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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단 Dec 24. 2022

이번 크리스마스는 12월 21일

영화 <캐롤>

올해는 유난히 눈이 잦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소복이 내려앉은 흰 풍경을 보기도 했고, 길을 거닐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만났으며 우산이나 모자 없이는 한 발 내딛기 힘든 때도 있었다. 눈. 대부분 어린이가 그러하듯 나 또한 눈을 아주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골칫거리라고 느꼈다. 희게 날리는 눈발을 보아도 이것들이 쌓여서 생길 질퍽임과 까만 흔적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혹 땅이 얼기라도 하면 불편은 가중되었으므로 겨울의 눈 소식만큼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엔 무슨 바람이 들었나. 11월 초, 같이 일하던 사람이 튼 크리스마스 캐럴 때문이었을까. 출퇴근 길, 귀에 항상 꽂힌 이어폰에서는 일찌감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흘러나왔다. 특정날을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 행복하다는 걸 처음 느낀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이 없다. 캐럴도 거의 듣지 않고. 아마 이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기 때문이겠지.



12월 21일. 꼭 데칼코마니 같은 이 날은 닮은 듯 다른 캐롤의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약속을 잡고 만난 날이다. 때마침 21일엔 눈이 내리다 못해 쌓였고, 그런 날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단 게 어찌나 행복하던지. 왠지 모를 떨림과 함께 자리에 앉았고, 불이 꺼지며 영화가 시작되었다. 



* 아래부터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젠가 그런 평을 보았다. 이 영화가 감독인 토드 헤인즈의 최고작이라고. 물론 2016년 개봉작임을 감안하면 지금은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오프닝 시퀀스를 보고 동의했다. 집에서 작은 화면으로 두어 번 보았던 이 영화가 얼마나 위대하게 시작했는지.


녹슨 쇠창살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벽지 패턴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배우들 이름이 그 위에 하나씩 얹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서정적인 배경음악이 잠시간의 지루할 시간을 달래려는 듯,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들려주려는 듯 이어졌고.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인 'carol'이 뜨자 약간 부산스러운 소리가 새로 등장했다. 이윽고 카메라가 위로 올라가더니 문인지 창문인지 모를 그 쇠창살의 정체를 보여준다. 하수구. 이제부터 기나긴 테이크다. 하수구에서부터 도로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신호등.


구체적인 위치나 시대는 몰라도, 사람들의 옷차림과 북적한 분위기만으로 가닥이 잡힌다. 여긴 도시이고, 1900년 중반쯤을 다루는 듯하고, 미국인 것 같다.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거리 전체를 보여주는데 처음으로 배경음악보다 커다란 목소리가 들린다. 가판대에서 책을 사는 남자. 카메라가 다시금 움직이고, 택시를 부르는 또 다른 남성의 음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드디어 다음 컷으로 넘어갔다.


책을 손에 든 남자가 계단을 빠르고 가볍게 오른다. 손에 쥔 책을 보고 관객은 예감한다. 아, 좀 전에 책 샀던 남자구나 하면서. 그는 한 레스토랑에서 바텐더와 대화를 주고받다가 아는 사람을 발견했는지 걸음을 옮긴다.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 할 캐롤이 보인다. 하지만 남자는 캐롤과 마주 보고 있는 뒤통수의 주인공, 테레즈에게 아는 체한다. 둘 사이의 오묘한 분위기는 테레즈의 친구가 끼어들며 자리가 아예 파하는 것으로 끝난다.


궁금증을 한껏 유발하더니 영화는 테레즈의 좀 더 앳된 시절로 전개된다.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는 테레즈.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경영진이 필수로 착용하라는 모자를 느지막이 쓰고, 손님을 응대한다. 그러다가 문득 한 곳에 그의 시선이 콕 박혔다. 눈을 떼지 못한다는 표현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이, 눈도 안 깜박이며 뚫어지게 쳐다본다. 시선 끝엔 캐롤이 있었고.



