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군인가족인 나는 결혼생활 15년 동안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 주기로 이사를 다녔다. 남편은 먼저 전출지로 떠났고 관사가 나오려면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 시간 동안 속절없이 밀려오는 우울감을 견디는 것이다. 올해 겨울부터 남편은 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대략 6~7년 동안 월말부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언제 가는 있을 일이었지만 강원도의 겨울이 더 춥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지금 나는 또 마음이 허전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다시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사라지고 나는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에 매몰된 것이다. 남편은 나에게 친구이자 소통의 창구였고 의지의 대상이었다.
아이가 둘이 있어도 아이들보다는 친구인 남편의 소통이 더 위로가 되었다. 낯선 지역, 아는 사람 없는 양구에서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그림을 그렸지만 이 또한 어느새 사그라들고 요즘엔 붓조차 들기 싫어지는 나를 마주한다.
‘ 정신건강센터를 방문해 볼까? 여성마음 상담전화를 해볼까? 글을 써볼까? ’
참 많은 고민과 생각, 포기와 시작을 반복했다.
이윽고, 지금의 내 상태를 글로 표현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글쓰기 책을 검색해 보고 도서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10개의 제목을 써놓고 글을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국은 잘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문득, 아이들이 앞가림을 할 때까지 키워주면 좀 홀가분하고 편안해질 수 있을까를 떠올려본다. 아니 어쩌면, 여전히 공허하고 불안을 마주하는 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듭 생각해도 이 우울함은 친정엄마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 나를 믿어주고 의견을 존중해 주었던 엄마였지만 늘 내게 남편과 시댁에 관한 신세 한탄을 했다. 엄마가 신세 한탄을 할 때마다 어렸던 나도 같이 우울해졌다. 기억이 없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은 작은 슈퍼를 했다. 그 사실을 나는 숨겼고 부끄러워했다. 그 시절 엄마는 쉬는 날 없이 슈퍼를 지키며 일하셨고 나에게 이 감옥에서 자신을 꺼내달라는 말을 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고성이 오가는 부부싸움도 잦았었다. 해결할 수 없어 울고 있는 내가 여전히 내 몸 안에 있는 거 같다.
나의 우울은 치유될 수 있을까?
글쓰기로 마음을 드러냄으로, 이 우울을 다루고 치유하고 싶다.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글쓰기로 나의 우울이 치울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깊은 상처까지도 들여다볼 용기를 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