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농번기가 있다면 나에게는 휴번기가 있다.
초여름, 시어머니 생신을 시작으로 장마가 끝나면 진한 여름이 시작된다. 가족들 모임에 친구, 지인들의 예약이 몰려온다. 정착 초기, 시행착오를 거친 후 지금은 선착순 예약제를 시행한다. 친한 사람들한테는 우리 집은 선착순이라고 귀띔을 해놔서 여름 성수기 예약은 두 달 전에 끝나기도 한다.
우리 집은 420미터 산 위에 있다. 열대야라는 것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우리 집은 ‘유토피아’다. 그 속에 사는 나를 선녀로 가끔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고기, 새우, 소시지 거기에 민물장어까지 숯불에 구워주고 직접 담은 된장으로 쌈장까지 만들어 내놓는다. 갓 배송된 신선한 원두커피에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술까지 구비되어있으니 그런 착각이 들만도 하다.
문제는 나다. 재활용 쓰레기를 어떻게 분리수거해야 하는가 매일 헛갈리는 학습장애에 모든 물건은 ‘인연이다’ 라며 집에 들어온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맥시멀 리스트’다.
거기에 사람을 만나면 상대는 원하지도 않는 영혼까지 탈탈 털어 기를 빨리는 내향형 인간이다. 쌓이는 먼지조차 내 품 안에 품는 '박애주의자'였다가 손님이 오신다 하면 침대 발꿈치 때까지 문지르는 ‘완벽주의자’다.
옛 속담에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데 에어컨과 우리 집의 지형적 특성 덕에 나는 여름뿐만 아니라 봄, 가을, 겨울 손님 모두 무섭다. 손님 가시면 쓰러지다시피 누워버리는 아내의 몸을 잘 아는 남편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와주지만 매의 눈으로 갈아 낀 아내의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 남편은 밀려드는 손님을 막아보지만 어찌 손바닥으로 파도를 막으리오. 손가락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어떤 손님들은 마음의 짐만 한가득 남기고 떠나고 어떤 손님들은 도시 물건 쏟아놓고 마음의 짐을 쓸어 나간다. 손님을 골라 받을 수는 없으니 여름은 세상 다반사 만찬에 취해 헤롱대는 시간이다.
오늘도 일박 이일로 오랜 지인분들이 다녀가셨다. 지난밤 자동차 소음 하나 없는 온전한 빗소리에 취해 술에 젖어들었다. 선물로 사 오신 도시 음식에 곁들여서 숯불 향 가득한 밤을 보내고 늦은 아침, 남편의 특제 전복죽으로 일정을 마쳤다.
식기세척기가 마무리를 하는 동안 거실 한 편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장마가 끝나면 다시
파도가 밀려들겠지.
이번 여름은 넉넉한
해변이 되고 싶다.
오지랖 넓은 감정이입이 아니라
진심 어린 공감을 하고
가슴에 품어온 유리 조각 하나
걸러줄 수 있는
조금은 넓은
모래밭이 되고 싶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맥시멀 리스트가 되고 싶다.
한 걸음씩 비워
쏟아지는 마음을 품는
바다가 되고 싶다.
다음 예약까지는 시간이 조금 생겼으니 머릿속 먼지 툴툴 털어버리고 글 친구분들 글터로 놀러 가야겠다. 오랜만에 찾아가도 반겨들 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