둘의 눈이 마주치고, 불쑥 들어온 손님으로 잠깐 가려진 사이 캐롤은 사라졌다. 사라졌다가, 코앞에서 나타난다. 손에 쥔 장갑을 턱 내려놓으며. 자신의 딸 린디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려는데 뭘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에 테레즈가 캐롤이 보고 있던 장난감 기차 세트를 추천한다. 어렸을 때 저런 걸 가장 좋아했다며. 이름, 주소, 연락처를 적은 빌지를 끝으로 둘은 손님과 점원 간의 짤막한 만남으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캐롤이 두고 간 장갑. 이 장갑을 기차 세트에 함께 보내며 테레즈는 그 연결을 이어가고자 한다.


분실물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건 점원으로서의 당연한 행동이지만, 캐롤에게 제대로 기차 세트가 도착했는지 거듭 확인하는 그 목소리엔 분명한 기대감이 있었다. 고마움을 표하는 전화가 한 번쯤은 걸려 오지 않을까 하는. 내색하지 않아도 은근히 캐롤을 기다리던 테레즈에게 곧 반가운 목소리가 찾아왔다. 수화선 너머의 캐롤. 고마운 마음에 점심을 사고 싶다며 둘은 약속을 잡는다.



12월 21일 오후 2시.


테레즈는 공책에 캐롤의 이름과 만날 장소, 시간까지 천천히 적어 내려 간다. 한 획을 긋는 그 손길은 조심스러움이 묻어났고, 그게 참 소중해 보였다.



먼저 도착한 테레즈. 캐롤은 약속에 늦어 미안하다는 사과로 첫인사를 건넨다. 곧 메뉴를 고르는데 능숙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문하는 캐롤과 달리 테레즈는 곁눈질을 하다가 같은 걸로 달라고 한다. 캐롤과 같이 있는 동안 테레즈는 늘 그래 보였다. 캐롤이 "Would you?" 하며 무언가를 제안하고, 테레즈는 넙죽 "Yes"로 답한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에 뉴욕 외곽에 있는 캐롤 집에 가게 된 테레즈.


테레즈는 꽤 들떴던 것 같다. 새하얀 눈을 보면 몽글몽글해지는 우리네 마음처럼. 집안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기도 하며, 나름 캐롤을 중심으로 린디, 테레즈가 조용하고도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캐롤의 불청객이 찾아온다. 캐롤과 이혼 소송 중인 하비. 분위기는 폭삭 무너진다. 테레즈가 피아노 치던 화기애애한 순간이 한순간에 꿈같은 일로 뒤바뀌고, 캐롤과 하비의 날카로운 음성들을 들으면서도 듣지 않는 체하며 테레즈는 멀찍이 서성였다. 하비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테레즈를 추궁하며 무례하게 묻는다. 캐롤이랑 무슨 관계냐고. 또 무슨 짓을 벌인 거냐며.


하비의 폭주는 테레즈를 당혹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캐롤의 자존심이 다칠 만한 행동이었다. 캐롤은 힘겹게 상황을 수습해 간다. 크리스마스는 절대 양보하고 싶지 않았지만 린디를 하비 품에 보내고, 테레즈 또한 집으로 돌려보낸다.



결국 기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던 테레즈. 분명한 상처였다. 대신 담배를 사 오겠다는 말에 캐롤이 이 밤에 주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느냐는 분노 섞인 답변이 그를 아프게 했던 것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에게서 느끼는 실망감으로도 보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함.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언성을 높이는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 보다가 하루가 끝났다. 크리스마스트리를 고르던 캐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처음으로 인물 사진을 찍어보기 시작한 변화의 날이 이렇게.


침착함을 되찾은 캐롤이 테레즈에게 사과를 건네고, 테레즈는 이를 받아들였다. 캐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일지, 혹은 좋아하는 마음으로 상처를 덮어버린 것인지. 린디와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없게 된 캐롤은 접근 금지까지 받게 된다.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자신의 가족들과 보내자는 하비의 말을 완강히 거절한 캐롤에게 벌을 주듯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은 캐롤 또한 똑같이 받는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있거나 슬퍼하기보다는 뭐라도 말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서부 여행을 가려는데 테레즈에게 동행을 제안한다. 이번에도 역시, YES.


이 말에 엄청난 분노에 휩싸인 남자가 있었으니, 그의 연인 리처드다.



