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언어

by 소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1960- 1989)


기형도 님의 시를 변형해서 친구들 카톡 방에 올렸다.

"나는 찬밥처럼 집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책을 읽어도

남편 안 오시네."

친구들 답변이 가지각색이었다.

"덕분에 좋은 시 한 편 되새겼다."

"쓸쓸하구나, 같이 차 한 잔 하면 좋을 텐데."

그리고...

"네가 왜 찬밥이야, 누구야? 누가 우리 소려를 찬밥 취급해."

나를 걱정해주는 말속에서도 친구들 성격이 보여서 한참을 웃고 행복했다.


시(詩)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말씀 언(言) 변에 흙 토(土), 마디 촌(寸)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득 시인은 언어를 시간의 마디 속에 묻어두는 사람이구나 싶어졌다. 숨겨진 언어를 찾는 것은 시를 사랑하는 자의 몫이다. 사랑의 깊이만큼 '삽질'을 하고 시인의 언어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이상 님의 "날개"라는 소설을 읽고 한눈에 반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십니까? 나는 유쾌하오."라는 첫 문장은 내 인생을 관통하고 뼛속에 사무쳤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구해주고 싶었다. 시인의 시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좌절. 천재가 아닌 나는 이상 님의 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암호 같은 낱자들 앞에서 박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를 향한 나의 첫사랑은 끝이 났다. 어린아이의 치기였나 싶었는데 돌아보니, 그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해할 수 없는 시인의 언어에 몸을 떨고 구해주지 못한 시인을 위해 눈물을 흘렸으니까.


며칠 아프고 났더니 주위에서 뛰어놀던 단어들이 분리가 되어 하늘에 박혀버렸다. 친구에게 농담 반 진담 반 '치매 검사를 받아야 하나?' 너스레를 떨었다. 좋아하던 책 제목과 사랑했던 작가들 이름마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조금이라도 긴 책은 읽기 어렵고 내가 알던 낱자들은 다른 얼굴을 하고 웃는다.


그러다가 이상 님의 "오감도"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혹시 시인이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이제 너도 시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호...

어쩌면 이상 님을 '날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시인인 줄 알았다


나는 내가 시인인 줄 알았다

사람들이 내 말을 못 알아 들어서


나는 내가 시인인 줄 알았다

은유들로 차오르는 세상이 좋아서


시인 소리 듣고 싶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고

난 여전히 시인 소릴 못 듣는다

은유로 가득 찬 세상 속

시인은

시인이라고 불리지 못하나?


그럼 난 뭐지?

못된 시인, 못인?


그런데 내가 사람이긴 한 걸까?


- '소려'의 못난 시


태어날 때 받아 드는 인생처럼 시인은 우리에게 각자 알아서 느끼라고 시를 던져 놓나 보다.

하늘 위로 올라 간 낱자들은 나를 가져보라고 희롱하는데 시간의 마디는 생각보다 단단하다. 마음의 삽을 더 단단하게 다진 뒤 사다리를 올라야겠다. 가끔 기다리다 지친 낱자들이 떨어지는 날이면 난 은유 속에서 헤엄을 친다.



*참고 문헌

기형도 전집. 기형도 전집 편집위원회 엮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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