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5월 5일의 일기
작년 위시 리스트 중 하나가 무주영화제에 가는 것이었다. 특별히 그 영화제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저 '영화제'에 가보고 싶었다.
글쎄. 왜 가보고 싶었을까. 단순히 영화에 관심이 있어서였을까.
어영부영 고민만 하다가 결국 가지 못했던 작년의 나. 그러나 삶은 흐름이다. 한 시간 전에는, 어제는, 저번 달에는, 작년에는 못했던 것들을 오늘은, 내일은, 어쩌면 몇 년 뒤에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해 5월의 나는 새로운 위시를 이뤘다.
금요일 늦은 밤, 도착한 전주
수업이 끝나자마자 고속터미널에 갔다. 그곳에서 장장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전주.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 40분이었지만 연휴의 여파였을까, 예상보다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삼각김밥 하나 삼킨 게 전부였던지라 참 배고팠던 기억이 난다.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고, 과자와 맥주를 집고.
그렇게 노닥거리며 20분 여를 봤던 <나를 찾아줘>.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내용이 가물가물할 때쯤 다시 한번 보고 싶다.
하루가 24시간임을 느껴보는 토요일
사실 예매한 영화가 하나 더 있다. 하지만 나폴리를 보고 나오니 기가 빨려서 다음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웬걸, 예매 취소 시간도 지났다.
보통 이 상황이라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영화를 보러 갔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문득 생각난 작년 가을 일. 세비야에서 플라멩고 공연을 18유로 주고 예약했으면서 동행들과 먹고 노는 게 즐거워서 가지 않았던 전적이 있다. 심지어 티켓을 미리 받아야 하나, 하고 기꺼이 10분 거리를 걸어갔으면서도 식당으로 돌아가 맥주를 퍼마셨다. 이쯤 되면 습관인가. 뭐 하나 더 먹겠다고 미리 지불한 것쯤은 돈으로도 여기질 않다니.
여기서 각설하고
영화 얘기 좀 하자면,
<개막작>
나폴리: 작은 갱들의 도시
1.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보이지 않는다.
2. 여성 캐릭터는 죄다 남주인공과 그 무리들의 유희의 대상, 성적 도구이다. 오버뷰 봤을 때부터 우려했던 부분이 예상 적중할 때의 그 참담함이란.
3. gv가 있어서 영화가 끝난 후 감독의 의도나 관점을 들을 수 있었다. 기억 남는 코멘트 몇 가지. 10대의 시선-특히나 남주인공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을 편견 없이 그리려고 했다. 그래서 어른들의 개입이나 제재가 없다. 남주인공과 다른 갱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다. 여기서 아버지의 부재라는 건 상징적으로 제도와 교육의 부재를 의미한다. 남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렸기 때문에 그의 애인은 욕망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영화를 본 후 든 생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모든 행동에 인과관계나 흐름이 존재하지 않고, '갑자기'만 존재하는 영화. 나폴리가 치안 나쁜 도시라는 건 아는데 고작 그 사실 하나로 모든 연결고리를 퉁치기엔 무리다.
앞서 얘기했지만 여성 캐릭터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주 불쾌하다. 더 불쾌한 건 이게 아주 흔한 방식이라는 거다. 욕망의 도구, 소모품, 남성향적 요소를 때려 박기 위한, 한 마디로 남주인공을 위해 쓰다가 버리는 용도. 이 점만 언급해도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어떤 수준에 머무를지 답 나오긴 한다.
<미드나잇 시네마>
독일, 겨울 이야기
나폴리와 비슷한 부류의 영화이지만 훨씬 폭력적이고 극적이다. 더 이상의 바닥은 없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최악은 아주 깊은 곳에 있다. 끝없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다 멈칫하며 망설이지만 다시 기어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워낙 제정신 아닌 듯한 존재들의 모임이라 그런지 개연성이 부실하다는 느낌은 그다지 안 들었다. '그래, 저렇게 미쳤으니 그럴 수 있지' 수긍이 됐다고 할까. 촘촘하지는 않지만 거슬리지도 않은 정도.