사실 명목상 연인이라고 할 정도로 테레즈와 그 사이엔 별다른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리처드는 유럽 여행을 가자며 오랫동안 테레즈에게 졸랐고, 캐롤의 모든 말에 좋아요를 외치던 테레즈는 대답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그런 테레즈가 캐롤과 여행을 가겠다니. 자신이 정체 모를 사람에게 밀렸다는 인상을 받은 리처드가 난폭한 말을 퍼붓는다. 2주 뒤면 자신에게 만나달라며 빌게 될 거라는, 바람 섞인 말을 뱉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캐롤이 운전하고, 중간중간 식사를 하고, 가끔은 차에서 간단히 먹기도 하고. 스탠더드 룸 2개를 쓰던 둘은 할인을 핑계로 스위트룸에 묵으며, 더 가까워졌다. 여행을 하며 점점 확신에 차던 테레즈와 달리 캐롤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끊기도 하며. 와중에 테레즈 앞에선 의연하게 굴었다.


그러나 숨긴다고 해서 숨겨질 게 아니다. 서로에게 아주 깊어졌을 무렵 일은 터지고 만다. 호텔에 딸린 카페에서 만난 외판원. 그는 외판원이 아니라 하비가 고용한 사람이었다. 둘의 옆방에서 그들의 음성을 녹음한 테이프를 하비에게 보낸 걸 알자 캐롤은 거의 이성을 잃는다. 총을 그에게 겨눌 정도로.


테레즈는 캐롤이 지닌 불안을 감지했었다. 그의 캐리어 속 총을 이전에 보았기에. 슬쩍 그에게 물어봤지만 캐롤은 두렵지 않다고 답했다. 캐롤이 말하지 않는 이상 이때에도 테레즈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장전하지 않은 총은 빈 탄창 소리만 냈고, 캐롤이 운전하는 차 안은 테레즈의 울음 섞인 말로 뒤덮인다. 이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좋다고 따라왔다며. 캐롤은 그게 아니라고 테레즈를 달랜다. 


그렇게 둘은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문제는 캐롤이 혼자 정한 마지막이었다는 것. 아침, 잠에서 깬 테레즈를 맞이한 건 캐롤의 오랜 친구이자 한때 만났던 사이인 애비였다. 테레즈는 넋 나간 사람처럼 먹지도 않고 가만히 앉았다. 딱 실연당한 모습으로. 실연이 맞긴 하다. 제 인생을 뒤흔들어 놓고선 어느 날 눈 뜨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니.


테레즈는 애비 더러 묻는다. 왜 자신을 싫어하냐고. 주어와 목적어가 바뀐 것 같았다. 테레즈는 캐롤이 애비에게는 솔직한 얘기를 하며 의지한다는 걸 충분히 느끼고 있었고, 둘이 만났던 사이란 것도 알기에. 그 마음을 아는지 그게 사실이라면 아침 댓바람에 서쪽까지 비행기 타고 왔겠냐는 말부터 애비가 열 살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라는 이야기까지 덤덤히 들려준다. 그리고 캐롤의 편지를 건넨다.



캐롤은 불같으면서도 물 같다. 화르륵 타올랐다가 금세 차분해지며 자신이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찬찬히 생각하고 행동한다. 테레즈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쾌하고 화가 날 테지만, 캐롤이 생각하기에 이건 최선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최선. 이번에도 테레즈는 아무것도 선택해보지 못한 채로 어떤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돌아온 집.


눈에 보이는 건 똑같은데 모든 게 달라졌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테레즈는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사진. 캐롤이 선물한 최신형 카메라도 있지 않은가. 포트폴리오를 착착 준비해 가며 사진을 엄선한다. 현상한 사진 중에 불쑥 캐롤이 나와서 멈칫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할 일을 할 뿐이다.


캐롤은 무얼 하고 있는가.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하비네 가족 틈에 둘러싸였다. 심리 상담사를 꾸준히 만나며 '동성애 치료'를 받는 중이다. 1950년대 뉴욕에서는 동성애가 정신병 취급받았으므로, 그들에겐 당연한 처사이긴 하다. 일련의 노력은 두 사람을 위한 것이다. 린디, 캐롤 자신.


