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글

by 소려

쉬운 글


선생님께서 글은 쉽게 써야 한다고 하셨어

쉽게 쓴 글은 무얼까? 쉬운 글은 무얼까?

아침을 먹었습니다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가 쉬었습니다

선생님이 국어사전을 가져올지도 몰라

쉽다 쉬다 쉬(:)다를 구분해줄지도 몰라, 시다를 곁들여서


시를 써보라던 선생님이 전근을 가시고

새로 온 선생님이 나를 보며 말했지

글은 쉽게 써야 한다고

네가 누구인지 보고 싶지 않아

네 속의 아픔 따위는 상관없어

선생님이 노려보며 말했지

글은 쉽게 써야 한다고


내 속이 쉬웠으면 좋겠어

그럼 글을 쉽게 쓸 텐데

내 속이 쉬었으면 좋겠어

그럼 쉬운 글을 쓸 텐데

나는 쉬운 것들을 찾았지

깍두기가 쉬었습니다

깍두기가 쉬웠습니다?


그때 알았던 것 같아

시인은 쉽지 않다는 걸


쉬운 글을 쓰지 못하는

나는

글을 쉬어버렸지

마음이 쉬어버렸지


- 소려의 못 된 시 '쉬운 글'



쉬운 글 쓰기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시 한 편을 적고 보니 선생님 탓만 하는 것 같군요. 그 선생님은 저 자신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뭐라 하던 전 쓰면 됐을 텐데. 난 안돼, 윽박지르고 글을 쉬어버렸으니까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한동안 혼란스러웠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글들은 '너무너무' 어려운데도 좋은 글들이라고 배우면서 왜 내 글은 안 된다고 하는 걸까?

그 시절 제가 쓴 글들을 본다면 저도 그 선생님처럼 화를 낼지도 모르죠. 겉멋만 가득한 쓰레기라고 집어던질지도...

그런데 그 선생님은 쉬운 글을 쓰는 법을 알고 계셨을까요?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쓴 글에 왜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 궁금해집니다.


몇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 갔습니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을 더욱 혼란스러운 곳에 두고 싶었습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거야,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그림 앞에서 멈췄습니다. 크고 하얀 캠버스 위로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덩어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벽 한 면 가득 같은 분위기의 그림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는데 내 속의 응어리들이 토해져 그곳에 박혀있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아프면 이렇게 토해냈을까?"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물과 꿈틀거리는 아픔을 숨기고 복도로 나와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래서 예술이구나."

한숨을 뱉었습니다.


쉬운 글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읽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글?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쉽게 답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현대미술관에서 보았던 그림들이 떠올랐습니다.


제 아픔을 아플 만큼 아파하고 용기 있게 맞서서 보고, 진심으로 풀어낸 자만이 쉬운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제 속의 응어리를 풀어내려 애쓴 사람만이, 답을 구하려 노력한 사람만이 인생을 풀어가듯 글을 풀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제 아픔은 가슴 저 구석에 박아둔 채 누군가에게 읽혀야 한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욕심에, 알지도 못하는 쉬운 글쓰기를 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글이 어려워지는 날이면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느끼고 그 아픔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을 토해내서 한줄기 한줄기 풀어내야 한다.


쉬운 글쓰기는 평생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아픔들을 쉽게 풀어내는 방법은 어려울 테니까요. 실 끄트머리 하나부터 찾아야겠죠? 어렵다고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충분히 쉬었거든요. 실오라기에 살점이 베여도 다 제 속의 것들이니 달래며 풀어줘야지요. 절 사랑하고 지켜주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저 자신을 위해 쉬운 글 하나 자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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