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뽑기 놀이를 했다. 딸이 설탕과 소다를 딱 맞는 비율로 배합해서 맛난 달고나가 완성되었다. 모양도 꼭 꼭, 눌러서 엄마의 생존 소식을 바랐다. 내 귀에는 "빌딩 빌딩 빌딩, 빌딩가 빌딩가 , 사사사,사사사사"로 들리는 드라마의 ost를 틀어놓고 뽑기에 들어갔다.
심혈을 기울였는데 오징어 게임 틀 반쪽 같은 모양의 동그라미와 삼각형의 중간을 잘라버렸다. 집중하고 단 것을 먹을 수 있으니 심난할 때 좋은 놀이 같았다. 옆에서 아직까지 뽑기에 열중하고 있는 딸을 바라보며 무심결에 말을 뱉었다.
때론 실패.
"엄마도 이렇게 열심히 글 쓰면 언젠가는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의 원작을 쓸 수 있겠지?"
"그럼요.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고마워."
"진심으로 강렬히 응원해요... 근데 왜 저는 남들의 꿈은 이토록 강렬히 진심을 담아 응원할 수 있는데 왜 저 자신한테는 그러지 못할까요?"
"그러게, 근데 엄마도 그래."
망친 달고나를 먹으며 딸과의 대화는 밤을 이어갔는데 아침이 되어도 그 말이 머리와 가슴을 맴돌았다.
왜 나의 꿈은 편하게 응원할 수 없을까?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남의 꿈은 응원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진심을 담아서 정말 그 사람이 그 꿈을 이루길 바라 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나의 꿈은? 책임이 따른다. 행동해야 한다. 행복할 때도 있지만 멀기만 한 꿈에 가다가 지쳐 주저앉을 때도 있다. 그래서 시작하기도 힘들 때가 많다.
때론 성공.
운명이란 것을 믿었다.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될 거라고, 나는 수녀가 될 거라고 어린 '국민학생'은 그것이 내 운명이라고 믿은 적이 있다.
운명은 참 편한 거 같았다. 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하는 게 운명이니까. 그냥 앉아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손 발 다 놓고 누워 있어도 될 거 같았다. 그리고 바랐다. 제발 내 운명이 멋진 운명이기를...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심하고 부끄럽지만 소설 속 운명적 사랑처럼 내 삶이 번쩍번쩍한 운명적 인생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눈 뜨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라는 말이 내 운명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물론 운명이란 것은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살아가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운명.
살아오면서 바뀌고 바뀐 꿈들이 돌고 돌아 나의 꿈이 작가 되기라는 것을 솔직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왜? 못난 글이지만 쓰고 있으니까.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 보면 솔직히 저절로 작가가 되기를 바라던 적이 있었다. 너무 충격적이고 재미난 일이 생겨서 술술 글로 적어 내려간다. 왜? 난 작가가 될 운명이니까. 그리고 하루아침에 유명해지고 난 나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하하~.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딸에게 헛소리를 했다.
"엄마는 그냥 작가가 될 줄 알았는데, 글을 써야지 작가가 되는 거더라."
"당연하죠!" 딸이 한숨을 쉬고는 웃는다.
흐흐흐. 난 내 운명이 무엇이든 좋다. 그렇게 돌고 돌아왔어도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으니까. 그리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다른 작가분들이 내 꿈을 진심으로 강렬하게 응원해 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