본인은 얼마나 의식할지 모르겠지만, 실은 한 사람 더 있다. 테레즈. 자신이 아닌 사람인 척 연기하는 똑같은 일상에 숨 막혀하는 캐롤에게 애비는 테레즈 얘기를 꺼낸다. 잠시 간의 정적. 소식 뭐 알고 있느냐는 은근한 물음. 퍽이나 진지한 상황인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제 손으로 놓았는데 정작 놓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잘 모르겠는데 뉴욕타임스에 입사한 것 같다고 답하는 애비도 참. 서로 어깨동무하며 계단을 내려가던 뒷모습이 힘들 때 의지해가며 버텼을 그들의 세월을 느끼게 해 주었다.


캐롤은 하비와 자신의 변호사들과 만난 공적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모두를 배제한,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내린다. 자신의 성 지향성을 인정하고, 테레즈와 있었던 일도 인정하며. 린디 양육권은 포기하되 한 달에 최소 한 번은 만나야겠다고. 여기까지 최대한 양보한 건데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법정까지 갈 거고, 그러면 정말 추해질 거라고. 그리고 하비에게 말한다. 우리 그렇게 추한 사람은 아니잖아.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테레즈, 자기 자신을 선택한 캐롤. 둘은 알게 모르게 한 뼘 자라난 상태로 만난다. 이번엔 캐롤이 기다린다. 그가 약속 시간에 보이지 않자 전화를 건다. 테레즈가 일하는 곳에 전달한 편지가 제 주인을 잘 찾아갔는지. 그렇다는 답을 듣고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반대편 의자가 찼다. 테레즈가 온 것이다.



캐롤은 가구 바이어로 일하고 있다며 근황 얘기를 늘어놓는가 했더니 집이 꽤 큰데 텅 비었다고. 괜찮으면 함께 살자는 제안을 꽤나 대뜸 던진다. 단숨에 뱉는 그 말이 의아하기도 하면서 지금처럼 디지털로 순식간에 연결되는 세상이 아니니까, 오히려 이 전개가 당연한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테레즈는 생전 캐롤에게 하지 않던 답을 들려준다. NO.


캐롤은 반쯤 예상한 답이 아니었을까. 이따 저녁 약속에 가는데 마음이 바뀌면 와 달라는 말과 함께 분위기는 오묘해진다. 이 오묘한 분위기로 책을 든 남자가 테레즈를 부른다. 맞다, 이제 영화 초반 장면과 맞닿았다. 캐롤과 테레즈는 각자의 모임 장소로 흩어진다. 테레즈는 파티 장소에서 시간을 잘 보내면서도 한 편으로는 계속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캐롤의 시점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도 똑같지 않았을까. 똑같았을 거다.


어떻게 알 수 있냐 하면, 영화의 마지막. 결국 테레즈는 캐롤을 찾아간다. 테레즈가 멀리서 캐롤을 보고, 서서히 다가선다. 캐롤이 테레즈를 발견한다. 둘의 눈이 짧게 마주쳤던 백화점에서의 첫 만남과 달리 이번엔 서로를 뚫어지게 본다. 그렇게 눈빛이 계속 이어지다가 영화가 먼저 끝난다.


이제 테레즈도, 캐롤도 두렵지 않다.






영화가 무척 좋았다. '좋다'라는 모호한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고 느낄 만큼 좋았다. 끝나고서는 이번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해 줄 이야기가 이어졌다. 



영화 속 소품 등을 굿즈로 만들어 판매하는 '클로저'다. 첫 상영회 기념으로 캐롤과 관련된 몇 가지 선물을 받았다. 테레즈가 사용한 노트를 본떠 만든 수첩, 편지지, 스티커들을. 은근 묵직한 선물을 품에 안고 완벽한 마무리를 지었다. 12월 21일 오후 2시, 그들의 점심 약속에서 곁들인 마티니를 마시며.



뒤에 일정이 있어 오래 음미하진 못했지만, 이런 경험 자체가 좋았다. 사실 12월 21일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며칠 전일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코끝 시린 겨울과 딱 맞는 영화를, 영화 속 뜻깊은 날짜와 정확히 같은 날에 보며 영화에서 나온 음식을 맛보며 마무리 짓다니. 그들이 담긴 장면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내게도 소중한 날이 하나 더 생겨 기쁘다.


다가올 25일보다 더 좋은 기억이 생긴 것 같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12월 21일이었던 걸로!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상영회 참석 후 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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