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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Oct 13. 2021

창작의 고통이라고?

작가의 자격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나의 어린 소녀에게


님 그리워 떠나오리다.  

철 따라 떠나오리다.

마음이 조급한데 어찌 지체하오리까.

나그네 길 고단하오나

님 그리워 떠나오리다.


중학교 때 지은 졸시다. 국어 시간 시조를 배우다가 써보고 싶어서 며칠 끙끙댔다. 운율이 좋다고 내 깐에 완성되었다고 여긴 '시조'였다. 어린 마음에 뿌듯했다. 국어시간, 그날도 시조를 배우고 있었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짝에게 '이거 내가 지은 시조야' 조용히 보여줬다. 그런데 짝이 깔깔대고 웃었다. 픽, 비웃는 것도 아니고 온 반 아이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선생님까지 놀라 쳐다보셨다.

"선생님, 애가 뻥 쳐요. 지가 이 시조를 지었대요."

친구 말에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고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이 넘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차분하고 다정한 국어 선생님은 내가 제일 좋아하던 선생님이었다. 내 글을 읽으신 선생님의 얼굴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이 차올랐다. 마침 수업이 끝났다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교무실로 가자."

깔깔대던 친구는 그때야 놀라서 웃음을 멈췄다. 반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선생님 뒤를 쫓아가는 계단 한 칸 한 칸이 지옥으로 내려가는 길 같았다. 잘못이 있다면 친구에게 수업 시간에 글을 보여줬다는 것, 그 거 한 가지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선생님이 어두운 내 얼굴을 보고 한마디 하셨다.

"혼내려는 거 아냐."

교무실 책상에 앉으신 선생님은 메모지를 꺼내서 여러 명의 작가와 시집 제목을 적어 나에게 건네주셨다.

"읽어봐."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쳐다봤다. 내 눈을 쳐다보시는 선생님의 눈동자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칭찬인 것 같은데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혼내는 건 아니었지만 칭찬도 아니었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잘 썼네' 소리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나그네가 무슨 뜻인지는 아니?" 선생님이 물었다.

나그네? 액면 그대로의 뜻을 묻는 것은 아닐 거라고 어린 마음에도 생각했다. '나그네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나그네의 마음을 어린 네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느냐' 선생님에게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린 나는 나그네의 뜻을 모르는 게 당연한 것 같았다.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교실로 돌아오는 내내, 내 마음은 '님 그리워 떠돌고 있는 나그네'의 마음보다 무거웠다.


의자에 앉자 친구들이 주위를 감쌌다. 난 선생님이 주신 쪽지를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자기 때문에 내가 혼났을까 봐 울먹거리고 있던 짝꿍 얼굴에 '그런데 왜?'라는 의문 부호가 그려졌다. 나는 잔뜩 혼나고 온 사람처럼 축 처져 있었으니까.


 선생님이 주신 메모지 속의 시집 제목들은 외국어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다. 인터넷이란 것이 없던 그 시절, 그런 책을 사려면 부모님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말씀드리면 당연히 좋다고 사다 주셨을 텐데, 나는 말하지 않았다. 일기장 한쪽에 꽂아놓고 '광화문 나가면 사야지'하고는 의식적으로 그 쪽지를 잊어버렸다. 그 쪽지는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장 같았다. 네가 알면 얼마나 아냐고, 함부로 글 쓰지 말라고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속에 적힌 책들은 엄청 어려울 것 같았고 내가 평생을 가도 이해하지 못할 수식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선생님이 조금 더 밝게 웃으시며 쪽지를 건네주셨다면 달랐을까? 나그네의 뜻을 묻지 않으셨다면 괜찮았을까? '나그네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모르겠지만 나그네의 아픔은 조금 알 거 같아요'라고 대답했다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을까?


누구나 문학소녀를 꿈꾸던 그때, 겉멋과 나르시시즘의 대명사처럼 변해버리고 있던 '문학소녀'라는 단어를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날, 글쓰기는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단정 지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던 일마저 관두었을 때였다. 신문을 보는데 유명 작가의 칼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창작의 고통"이란 단어가 보였다. 불쑥 생각 하나가 쓴 물처럼 솟아올랐다. '그래, 알았다. 알았다고. 나 같은 사람은 안 쓸 테니까, 실컷 쓰세요. 내가 감히 창작의 고통을 알겠어요'. 무슨 자격지심인지 한심하기도 했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돌고 돌아도 끝내 놓지 못한 나의 글쓰기가, 그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워졌다. 아직도 중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글쓰기 수준과 그때의 아픈 마음. 펜을 쥘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밀려오는 두려움을 감당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그렇게 또다시 나이가 들어갔다. 세상살이에 몸과 마음은 계속 아팠고 그 고통이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왜 글쓰기가 고통이지? 왜 창작의 고통만을 이야기하지? 그럼 작가들은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지? 그렇게 창작이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모든 작가들은 병원에 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창작의 기쁨은 이야기하지 않지? 왜 처음부터 멋진 글만을 써낸 것처럼 자랑만 하지? 그 작가들은 중학교 때부터 그렇게 글을 잘 썼나?

 

장하준 님의 "사다리 걷어차기"란 책을 읽었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선진국과 후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책을 읽는 내내 되새겼다. 

"넌 못해, 나만 할 수 있는 거야. 참 고통스럽거든." 밥그릇 빼앗길까 봐 돌아앉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좁은 속을 들키지 않기 위해 포장한 말에 속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면서 왜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봤어야 한다. 아니, 그 사람이 고통스럽든 말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어야 한다. 친구가 깔깔거리든 말든 선생님이 한숨을 쉬든 말든...

너무 당연한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정말 다행이다. 


글쓰기를 독려하는 진심 어린 글들은 내가 어렸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그 글들은 글쓰기가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쓰고 나면 뿌듯하다고, 글쓰기는 행복한 일이라고 말해줬을 것이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어리광 부리는 글만을 찾아 읽은 것은 나였다. 난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대신에 글을 쓰지 못할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정말 내 탓이다.


지금도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중학교 때 선생님을 따라 내려가던 계단이 떠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그네의 뜻을 알고 나그네의 아픔도 안다.- 네가 알면 얼마나 아냐고? 그래, 그럼 쓰면서 배워나가지 뭐. 창작의 고통 주위에는 창작의 기쁨들이 가슴을 조리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쓰는 것보다 안 쓰는 게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

이제 나는 고통스럽든 말든 글을 써나갈 것이다. 유명 작가들이 떠들어대는 창작의 고통 따위는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작가의 자격은 누가 정하냐고? 그건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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