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예민서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려 May 12. 2022

너무 억울하잖아

예민 점주 이야기


"계속 이러고 살면 너무 억울하잖아."

코로나 덕에 끊겼던 기억이 뭉텅이로 떠오른 아침이었다. 화가 나서 한참을 씩씩거렸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고3 때 이혼하셨다. 한 줄로 끝날 이야기를 무슨 큰일이라고 30년 넘게 지고 살았다.

가정 하나가 깨지는 일이니, 그리고 지금처럼 이혼이 흔하던 시절도 아니니 나름 큰 일이었을 것이다. 지나간 세월을 함부로 무시할 자격이 나 자신에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세월을 지고 살기 싫다.


살만큼 살아왔는데도 난 시도 때도 없이 고3 시절로 돌아간다. 창밖으로 보이던 아파트 시멘트 바닥이 생생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의자도 손에 잡힐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이 '할 수 있다'를 외칠 때 난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에 몰려 절망 끝에 있었다.


"절망 끝에 서 있는 사람에게 자존감이 없다고 떠들지 마라.

벼랑 끝 부서져 내리는 흙 위에서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에게 왜 그것밖에 못하냐고 비웃지 마라."


그런데 우습게도 자존감이 없다고, 왜 그것밖에 못하냐고 손가락질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베란다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창틀에 서 있던 고3의 나를 부끄러워했던 건 바로 나다. 너무 무서워서 울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던 나를 바보라고, 허허 웃으며 넘기면 될 일을 속이 좁아서 끙끙댄다고 비웃은 것도 바로 나다.


그런 내가 미웠다. 아직까지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소리를 듣고도 찾아가지 못하는 나에게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강요한 것도 나다.


그전에 내가 할 일이 있는데 모른 척했다. 그러니 매일 아팠다. 몰래 숨어들어 내 속에서 울부짖는 고3의 내가 되어 울고 울었다.


"평생을 그러고 살았는데 앞으로도 이러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잖아."


어젯밤에야 용기가 생겼다. 고3의 나에게 다가갔다. 베란다에서 떨고 있는 나의 허리를 붙잡아주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네 탓이 아냐. 넌 할 만큼 했어."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네자.

나에게 진심을 담아 손을 내밀자.


괜찮다고 널 할 만큼 했다고

그러니 너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고


너무 억울하잖아

넌 너무 아픈데

너까지 너를 미워하면

네가 어쩔 수 없는 것을 네 탓이라고 하면

너무 억울하잖아,  너무......."


그리고 말했다.

"넌 이제 자유야. 시간 속으로 흘러가도 돼."

하지만 고3의 나는 자꾸 나를 돌아본다. 정말 그래도 되냐고 묻는다.

그제야 난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둘째가 어버이날인데 감기 기운때문에 종일 잠만 자서 죄송하다고 한다. 모든 부모의 대답은 명쾌할 것이다.

"네가 안 아픈 게 최고의 효도야. 아프면 쉬어."


고3의 나는 한동안 나를 떠나질 못할 것이다. 평생을 같이 살아왔으니 작별이 쉬울까. 하지만 난 더 이상 그 시절의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장하고 대견하다. 가슴으로 매일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매일 작별 인사를 할 것이다.

"넌 과거야. 넌 그때 잘 살아냈고 난 지금 잘 살 거야."


이제부터 이 세상 최고의 효도를 하려고 한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안 아플 거다.

더 이상 억울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건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