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단 Feb 28. 2019

<캐롤> : '나'로서 너를 마주하기

'비정상'이라 한들

여는 말 :
멜로 영화라고 해서 사랑만 좇지 않는다


세상에는, 아니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 말은 곧 영화 취향도 아주 다양하단 뜻일 거다. 화려한 색감과 액션으로 치장한 소위 말하는 눈뽕 차는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들, 세밀한 감정선을 잘 표현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또 이외에도 다양한 취향이 있겠지.


나는 주인공과 그의 주변이 함께 성장하고, 주체적으로 사는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단편적으로 보면 뻔한 구조이긴 하다. 어리숙한 주인공이 어떤 어려움에 닥쳐 주위의 도움을 받거나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켜 이를 극복한 끝에 행복을 쟁취하며 끝나니까. 어쩌면 그래서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힘듦이라는 사실이 위로를 준다. 내 생각보다 더 강한 나.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로 서문을 채웠다는 건 이 포스팅에서 다룰 <캐롤>도 같은 맥락이라는 의미이다.

캐롤이라니. 그거 로맨스 영화 아닌가? 그냥 여자랑 여자가 사랑하는 내용 아니야? 싶겠지만, 나는 그들의 사랑보다 성장을 더 크게 느꼈다. 아, 물론 처음 봤을 땐 케이트 블란쳇에 푹 빠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영화를 본 많은 이가 그랬듯이.




네이버 영화
테레즈의 성장 :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선택
그리고 솔직함


눈에 띈 건 캐롤보다 테레즈의 변화였다.

테레즈는 우유부단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무얼 먹을지 고민 않고 그저 상대를 따른다. 물론 이건 그 상대가 캐롤인지라 함께하는 첫 식사에 긴장되어 그와 같은 걸 주문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테레즈에게 분명한 변화가 나타난다. 바로 리처드와의 관계. 테레즈는 리처드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와의 연애를 이어 갔다. 글쎄, 어떤 마음이었을까. 여성과 남성의 연애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니까, 그냥 만났던 게 아닐까. 좋다는 느낌이 딱히 안 들어도 싫진 않으니까.

이랬던 테레즈는 캐롤과 시간을 보내며 달라진다. 식사 같이 할래요? 주말에 가도 돼요? 여행 같이 갈래요? 캐롤의 모든 제안에 네, 네, 네를 연발한다. 나는 이때도 거절을 못해서 그냥 받아들인 거 아닐까,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테레즈는 자신이 캐롤에게 관심이 있으니까, 자신이 좋은 쪽으로 선택한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 마음을 그대로 따른, 어쩌면 본능적인 선택.




테레즈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가장 잘 담았다고 생각하는 씬.


I miss you, I miss you


연락하지 말라던 캐롤에게 전화를 걸고, 캐롤을 부른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전화를 끊은 캐롤. 테레즈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도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는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신호가 끊긴 수화기에 대고 한 말이긴 하다. 그러나 '캐롤'이라고 부르는 목소리에서부터, 아니 캐롤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에서부터 그가 얼마나 캐롤을 보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감정이 전해졌다.



I'm not afraid


그리고 테레즈는 강인한 사람이 되었다. 일자리를 소개해 주던 친구가 두려워서 그러냐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다고 바로 답을 한 것처럼.




네이버 영화
캐롤의 성장 :
떳떳한 자신이 되기 위한
희생


캐롤은 테레즈와 달리 처음부터 여유와 기품이 넘쳐나던 사람이다.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상대를 직시하는 강한 눈빛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약하다.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딸 린디의 양육권을 가지기 위해서. 자신의 성지향성을 밝힌다는 것은 곧 린디를 뺏긴다는 의미이니까. 그래서 테레즈를 그렇게 깊이 사랑했지만 떠나고 만다. 자신이 '정상'인 것처럼 연기하며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Living against my own grain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캐롤은 깨달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린디를 정말 사랑하고, 아이를 곁에 두며 살아가고 싶지만 그래도, 자신을 부정하며 살 수는 없다고. 캐롤의 말대로 린디를 위한 선택이자, 자신을 위한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에 따르는 희생을 감수하기로 한다.

자신이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부정하며 살다가 드디어 자신을 오롯이 드러냈다. 이제야 캐롤도 테레즈만큼의 솔직함을 가진 것이다.




네이버 영화

이렇게 성장한 두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까. 메이슨 가에 있는 캐롤의 집이, 캐롤과 테레즈의 집이 되었을까. 지겨운 토마토젤리 말고 무얼 먹으며 식사를 할까. 한껏 상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자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