보는 내내 인간관계와 애정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화내고, 목이 찢어지라 울고, 헤실거리며 웃던 베키의 모습에 기분이 아주 찝찝하고 슬펐다. '너희는 무조건 나만 사랑해 주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베키. 사랑을 받는 건 그와 몸을 부대끼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베키.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베키.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없다면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거다. 이렇게까지 극악으로 치닫지는 않더라도.
예쁨 '받고' 싶어 하고,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수동적인 객체.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듯한' 자의 존재감이란 무지막지할 거다. 나 대신 나를 사랑해 줘, 아껴 줘, 예뻐해 줘. 기꺼이 바닥에 엎드려 꼬리를 흔든다. 이때의 나는 타인의 인형이 되는 거다. 그에게 예쁨 받으려고 온갖 작태를 부리며.
베키는 그들에게 예쁨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주도권을 가지고 상대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래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자신의 중심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맞는가? 나는 맞다고 본다.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고, 때리고, 소리치고 화를 내던 그가 유일하게 무너졌을 땐 두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했던 순간이니까. 베키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집으로 돌아간 후부터 계속 기다렸을 거다. 나를 찾아와. 다시 날 필요로 해 줘. 나를 좋아하고, 나만 사랑해 줘. 그래서 그들을 집 안으로 맞이하고, 그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돌아간다.
아, 그래서 기억 남는 거. 토미가 운전 중이던 미키에게 총구를 겨누며 나를 사랑하냐고 묻던 장면.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확답을 듣기 위해 계속 미키를 몰아세우던 토미. 꼭 베키가 토미에게 하는 것 같았다. 베키가 불안에 떨며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느낌.
딱히 인상 깊은 메시지는 없고, 같은 이야기가 한참을 반복하다 약간의 변주만 주다 뻔하게 끝난 것 같다. 그러나 감정선이 스토리에 잘 스며들어서 꽤 괜찮게 봤다. 아주 훌륭하다! 싶은 건 아니지만.
딴소리) 음량이 너무 커서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뇌가 울리는 기분.
죽은 자의 아이들
이 영화는 정말... 졸았다. 졸고 졸고 또 졸았다. 첫 번째 영화 끝나자마자 직감했다. 다음 영화는 백퍼 잠들 거라고.
그래도 초반엔 잠들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난다. 독특한 영화 형식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찍는 듯한 느낌. 또 인물들이 입만 뻥끗거리지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들이 입을 뻐끔거린 후에 까만 화면으로 바뀌며 그 위에 자막을 얹는 것으로 이어지는 점이 흥미로웠다.
영화에서 가진 소리는 배경음뿐이었다. 이게 아주 좋았다.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과 아주 잘 어울렸다. 마지막에 홍학이 나온 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만, 초반의 미스터리 한 느낌이 흥미로웠다. 실험적인 영화라는 카테고리에 딱 어울린다.
더 워닝
이 영화가 얼마나 반갑던지. 난해하고 복잡하고 머리 아프던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무려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이것도 중간에 잤다 깼다를 반복하고 말았지. 영화 후기에 잤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쓴 적은 처음이다. 현대물이라 정말 안 잘 줄 알았는데.
후에 오버뷰를 보니 평행우주가 섞인 이야기였단다. 시작하자마자 건물의 끄트머리가 나왔을 때 꼭 sf에 나올 법한 우주선인가, 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나름 복선이었을까. 꿈보다 해몽인가.
참여진에 넷플릭스가 있었으니 나중에 업로드되지 않을까. 그때 다시 보면 되겠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졸았던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에 전주 가면 또 먹어야지
베테랑 칼국수
길거리야
현대옥 콩나물국밥
다우랑 만두
사진을 찍지 않았다. 정말 찍은 사진이 없어서 놀라울 정도. 예전에는 음식 사진이며 길거리 사진이며 찰칵질을 엄청 해댔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핸드폰을 꺼내고, 보기 좋은 사진 구도를 찾고, 여러 번 버튼을 누를 시간에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음식을 맛보는 게 훨씬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다. 맛있으면 굳이 찍지 않아도 된다. 혀가 기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