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려 Nov 17. 2021

글쓰기 책만 백 편

그래서?


간절히 쓰고 싶은 날들이 넘쳤다. 다시 쓰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던 때였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서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읽은 것이 없어서 그런가?

글쓰기에 관한 책들만 읽어보자. 단순 무식, 과격한 나는 100이란 숫자를 떠올렸다.  


도서관 구석구석을 돌며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모았다. 마음에 드는 책은 사서 '되읽어보기'를 했다. 좋은 책들도 많았고 그저 그런 책들도 많았다.


어떤 책에서는 내 방 풍경을 아침, 점심, 저녁마다 묘사해보라고 했다. 그 후로 묘사가 너무 싫어졌다. 시시각각 바뀌는 방 풍경이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한 참을 노려보아도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난 안되나 보다를 연발했다. 끝내 그 책은 그대로 덮어서 도서관에 반납했다.

어떤 책에서는 주제를 하나 정하고 생각나는 대로 쓰라고 했다. 주제를 정했다. 중구난방 내 글짓기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떤 책에서는 맞춤법의 중요성을 하도 강조하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니 귀에서 맞춤법! 맞춤법! 하는 소리가 울려댔다. 지금도 글을 쓸 때마다 들려온다. 그래도 틀린다. 아마 그 작가는 작가 자신이 맞춤법에 대한 강박관념이 컸던 것 같다.


"이러다간 글을 쓰기 전에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겠다."

책을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난 후의 결론은 "글은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뿐만이 아니라 손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나는 참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마음속에 담긴다. 내가 첫 번째로 읽었던 글쓰기 책의 저자는 말할 것이다.

"내가 글은 써야 하는 거라고 했잖아.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야 그걸 아니?"


나는 피아노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피아노를 덮고 이론서를 펼친 격이었다. 물론 이론도 필요하지만 그때 나는 도레미를 치면서 모차르트의 레퀴엠 악보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 책 백 편 읽기' 프로젝트는 성공 아닌 성공으로 끝이 났다.


그래도 읽고 나니 글을 쓰면서 되새겨지는 글들이 있었다. 맞춤법은 모든 글의 기본이고 예의며 주제가 확실한 글은 읽기 쉽고 감명 깊다는 것을. 그리고 묘사를 잘 한 글은 살아 숨 쉬는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것보다 향기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글 한 줄 안 써지는 캄캄한 어둠이 다가오면 '글 쓰기는 발 끝을 밝히는 한 줌 불빛에 의지해서 나아가는 것'이라는 구절이 내 머릿속에서 반짝거린다.


그때의 독서노트는 몇 번의 이사 과정에서 사라졌고 요즘은 새 책에 밀려 내가 읽었던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도서관에서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제목도 기억나지 않아 찾지 못하는 책들도 많다.


하지만 그 책들은 내가 긴 강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느리고 둔한 나를 그래도 잘한다 잘한다 이끌어주었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글쓰기를 병행했다면 그리고 창피를 무릅쓰고 발행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그렇게라도 나는 글쓰기를 연명해나갔으니까.

그때 읽었던 글쓰기 책들은 내 속에서 비료가 되었고 다시 싹이 되어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둔한 내가 그것을 모를 뿐이다.

 

난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백 편 넘게 읽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앞으로도 계속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을 것이다. 너는 쓸 수 있어! 이건 이렇게 해 보는 게 어때? 조곤조곤 가르쳐 주는 고마운 책들이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내 글들을 쓰면서. 내 글들을 발행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슬럼프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