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게으르지 않다
스무 살
대학을 갔다. 가기 싫었다. 목표치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 납득하기 어려웠다. 재수할 용기도, 돈도 없었다. 일단 뭐라도 비빌 구석을 남겨둬야 했다. 그게 안전하다고들 했으니까. 꾸역꾸역 다녔다. 전공수업을 하나도 안 듣고 교양으로 채웠다. 그러다 (강제) 여름 방학 토익 특강 공지를 보고, 자퇴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떻게 말하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때로 감정이 너무 강하게 들면, 눈물이 범람한다. 얼굴이 덜덜, 목소리가 덜덜, 눈 밑이 덜덜. 그렇게 허락을 얻어냈다.
집에서 허락받기가 가장 어려울 줄 알았는데 자퇴 절차에 비해선 껌이었다. 자퇴 신청서를 작성해서 프린트하고, 학교에 가서 제출하고, 지도교수님이 부재중이라 학과장님과 전화하고, 사인받고, 국장을 뱉어야 하는데 통장 한도에 묶여서 출금이 안 되고, 통장 개설한 은행에 가고, 도장이 없어서 급하게 새로 파고, 다른 도장은 안 된다길래 무용지물이 되고, 자필서명으로 대체하고, 입금하고, 다시 학교에 가고, 마지막 도장을 찍고, 버스를 탔다. 언덕길을 내려가며 나는 기쁨과 오묘한 불안을 느꼈다. 6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1, 대학교 1에서 무소속. 소속감을 잃은 날 동시에 소속감의 존재를 느꼈다.
스물한 살
고3 때보다 놀았는데 성적은 더 잘 나왔다. 아주는 아니고 조금. 그런데 의욕이 없었다. 나에게 많이 실망했다. 나보다 성적 나쁜 다른 친구는 원서를 잘 넣어서 나보다 좋은 곳을 갔다. 배아팠다. 원치 않은 대학교 2에 입학했다. 싫었다. 창피했다. 집에서 남자가 쪽팔리다고 한 말에 상처 받았지만, 동시에 인정했다. 나도 쪽팔려.
처음으로 알바를 시작했다. 편의점 알바, 남들은 쉽다는데 시재가 자꾸 마이너스 났다. 오만 원 날린 적도 있었다. 돈을 번 게 아니고 자원봉사 급. 왜 쉬운 일도 못할까. 답답했다. 점점 작아지는 내가 미웠다. 학교-집-학교-집-학교-집-학교-집-학교-집-알바-집-알바-집. 반복.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학회도 들어가 보고, 과 동기도 만들어 보고, 공부도 습관처럼 계속하고, 나름 발버둥 쳤다. 그러나 발버둥 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 같았다. 왜 애쓰는데 나아지질 않아.
스물두 살
학점이 점점 떨어졌다. 2학기는 15학점 듣고, 심지어 사이버강의도 하나 들어서 학교에 거의 안 나갔다.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무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 문화센터에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 3개월 정도. 이때도 애쓰긴 했다. 다만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무얼 했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스물세 살
쉬었다. 쉼이 필요했으니까. 집에서는 당연히 말렸다. 내가 힘들다는데 알 바인가? 무시하고 휴학했다. 자퇴만큼은 아니어도 휴학이 꽤나 복잡한 대학교 2였다.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찾기. 나를 찾기.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
방향을 잡고 싶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몰라서 어쩌면 내가 앞으로 걷는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뒷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멈춰야 했다. 적어도 뒤로 가지 않으려면.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10개. 전시회, 사무, 채점, 백화점 판촉, 행사, 출구조사, 페어. 많은 사람을 스쳤다. 낯을 많이 가리던 성격이 이때를 기점으로 점차 나아졌다. 먼저 말을 걸고, 들이대 보고, 의기소침했다가, 의연한 척 굴었다. 집 눈치가 보여 자격증 두어 개를 땄다. 남들은 어렵다는 것을 한 번에 해냈으니 기특해할 법도 한데, 그저 돈 굳었다며 신기해했다. 나를 아껴주는 법을 몰랐다. 뭘 해내도 해낸 줄 몰랐다.
유럽여행을 갔다. 혼자. 기대와 불안 사이를 쉴 새 없이 넘나들었다. 화장실에서 유로화를 정리하다가 변기 뒤편으로 5유로가 빠지고, 노숙자가 길에서 말을 걸고, 창문을 열면 지린내 나는 숙소에 머물고, 영어로 말을 걸어 보고, 얼결에 생긴 동행인들과 노는 것이 좋아 예약한 공연을 날리고, 인종차별을 당하고, 널찍한 공원에서 광합성하고, 밤에 숙소까지 뛰듯이 걸어가고, 비를 쫄딱 맞고 버거킹에서 맥주로 몸을 녹이고, 소매치기하러 다가오는 집시를 맞닥뜨리고, 28인치 캐리어를 대신 들어주는 현지인을 만나고, 에너지 넘치는 호스트들에게 기빨리고, 호스텔 내 프로그램 참여했다가 거의 종일 묵언 수행하고, 공짜 술을 퍼마시고.
쓰다 보니 끝도 없다. 기억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이유는 여전히, 가끔 앨범을 뒤적이며 되새기기 때문이겠지.
많은 경험을 했지만 아직도 나의 방향을 찾지 못한 스물셋을 지나, 터닝 포인트.
스물네 살
때로는 자신을 알기 위해 타인이 필요하다. 스스로 후려치기 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내가 나를 볼 줄 몰라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장 많은 도전, 가장 많은 변화, 가장 많은 활동.
영화 제작 동아리. 이곳에서 삶의 기점을 만났다. 당일까지 고민하다가 지원 마감 한두 시간 전에 동방 밑으로 밀어 넣었던 지원서. 꽤 떨지 않고 임했던 면접. 합격. 어색함. 그 틈으로 들어온 사람. 나의 글을, 나의 생각을, 나의 신념을, 나의 취향을, 나의 습관을, 나의 서툶을, 나의 성급함을, 나의 분노를, 나의 슬픔을, 나의 고통을, 나의 말을, 궁금해했던 사람 하나. 지금까지 이어진 인연 하나, 둘, 셋, 넷 중 가장 커다란 하나.
무엇보다 나는 나의 글을 사랑했음을, 나의 글을 사랑하는 타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확인했던 소중한 해. 욕심을, 자신감을, 승부욕을 다시 품었다.
그리고
스물다섯
너 정말 열심히 산다.
놀랍게도, 요즘 내가 듣는 말.
1월: 도전.
2월: 도전 성공+도전 성공+도전 성공+도전 성공.
3월: 여러 가지 일과 그만큼 다양한 데드라인. 계획을 세우고, 하고, 밀린 것은 일정을 조절해가며 처리하며 보낸 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수준과 양을 가늠했다. 사실 처음이다.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순차적으로 처리한 것은.
4월: 더 나은 도전을 위해 오늘도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대학교 4학년, 그러니까 보통 취준생으로 부르는 시점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이제야 해보기란 아주 쫄린다. 불안하고, 무섭다. 어떻게 돈을 벌지, 어떻게 내 몸 하나 잘 건사해서 근사하게 보살필지, 고민스럽다. 집에서 쏟아지는 취업 압박도 무겁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래서 하고 있다. 미래를 고려하되 현재에 집중하여, 최대한 잘 가꾸어내는 것이 바람직한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