도 잊지 않았다. 바나나와 귤.


프로즌 바나나




세상의

WHY


종종 그런 때가 있다. 삶이 무척이나 재미없는 때. 내일을 맞이하기 싫어 잠들긴 싫고, 생산적인 일을 찾기도 싫고, 애먼 노트북 화면이나 계속 둘러보고, 정신없이 군다. 오늘 오후 무렵이 딱 그랬다.


그림도 끄적여보고, 책도 좀 들춰보고, 일기도 썼다. 딱히 효과 있는 건 없었지만, 적어도 이유는 알았다. 불안하구나. 앞으로 살아갈 날이. 내가 뭘로 벌어먹고살 수 있을지 몰라서, 그런데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어서, 정체된 느낌이구나. 졸업하고 취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비슷한 시기이지 않을까 싶다.


기가 막힌 유튜브 알고리즘이 스트레스 풀어주는 동물 영상으로 인도했다. 15분짜리 틱톡 영상 모음이었는데, 웃음이 났다. 어이가 없고, 귀엽고, 우습고, 재밌고, 신기해서. 그렇게 넋 놓고 보고서 외국인들 댓글을 휘릭 읽었다. This video made my day 100 times. 다소 오버스럽지만, 나도 비슷한 걸 느꼈다.


평소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짤막한 영상들이 이토록 필요한 때가 있구나. 쓸모 있는 건 다양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어떤 것이든 의미가 깃든다는 생각이 손을 움직여 글을 짓게 한다. 기획 단계부터 의미를 넣는 게 있는가 하면, 완성 후에 의미가 생기는 것도 있음을 잘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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