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교육대학원 마지막 논문 학기에 남편의 진급과 정규과정 교육으로 대전 자운대로 이사를 왔고 근처에 있는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있는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 한번 민화를 배우는 시간은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민화는 호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때 선생님의 소개로 이름을 작명하듯 낙관과 받는 호가 ‘하랑’이다.
“하랑”
‘물결 河하 밝을 朗랑’ 밝은 물결 즉 긍정적인 영향 및 밝은 에너지로 해석되었다. 밝은 이미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를 소개할 때 하랑을 붙이곤 한다.
2023년 초대 개인전기 작가노트에 썼던 글을 소개해본다.
작가노트
“희망을 꿈꾸게 하는 그림 민화”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한국 미술사 책 속에 조선 시대 후기, 서민과 여성 또는 인정받지 못한 비주류의 그림이 <민화>라는 글귀에 내가 마치 민화처럼 느껴지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교육대학원을 마치고 군인 남편의 전출로 대전 자운대로 이사했던 그해로 기억됩니다. 동기들은 임용준비 또는 학교 교사로 취업하여 활동하는 그때, 저는 군인 가족의 환경적 제한이라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서양화 전공인 제가 한국적인 재료와 민화를 만나 그리는 행위를 통해 깊은 위로를 받고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민화는 생활을 담아낸 길상화의 특징이 있습니다. 길상(吉祥)이란 ‘아름답고 착한 징조’라는 뜻으로 운수가 좋을 징조,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이러한 동물이나 식물, 해와 달, 별 등에 길상의 의미를 그림으로 도안화하여 상징적인 의미로 그렸습니다. 하랑의 민화 작품을 통해 관람객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작가노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민화를 시작한 계기가 알 수 없는 열등감에서 비롯 되었다. 민화는 토속적 기복신앙의 의미가 크다. 군인교회의 시선들이 의아함을 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해의 소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하랑이 ‘하나남의 사랑’의 줄임말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이 또한 하나님이 크게 그려주신 ‘빅 픽쳐 은혜’인 거 같다.
군인가족이라 억지로 이사했다는 얼울함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민화를 배웠고 전시회 또한 군대 안 갤러리였기 때문이다.
하랑이라는 이름으로 옛 그림을 그리면서 그 시대의 사상과 작가의 손길을 느끼고 재해석하는 기쁨도 누린다. 그냥 지나쳐 보던 프레임 속 그림이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세상까지 연결해 주는 체험과 그려진 사물 하나에 웃음 짓고 감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익살스럽고 섬세한 표현들에 대단함을 느끼고, 역사 속에 이름만 남은 작가의 혼을 위로하며 존경한다. 아직은 나만의 생각을 담은 그림을 연습 중이지만, 옛 그림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나만의 해석이 담긴 작품을 꿈꾼다. 10년, 20년 뒤를 상상하고 계획할 수 있게 해주는 민화를 그리는 나, 하랑을 사랑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