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기차

구성산회관 버스정류장에서

by 소려


거꾸로 가는 기차에서는

책을 읽을 수 없다

창밖을 볼 수도 없다


태어나 매일 멀미를 하는 자의 숙명


거꾸로 가는 기차

나무가 멀어지고

그림자가 길어진다


누구도 다가오지 못한다

누구나 멀어져 간다


옛날 신이 인간을 사랑했을 때

인간은 뒤로 걸으면 과거로 갈 수 있었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고르고

한 뒷걸음 뒷걸음 걸으면

과거로 과거로 갈 수 있었다


거꾸로만 가려는 사람들

어느덧 뒷걸음치던 발에 힘이 풀리고 강보에 싸였다

손발을 못쓰고 의지를 상실하고

생명이 다시 점이 될 때까지

거꾸로 거꾸로만 가는 사람들

다가가는 것이 두려워 멀어지기만 했던 사람들


신이 인간을 더 사랑했을 때

과거의 문이 닫혔다

인간의 뒷걸음에서 시간이 사라졌다

공간만 남았다


시간이 사라진 채

거꾸로 가는 기차

휴가 나온 군인은 군화끈을 풀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휴대폰 작은 네모에 모든 세상을 담아버린 청춘은 흔들리지 않았다

거꾸로 가는 기차

흔들리는 인생을 안고 난 과거로 간다

신이 덜 사랑한 인간이 된다

멀미는 매일 뒷걸음질 치는 자의 운명


한 점 빛이 되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까

멀어지는 나무에게 손을 뻗는다

길어지는 그림자를 어루만진다

거꾸로 가는 기차 안

두고 온 것들이 보인다


뜨거운 햇살 아래 굽이굽이 산들

시린 눈으로 그들을 품던 조계산

능소화의 주홍빛 이슬

제비나비의 검은 날갯짓

해먹에 누워 바람을 맞던

숱 성성한 그 사람의 하얀 머리카락


거꾸로 가는 기차

두고 온 것들이 멀어지고

달려 온 것들이 멀어진다


신이 인간의 뒷걸음에서 시간을 뺏던 날

인간들은 울부짖었다

과거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매달렸다

시간을 잃어버린 헛된

뒷걸음을

뒷걸음을 쳤다


거꾸로 가는 기차 안

나는 그들의 사신이 되어 과거로 간다

태어나 매일 멀미를 하는 자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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