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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Oct 10. 2021

어쩌다 발행

"조회수 10000을 돌파했습니다!" 어쩌다가?


 물속에서 빠져나와 문안으로 들어간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끔 힘겹게 둘러봤던 세상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물을 줄줄 흘리며 서 있는데 여기 좀 앉으라고 누가 의자를 건네는 것 같았다. 어색하게 감사 인사를 하려는데 편히 쉬라며 그 사람은 이미 자리를 뜨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무엇을 해야 하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선 프로필 정리부터 하란다. 그래, 새로 들어왔으니 인사를 해야지. 프로필 사진 한 장을 올리고 소개글을 다시 쓸까 하다가 말았다. 아직 나에 대해서 정리되는 것이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겠고 온 몸이 떨렸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나약하게 만든 걸까? 욱, 온몸에 치가 떨렸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나라는 걸 잘 알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쪼그라들어 있었다니. 그건 모르고 있었다. 혼자 처박혀 책이나 읽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내가 나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프로필 정리를 간단하게 마치고 브런치 이용안내 매거진(https://brunch.co.kr/magazine/brunchupdate)으로 들어갔다. 35개의 매거진을 순서대로 읽어나갔다. 첫 번째 글 "간결하고 강력하게! 브런치 에디터"를 따라 해보고 "브런치 매거진, 모여서 더 큰 글"로 넘어갔다. 그렇게 원했던 매거진 만들기다. 프로필에서 작품을 누르면... 아 그래, '매거진 만들기'가 나온다. 매거진 제목을 치고 주소를 쓴 다음에 태그 입력하고 완료를 누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글을 발행해야 한다. 써 놓은 글을 발행하면서 매거진을 선택해야 만들어진 매거진 속에 글이 들어간다.

 

고민에 빠졌다. 아직 발행할 만한 글이 아닌데. 

옛날 세상이 나를 위해 돌고 있을 거라는 착각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한 편의 글 앞에서도 작아지는 내가 답답했다. 음, 그러면 글을 일단 발행해 보고 얼른 발행 취소하자. 그렇게 '발행'을 눌렀다. 그 버튼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도 모른 채.


만들어 놓은 매거진 속에 쏙 들어가 있는 글과 사진이 정말 귀여웠다. 너무 좋아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돌려보다가 이제 발행 취소를 해야지 하는데. '부웅' 알림 소리가 울린다. 코로나 환자가 또 발생했나 보다. 휴대폰도 보지 않고 다시 발행 취소를 찾는데 '붕, 붕' 소리가 난다. 환자가 많이 생겼나 보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1분 간격으로 코로나 환자 알림 문자가 울리겠지만 순천은 다르다. 하루에 많아야 다섯 번. 아무리 많아도 10번을 넘지 않았는데 무슨 큰일이 났나 휴대폰을 화면을 열었는데 'b' 자가 보인다. 뭐지? 열어보니 브런치 작가님 한 분이 내 글을 '라이킷' 하셨다. 그 사이에? 와, 빠르다. 시골에 살면서 3단 미닫이 문만 열고 닫다가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속도를 잊고 있었다.


그렇게 라이킷 찍힌 게 좋아서 올린 글을 못 지웠는데 "조회수가 3000을 돌파했습니다", "라이킷 수가 10을 돌파했습니다"가 연달아 찍혔다. 이게 인터넷 세상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조회수가 이렇게 많을까 싶었는데 다음날 "조회수가 10000을 돌파했습니다!"라는 알림 문자가 왔다.

이럴 일은 없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거다.


혹시 스트리밍(?)이라고 아시는지?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곡을 내면 계속 그 음악을 트는 것이라는데 한 제작사가 자기 회사 가수의 곡을 가지고 그 일을 했다가 큰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내가 글 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남편과 두 아이뿐인데. 아이들이 나 좋으라고 그런 걸 했나?"

엄마는 글을 쓰고 싶은 거지 유명해지고 싶은 게 아닌데... 얘들아, 그럴 필요 없는데. 미안하고 속상했다. 조심스럽게 큰 아이에게 전화했다. 교수님한테 가봐야 한다는 아이한테 '용건만 간단히 할게' 하면서 물으니 '브런치에도 그런 기능이 있어요?' 오히려 묻는다. 그런 건 음악 관련 앱에서만 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엄마 글도 못 읽어봤다고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 다녀온 둘째에게 물으니 "아, 엄마 글 쓰신다고 하셨지." 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시 묻는다. "그런데 브런치가 뭐예요? 먹는 브런치는 알겠는데."

그렇게 나의 이상한 오해는 끝이 났고 나중에 "초원의 빛"작가님 글을 읽고서야 다른 사이트로 글이 유입되면 조회수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디로, 어떻게, 왜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나는 '좋아요'니 '조회수'니 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사람 마음 똑같구나, 애들이 SNS에서 좋아요 받고 싶은 마음이 이런 거구나, 그때 알았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발행'을 계속하고 있다. 모자란 글이라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행복해서다.


브런치에서 에세이와 일기의 차이에 관한 글을 읽다가 아주 명쾌한 작가님을 만났다. (죄송하게도 작가분 이름을 모른다. 읽고 구독하기를 누르기 전에 급한 일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다시 찾아 헤맸는데 못 찾았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도와주세요.) 학교에서 배운 에세이에 대한 이론적인 강의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며 글을 읽어나갔는데 에세이와 일기의 차이는 "발행"이란다. 번쩍, 머리를 때렸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래서 여지까지 내가 쓴 글들이 발전하지 못했구나. 그래서 내 글들이 컴퓨터와 USB에서 썩어버렸구나. 

발행이 되지 못한 내 글들은 고인 물이 되어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렇게 글은 발행해야 발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속에서 빙글빙글 돌던 생각들이 빠져나가야 생각의 나무가 세상을 향해 가지를 뻗어나갈 수가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햇빛을 봐야 나무도 글도 자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다가 발행을 했고 어쩌다가 조회수가 10000을 넘었지만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서로 응원하며 글을 쓰니 좋다. 물 밖 브런치 세상이 참 좋다. 이제 다시 마음을 다지고 조회수와 라이킷 수에 연연하지 않고 글을 써나가야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려서 못난 글 읽어주시고 힘내라고 라이킷 해주신 분들께, 그리고 조회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작가, 한 번에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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