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를 이해한다는 것

어렵고도 험난한 길

by 호단

사람은 비슷하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고, 편하게 늘어지는 시간도 필요하고, 질 좋은 숙면을 취한 날엔 전 날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왜 다툼이 발생할까? 큰 틀은 같아 보일지라도 세부적으로는 다르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이 저마다 다르고, 재미를 느끼는 요소가 다르고, 편함을 느끼는 시간대와 장소, 환경이 다르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별 수 없이 같으면서도 다른 인간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완벽히 맞는 짝은 없다. 맞춰가야 할 짝은 널렸고.


나와 다른 상대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렵다. 다름이 이해 가능한 거리는 자신의 특성과 상대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여러 특성이 얽혀 있겠지만, 크게 서로의 환경이나 성격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를 기점으로 나뉜다. 성격은 그래도 맞춰갈 수 있다. 배려와 인내를 통해서라면. '말은 쉽지' 싶을 수 있다. 안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이 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스스로 느끼기에 모난 기질을 감싸고, 둥근 기질은 개발하여 성격을 만든다. 선천적인 특성이 기반에 깔려있지만, 후천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는 영역이다.


내가 느끼는 어떤 상대의 어려움은 환경에서 온다.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소규모 집단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온 사람. 나와 정반대의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대체로 상대의 눈에는 별 거 아닌 문제가 나의 눈에는 별 거다. 같은 이유를 들어 정반대를 주장한다는 것은 끝없는 토론과 같다. 타당성이나 논리로 승부가 날 수 없다. 이건 그저 다름의 문제니까.


이해는 무엇인가. 이해는 일정 부분 혹은 그 이상의 희생이 필요하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든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의 삶을 온전히 느끼고, 거기서 더 나아가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거리가 먼 사람이라면 이 단계까지 필요 없다. '우리 다른 면이 있구나'로 이야기가 끝난다. 문제는 지금 나처럼 일정 기준을 넘어 선, 아주 가까이에 사람을 두려는 경우다. 태어나서 현재까지 지속된, 독립 전까지 지속될 환경은 쉽게 바꾸기 어렵다. 그 환경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제외한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 그들의 생각을. 그러기 위해선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무뎌진 자신부터 변해야겠지. 사실 이 부분은 여전히 확신이 서질 않는다. 상대가 과연 기호와 취향이, 즉 생각이 확립되기도 전부터 이어온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게 될지.


이해를 목표로 끝없이 싸웠다.

같은 문제, 같은 이유, 같은 결론. 답은 없다. 상대가 그 환경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이 지난한 반복에 진전 사항을 꼽자면,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려는 욕심을 버리게 되었다. 포기와 버림은 다르다. 전자는 손 놓고 무시하는 것이고, 후자는 다른 관점으로 같은 상황을 보는 것이다.


여기 두 사람, 노랑과 파랑이 있다. 친밀한 사이의 그 둘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꾼다. 한 배에 탔다. 쉬운 여정은 아니다. 파랑의 환경은 아주 폐쇄적이고, 강압적이다. 파랑과 파랑의 가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커다란 사회보다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에 더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노랑은 정반대다. 자유롭고, 개인이 중시되고, 개인의 의사를 마음껏 드러내고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았다. 그 둘은 전혀 다르고, 서로 전혀 다름에 고통받았다. 이해할 수 없는데 이해하려고 했으므로. 노랑과 파랑이 합쳐진 초록이 되어야 그들의 배가 안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달았다. 둘의 색이 합쳐진 초록은 완벽한 색이 아니다. 그들과 또 다른 색일 뿐. 파랑은 파랑대로, 노랑은 노랑대로 살아온 삶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각자의 색대로 살면 된다. 배가 하나라고 해서 한 사람만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두 색이 만들어 갈 이야기는 통합된 한 색이 만들 이야기보다 다양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혼자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