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다루는 능력자가 '아름다운 마법 변신 소년' 꼴
겨울왕국 2는 개봉 전부터 예매율 95%에 육박한(cgv 기준), 어마어마한 팬을 거느린 영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엉망진창이었다. 스토리의 주축이 되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주인공 자매는 어디 가고, 오버스러운 유머 코드와 전편의 패러디 따위로 시간을 겨우 메운 느낌이었다. 특히 엘사의 능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히 짚어보자고 한다. 어떤 점이 엘사의 능력치를 깎아 먹었는지.
엘사가 얼마나 우스운 능력자가 되었는가
*스포
•도전이나 모험을 떠나는 자세, 모습
본인을 가로막는 말(horse), 물의 정령과 힘을 견줄 때 엘사가 거추장거리는 옷을 버리고 달려든다. 그런데 레깅스 같은 내복과 기다란 트임 치마는 그대로였다. 활동에 거슬리는 이 차림새가 정녕 전투를 위한 착장인가. 이렇게 옷의 제약을 받는 엘사가 정령보다 더 강하길 바라야 한다니. 이것도 어이없는데 물의 정령이 그다지 힘도 못 쓰고 엘사에게 길들여진다. 만약 엘사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거라면 그만한 증거를 보여야 관객으로서 이해가 되는데 누가 봐도 약해 보이는 모습으로 분노한 정령을 잠재웠다니. 이건 스토리의 주된 캐릭터를 우습게 만든 꼴이다. 덧붙여, 엘사는 능력 면에서 새로운 발전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무작정 달려들어서 막무가내로 이겨낸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그가 변한 점이라곤 하나다. 땋은 머리를 풀고,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버리고 왔던 굽 있는 부츠보다 더 '구두'스러운 힐을 신고. 그렇게 개고생 해서 찾은 진정한 자신은 '아름다움'인가?
•전편인 'Let it go'를 울라프가 우스꽝스럽게 따라 해서 엘사가 창피해하던 장면
두 가지 포인트를 짚어볼 수 있다.
첫째, let it go 가 단지 듣기 좋은 ost가 아니라, 스토리와 캐릭터 구축에 얼마나 중요한 장면이었는지.
둘째, 여성 캐릭터는 왜 쫄쫄이 같은 옷을 입고, 손바닥 만한 허리와 대비되는 넓은 골반에 엉덩이를 씰룩이는 움직임을 보이는지.
먼저, let it go는 엘사 캐릭터의 터닝포인트이자 스토리의 클라이막스다. 엘사는 평생 참고만 살았다. 속마음을 감추고, 자신이 가진 것을 외면하며 살다가 처음으로 마음을 드러내고,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원래 자신은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흉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거다. 안나를 위협했던 손 끝에서 얼음 계단이 뻗어 나오고, 단단한 얼음벽이 생기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공격만 할 줄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은, 사실 위대한 존재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억눌렀던 자신을 처음으로 실컷 발휘했을 때, 그 해방감은 얼마나 짜릿했을까. 영화 보고 나서 이 노래 들으면, 엘사가 족쇄 같던 장갑을 날리고 성을 만들던 모습이 떠오를 만큼 인상 깊다. 그래서 let it go가 그렇게 유명세를 타고, 영화가 흥행했겠지.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진 let it go가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그것도 엘사가 생명을 준 눈사람으로 인해. 울라프 캐릭터 자체가 새하얀 눈처럼 무해하고 순수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굳이 들어갈 장면은 아니다. 고작 잠깐의 웃음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울라프가 따라 하던 모습은 엘사가 엉덩이를 씰룩이며 걸어가 문을 닫던 장면이다. 아니, 여기서 왜 엉덩이를 씰룩대며 걸을까. 본인의 힘을 과시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걸음걸이인가? 한 사례만으로 일반화한다고 볼 순 없다. 게임에서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라. 대부분 마른 몸, 쫄쫄이 옷, 그리고 '도도한' 워킹까지. 싸우려고, 이기려고, 혹은 능력을 과시하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러겠냐는 말이다.
•결론
겨울왕국 1편도 그렇지만, 2편은 더더욱 유해하다. 그나마 1편에서 보였던 엘사와 안나의 유대감, 성장, 강인함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남은 건 엘사가 머리를 풀고,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또각거리며 '나의 방향을 찾아가는 주체적 여성'이랍시고 외치는 모습.
엘사는 강해질수록 '아름다워진다.' 어린아이들은 이걸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따라 하고 싶겠지. '예쁘니까.' 그리고 이 생각이 이어질 거다.
"여성의 힘은 아름다운 외모, 세팅된 긴 머리, 깡마른 몸, 커다란 눈, 어려 보이는 얼굴, 마른 몸에 딱 붙는 드레스, 또각 구두에서 나온다."
"여성의 권력은 타인에게 예쁨 받으며 커진다."
이렇게 하나하나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를 예쁘다고 평한 것 자체가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게다가 유튜브 리뷰들을 보라. 모두가 입을 모아 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찬양하고 있다.
그래서 묻고 싶다. 영화가 '재밌다', '웃기다' '영상미 좋다' 혹은 '정령이 귀엽다'로 감상평을 끝내도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