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관계
최근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다. 정확한 제목을 말하자면, '에린 왕자'. 전라북도 사투리와 금발 머리 일러스트의 조합은 언밸런스하면서도 묘하게 어우러졌다.
다시 읽으며 깨달았다. 이 책은 돈과 시간을 쫓다가 자신이 되레 쫓기는 줄도 모르는 어른들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맺어가는 관계들과 그 형태. 이번엔 거기에 눈길이 갔다.
어린 왕자와 '나'의 관계,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 어린 왕자와 여우의 관계. 언뜻 보아서는 인간이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길들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에서 보이듯, 길들여지는 건 어린 왕자도 마찬가지다.
장미가 그의 손길을 요구하고, 어린 왕자는 바람을 막아줄 유리 덮개를 구해다 준다. 여우가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중에 어린 왕자도 자신을 기다리는 여우를 떠올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과정. 이건 단순히 언어로, 혹은 행동이나 눈빛으로 주고받는 관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작년 12월, 극심한 한파가 몰려와 창문에 서리가 끼었다. 내겐 '골든' 혹은 '황금이'라고 부르는 식물 하나가 있는데, 창문을 거의 일주일 동안 열지 못했다. 햇빛도, 맑은 공기도 쐬지 못한 황금이가 가여워 어느 새벽, 불현듯 창가에 황금이를 두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새까맣게 잊고 만다. 몇 시간이 지나고서야 다급히 화분을 꺼냈다. 설마 죽었겠어? 하는 마음으로. 물이 담겼던 화분이 꽝꽝 얼고, 그 물과 닿은 화분 아래 부분도 얼었다.
얼음을 보자, 녹여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보일러를 세게 틀고, 물이 담긴 화분과 흙이 담긴 화분을 분리했다. 서서히 녹아가던 얼음. 생명력이 강하다고 했으니까, 어느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고 했으니까,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조명이 어두운 방에서 보기에도 이파리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주 딱딱했다. 그걸 보는 순간 깨달았다. 황금이는 살아있었구나. 얘도 공기를 마시고 뱉는 생물이구나. 그런데 지금은 죽었구나.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도, 안타까움도 아니었다. 그냥 충격이었다. 살아있는 존재가 죽고서야 그 생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게. 차갑고 딱딱하게 굳은 몸뚱이를 감각해야 알아차린다니. 잔인했다. 이미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 없고, 돌이킬 수 없지만 돌이키고 싶어서 미련이 남고, 미련이 남아 후회가 불쑥 들어왔다.
혹시 건들지 않으면, 어떻게든 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 않을까. 다소 순진한 생각으로 며칠간 황금이를 가만 두었다. 해가 움직일 때마다 황금이를 옮기고, 이번엔 창문을 열어 황금이를 이불 위에 두었다. 나 또한 추위를 느끼며, 차갑고도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외면한다고 해서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잎이 오그라든 황금이를 보고 엄마가 말했지. 걔 이미 죽은 거 아니야? 그 말을 듣고 잎사귀를 툭툭 건드렸다. 건드릴 때마다 떨어지던 잎. 그 많던 잎사귀들 중에 딱 하나가 남았다.
동화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다. 죽음을 앞둔 아이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평생 떨어질 수 없는 마지막 잎새를 그린 이야기. 저 가냘픈 잎도 비슷한 의미였다. 잎이 하나라도 있는 건 살아있음을 가리키는 거니까.
매일 습관처럼 가볍게 툭 건드린 잎. 바삭하게 잘리지 않던 잎. 그러나 보지 못한 새에 툭, 떨어진 잎.
길게 자란 줄기가 무색하게 잎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마치 겨울을 견디는 나무처럼. 그러고 보니 황금이는 아직 죽은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잎을 부여잡느라 몰랐는데, 잎이 떨어진 자리에 아주 자그마한 봉오리들이 잡혔다.
평소와 똑같이, 이번엔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다렸다. 해가 좋은 아침을 만끽하도록, 물을 충분히 머금도록, 공기의 흐름을 느끼도록.
하루 집을 비우고 돌아온 새에 깜짝 선물처럼 황금이가, 다시 피었다.
작은 꿈틀임을 얼마나 기다렸었는지, 옅은 싹을 보고야 깨달았다. 마음 놓고 묵묵히 해, 바람, 물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이름을 붙이고, 잎사귀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물을 갈아주면서 나도 황금이에게 길들여진 것이다.
관계는 길들임이었다. 내가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길들이는 동시에 나 또한 상대에게 길들여진다. 내가 상대와 눈을 맞출 때 상대도 나의 눈을 맞추듯. 오래도록 길들이고, 길들여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