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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Nov 11. 2022

내 글에 밑줄 긋는 날


나는 주기적으로 낱자들이 분해된다. 단어들이 제 모습을, 제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분해된다.

처음에는 문단이 나눠진다. 아래 문단이 위로 가고 오른쪽 바닥에 있던 문단이 왼쪽 위에 가서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숨바꼭질하듯이 다음 페이지에 박혀 있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장이 엇갈리기 시작하고 결국은 단어들이 그리고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글을 쓸 수 없게 되고 써놓은 글 교정 보기도 어렵다. 글을 읽기도 힘들다.


반복되는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젊었을 때는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책은 읽을 수 있었는데... 오히려 아플수록 책을 더 읽었는데.... 지금은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낱자 분리 증상이 나타난다. 처음엔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혹시 조기 치매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라는 단어가 의미를 잃어버리고 '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꽃'이 지닌 의미를 찾아 머릿속을 헤매다 길을 잃기도 했다. 헤매고 헤매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 지도 잊곤 했다.

머리를 비워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끊고 글을 끊었다. 그 다음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결과였다. 머리는 더 아팠고 마음은 허해졌다.

내 손은 손에 들리는 모든 것들을 거부했다.  부엌에 서서 내가 할 일이 무언가 한참을 생각해야 했고 책상에 앉기가 무서웠다. 인생의 삼분의 이를 차지했던 것들을 놓아버렸으니 난 미아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다음에 나에게 내린 처방은 읽고 싶었는데 어렵게 느껴져서 미뤘던 책들을 보는 것이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같은 문화인류학 책이나 김훈 님의 수필집을 손에 들었다.

문체가 달라서인지 나는 김훈 님의 글이 힘들다. 책을 붙잡고 있으면 온 몸으로 글을 거부한다. 모든 문장이 명문이란 걸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문학적 소양이 높지 못하다고 한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단지 성향이 다른 것일 뿐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어쨌든 평소에 읽지 않던 책을 다.

그러면 머리가 쫀득하게 긴장을 한다. 이런 글도 있으니 낱자를 잘 붙잡으라는 소리가 들린다. 군대 집합 명령처럼 낱자들이 제자리를 찾고 단어들이 줄을 서고 문장과 문단이 만들어진다. 여전히 마음은 옆에서 딴짓을 할 때가 많지만 일단 문장들 정렬은 끝난다. 적어도 머리는 집중을 한다. 그러다 보면 한 고비를 넘기게 되고 책을 다시 읽게 되고 내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낱자가 분리되는 기간은 몸의 상태와 주변의 환경에 따라 편차가 크다. 다시는 글을 못 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너 글 안 써도 돼. 아무도 네 글을 원하지 않아. 솔직해져 봐. 너 재능도 없잖아. 바둥거리지 말고 편하게 살아."


다행히 이제는 이런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다. 40년을 넘게 이 소리에 홀려 시간을 허비했다. 돌고 돌아서 나는 결국, 아니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한 동안은 정말 일기도 쓰지 않고 남의 글 필사만 했었다. 내 느낌조차 적지 않고 필사만 하다 보니 내 속에서는 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고 커지다가 어느 날 터져버렸다. 허탈하게 앉아 한숨을 쉬며 깨달았다. 누가 읽든 안 읽든 난 글을 써야겠구나.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글을 쓸 수밖에 없구나. 그때의 헛헛한 깨달음의 웃음을 난 기억하고 있다.


요 며칠 세월이 흐른다고 몸이 말해주고 있다. 다시 하늘로 올라간 낱자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일부러 며칠 모른 척해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겨울맞이 하느라 아픈 몸 때문에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싶었다. 삼사일 지나자 손이 슬금슬금 책을 집었다. 눈이 몇 번 거부하는 척하더니 곁눈으로 책을 보고 있었다. 어느새 책은 내 무릎에 놓여있었다. 이번엔 쏙쏙 가슴으로 들어왔다.


림태주 님의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였다. 하늘 위에 박혀 있던 단어들이 책위에 내려와 앉아 있었다. 문장들마다 모두 줄을 긋고 싶었다. 꼭꼭 씹어먹었다. 열심히 먹고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다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넌 안 돼. 바랄 걸 바라라."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뻗어나가더니 속삭임의 얼굴을 후려쳤다.

" 읽는데 방해하지 말고 가지!"

얼굴 한 대 맞은 속삭임이 놀라 나를 잠시 쳐다보고는 사라진다. 통쾌하다.


그래, 난 지금 좋은 글을, 좋은 책을 읽고 가슴에 담으면 된다. 그렇게 좋은 글들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난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면 오로라처럼 내 속에서 아름다운 마음이 펼쳐지고 좋은 기운을 뿜어낼 것이다. 그 기운은 하얀 종이에 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나는 내 글이 좋아서 밑줄을 긋고 누군가도 '내 글이 좋아서 밑줄을 긋는' 날이 올 것이다.


* 참고문헌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림태주 지음. 웅진 지식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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