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을 발행했다. 나의 첫 번째 브런치 북이다. 브런치 북 공모전에도 응모했다. '이런 글로?'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아 귀 닫고 머리 닫고 꾹 눌렀다. 브런치에서 살아가려면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 같았다. 올해 못하면 내년에도 못할 것 같았다. 이제 미루고 살기엔 나이만 먹어가는 것 같았다.
셋, 둘, 하나. 카운트 다운을 하고 눌렀다. 어? 이게 뭐라고 가슴이 이렇게 떨리다니.
하고 나니까 좋다. 정말 좋다. 나름 엄선해서 올린 표지가 두 겹으로 어우러져 폰 화면에 뜨는 것도 신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올리브 그린 색깔이 정말 곱고 예뻤다. 자식 자랑하고 싶은 팔불출처럼 폰 화면을 캡처했다. 왠지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한 한걸음을 내디딘 것 같다.
"젊은 ADHD의 슬픔"의 정지음 작가님이 브런치 북을 만들고 응모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역시 선배님 말씀이 옳았다. 브런치 북 표지를 만들고 텅텅 비어 있던 공간이 사진과 글로 채워지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옛날부터 나의 시간에 흔적을 남기고 싶었는데 이렇게 나의 글과 마음이 멋진 흔적을 새기고 있다니... 더 열심히 고민하고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좀 찍는 큰 딸이 브런치 북을 훑어보더니 걱정을 한다.
"엄마, 사진 출처 밝히셔야 해요."
"그래서 엄마가 찍은 사진만 올렸는데."
"오호, 잘 찍으셨는데요."
딸은 기계치에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엄마의 솜씨를 아는지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 많이 늘었지?" 같은 곳을 수십 장 찍고 그중에 고르고 고른 거라는 말은 안 했다.
브런치 작가로 입주한 지 3개 월. 참 바쁘게 움직이는 브런치 속 세상을 보았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쓰는 작가님들이 있구나, 반성도 하고 흥분도 했다. 브런치 북 공모전을 준비하시는 작가님들의 열정도 배웠다.
그 열정을 본받아 응모 버튼을 누르고 맨 위에 놓인 내 브런치 북에게 인사를 했다.
"예쁘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나의 첫 브런치 북
좀 느긋한 마음으로 공모된 브런치 북들을 돌아봤다. 공모 전과 공모 후의 시선은 또 달라져 있었다. 작가님들의 글이 글 이상으로 다가왔다. 애쓴 마음과 공들인 시간들이 느껴졌다.
어떤 작가님은 예쁜 마당을 가꾸고 있었고 어떤 작가님은 힘들게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다. 한 편에서는 당당한 커리어의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 작가님들이 있었고 이제 사회에서 한 발 물러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작가님들도 있었다. 모두들 다르게 살아왔지만 모두들 똑같이 열심히 살고 있는 작가님들이었다. 이 속에 낄 수 있어서 참 좋다.
어떤 글들은 마음에 쏙 들어서 이 브런치 북은 종이책이 되어서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라이킷을 꼭꼭 눌렀다. 몇 년 후에는 내가 당선되고 싶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서 좋은 글들을 제대로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열심히 글을 쓴다면 그런 질투심 따위는 이미 극복했겠지만...
신입은 모든 것이 두렵다. 내가 어떻게 변할까, 유심히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도 선배 작가님들한테 잘 배울 테니 잘 극복할 것이다.
등산 좋아하는 남편이 한 말이 있다. 산의 정상이 눈에 보이면 거의 다 온 거라고. 물론 '거의'라는 말은 내 기준에서는 거짓말일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정상에 올랐다. 어떤 산 정상은 고생한 보람이 넘칠 만큼 아름다웠고 어떤 정상은 내가 왜 여기에 이 고생을 하며 왔을까 화가 나는 곳도 있었다.
브런치는 가야 할 길과 올라야 할 산과 그 산의 정상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본 선배 작가님들은 말한다.
"오르니 참 좋더라."
브런치 속에서 글을 쓰니 혼자서 거리를 헤맬 때랑은 마음도 몸도 다르다. 브런치 선배들은 무작정 따라오라고 소리 지르지 않는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아파할 시간을 허락한다. 나로서 살아남으라고 하지, 나처럼 되라고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아직도 공모전을 고민하고 있는 작가님들에게 초짜가 건방지게 한마디 하면
"공모 전과 공모 후는 세상이 또 다르네요."
이제 산 하나를 겨우 넘었다. 다음엔 어떤 산을 넘게 될까? 힘들어도 정상까지 오르고 싶다. 탁 트인 그곳에 서서 맑은 공기 한 번 크게 들이켜고 흘러가는 구름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