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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단 Jul 27. 2020

타인의 시선이 잡아먹은 나

영화 <영 어덜트>

영 어덜트. 정반대의 단어 두 개의 합. 알듯 말듯한 이 단어는 영화 장르를 뜻한다. 10대 청소년의 성장물 쯤으로 풀어쓸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10대도, 20대도 아닌 30대 후반이다. 반어적인 표현인 걸까?



반쪽짜리 어른

주인공 메이비스는 꼴이 엉망인 상태로 침대에 끌려가듯이 잠든다. 일어나자마자 커다란 페트병에 담긴 콜라를 통째로 마신다. 일을 하는가 싶더니 금세 집중력을 잃고 밀린 메일을 확인한다. 그러다 아기 사진에서 멈춘다. 10대에 만났던 전 애인의 아내, 고향 친구 베스가 득녀했다.


메이비스는 한참을 곱씹다가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전한다. 자신의 추측을 덕지덕지 붙였다. 뻔히 보이는 의도를 친구가 모를 리 없다. 오버하지 말라며 나무란다. 메이비스는 시치미 뗀다. 그리고 머큐리와 머큐리에 여전히 살고 있는 그들을 조롱한다. 그들과 자신을 분리하며 우월감을 얻는 메이비스. 어엿한 성인이라기보다는 사춘기 무렵의 십 대 아이, 영 어덜트 같다.



메이비스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 고향은 머큐리. 지금 살고 있는 도시와 상극을 이루는 시골이다. 작가가 되겠다며 시골에서 뛰쳐나가 서 현재 꽤 괜찮은 대필작가가 되었다. 대외적인 이미지는 그럴싸하다. 실상은 달랐다. 원고를 넘겨달라는 독촉 전화를 피하고, 할 일을 미루고, 요령껏 산다.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지도 않는다. 메이비스의 글은 우연히 들은 타인의 대화에 살을 붙인 결과다. 메이비스는 그런 자신에게 한껏 취한다.

이때 지긋지긋한 고향으로 돌아갈 이유가 생긴다. 전 애인이 딸 작명 파티에 메이비스를 초대했다. 오래전에 끝난 사이인데도 메이비스는 불같이 화를 낸다. 그리고 옷을 잔뜩 챙겨 머큐리로 향한다. 전 애인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단단히 착각하며. 메이비스는 잘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고 싶어서 애쓴다. 도시에서도 불행한 자신과는 다르게 촌구석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전 애인. 메이비스는 전 애인의 행동과 말을 제 입맛에 맞게 해석한다.



남은 반쪽은 무엇으로 채웠나

미련 남아서일까? 아니다.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머큐리에 있는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공식이 깨졌다. 우월감을 느낄 비교대상이 사라지자 교묘하게 방향을 튼 것이다. 열등감은 자기 비하의 일종이면서 방어 수단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좋은 것, 멋진 것, 근사한 것을 누리길 원한다. 하지만 언제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비교하면 할수록 자신의 결점만 늘어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교하는 저울을 부수는 것이지만, 당황한 나머지 가장 쉬운 방법을 고른다. 상대의 결점을 끌어 와 자신을 채운다.


네이버 영화


메이비스의 열등감은 작명 파티 날에 완전히 드러난다. 욕하고, 저주하고, 마음껏 비꼰다. 누구도 그런 메이비스에게 반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배려, 동정, 위로. 메이비스가 무시했던 머큐리 사람들은 오히려 메이비스를 불쌍히 여겼다. 자존심까지 상처 입은 메이비스는 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작은 키, 절뚝거리는 다리, 후덕한 몸. 과거 자신이 무시할 정도로 별 볼 일 없던 남자였다. 그러나 메이비스는 자신의 수준이 그와 비슷하다고, 다를 거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 날, 메이비스는 머큐리에 사는 다른 친구와 대화한다. 속내를 그대로 털었다. 자신의 삶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 행복하지 않다는 것.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혼란까지 인정한다. 속 깊은 이야기를 듣고 친구는 답한다.


아니, 너는 달라.
더럽고 하찮은 머큐리와 다르게 너는 멋져.



메이비스가 원하는 말을 들려주었다. 저울질을 멈췄던 메이비스 눈에 희망이 차오른다. 머큐리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어제 수난을 겪은 것이다. 도시에 돌아가야겠다. 이런 메이비스를 친구가 붙잡는다. 나도 데려가 줘. 메이비스는 답한다.


너는
여기가 더 어울려.



메이비스는 결국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자기 합리화로 메웠다. 열등감을 잠시 인지했던 메이비스는 원래의 영 어덜트로 돌아갔다. 메이비스는 앞으로 몇 번이나 열등감과 우월감을 오갈까. 열등감은 항상 나쁘지만은 않다. 성장을 위한 좋은 자극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이 이 의미에서 나왔을 거다.


또, 열등감은 결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나의 결점과 상대의 강점을 비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환경을 손쉽게 조성하는 게 SNS를 포함한 여러 미디어 매체다. 화면 너머의 인물들은 행복해 보인다. 그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을 연결 짓는다. 같은 인간인데도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저울질에 집중하던 자신은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사실과 질문의 나열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나쁜 점/상황보다 좋은 점/상황을 보여주려고 한다.

나는 타인의 가장 좋은/잘난 점을 보고 있다.

나의 나쁨과 타인의 좋음을 비교하는 순간, 내 인생은 더는 내 것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 타인의 말, 타인의 삶에 종속된다.


문득,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벗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 던져 볼 질문이 있다.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은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까?


잘 모르겠다면 자주 저울에 올리는 타인의 장점 혹은 부러운 점을 생각해본다. 당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타인이 우월하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만약 그 상대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라면, 질문 두 가지를 덧붙여 본다.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가?

은연중에 상대방이 나보다 못나다고 혹은 잘났다고 생각했는가?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과정이 더 힘들다. 하지만 기대해주길 바란다. 기나긴 길 끝에서 어덜트가 된 자신을.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코미디, 드라마


러닝타임

94분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


출연

샤를리즈 테론(메이비스 役), 엘리자베스 리저(베스 役), 패트릭 월슨(버디 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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