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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Jun 05. 2023

작별 연습


인천국제공항 제1 여객터미널.

B 게이트 한 편에 앉아 문을 바라본다. 열렸다 닫혔다, 사람들이 한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전광판에서 프랑크푸르트 발 아시아나 항공 1시 17분 도착을 확인하고 확인한다.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오려면 1시 40분은 넘어야겠지 하면서도 문 앞을 서성인다. 지금 시각 1시 20분.


3월 18일, 둘째는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고민에 빠진 딸을 내몰았다.

"가라. 가서 온전히 너로 살다 와라."

3년 전 한 달 정도 머무른 스페인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둘째는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발렌시아, 그라나다, 말라가, 론다, 세비야를 거쳐 포르투갈로 향했다. 리스본과 포루트를 돌고 스페인 북부를 거슬러 올라가더니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 사진을 보내왔다.

 

여행은 사람을 키운다. 그 당연한 명제를 몸으로 깨달은 적이 있다.

5년 전 첫째 딸은 교환학생이 되어 헝가리로 향했다. 한 학기의 짧은 수업을 마치고 첫째는 유럽을 반바퀴 돌고 아이슬란드에 가서 오로라를 보고 왔다. 7개월 만에 만난 첫째 손에는 제 몸만 한 가방이 들려있었다. 아빠가 차를 세우러 간 사이 집 문턱을 넘기 위해 내가 가방을 들려고 하자 첫째가 말렸다.

"엄마, 이 거 못 드세요. 제가 할게요."

"너도 힘들잖아."

"엘리베이터 없어서 전 이 거 들고 숙소 5층까지도 올라갔어요."

나보다 작은 아이가 가방을 번쩍 들고 집으로 들어섰다. 심장이 시큰거렸다.

'이제 이 아이는 아이가 아니구나.'

그때 나는 23년 전, 기어 다니던 아이가 상을 붙잡고 '끙'하며 처음 두 발로 서던 모습을 떠올렸는데...


둘째는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두 달 반 전, 둘째가 떠날 때보다 심장은 더 두근거렸다.

카톡으로 2, 3일에 한 번 얼굴을 보고 소식은 매일 전했다.

둘째는 헝가리를 떠난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학회 출장 간 언니를 만났다. 한국에서 공수해 간 음식을 받아 든 둘째는 재충전을 마치고 독일로 향했다. 잘츠부르크, 하이델베르크를 거쳐 드디어 스위스. 물가가 '살인적'이란 말에 고민을 했는데 가보니 좋더란다.

"배가 고파도 행복해요."  

시간 맞춰 페이스톡을 하면 둘째가 보여주는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풍경이 '그림 같았다.' 그 그림 속에 담긴 둘째를 보면서 또다시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잘 보내주는 엄마가 돼야지.'

내가 크지 못해서, 내 작은 마음이 아이들 앞 길에서 큰 바위가 되지는 않을까? 고속도로 깔아준다고 아이가 가고 싶은 길을 막고 선 것은 아닐까? 돌아보고 돌아봤다.

둘째가 보내 온 스위스 뮈렌 마을과 마테호른 사진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서는 안된다. 때가 되면 부모는 아이 뒤로 물러서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은 부모 마음의 크기와 비례한다. 진정한 작별을 위해선 부모도 아이도 커야 한다. 서로 떠나보내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작별연습을 하면서 둘째를 기다린다. 다시 문이 열린다. 아, 저기! 머리를 돌돌 말아 올리고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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