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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Jul 08. 2023

전쟁놀이

2023년 5월 31일 아침 6시 41분 위급 재난문자가 울렸다.

나와 남편은 다음날 유럽에서 돌아오는 딸을 마중하기 위해 서울의 한 호텔에 있었다. 잠결에 놀라 휴대폰을 찾았다.  문자 내용은 경악스러웠다.

"[서울특별시 ] 오늘 6시 32분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티브이를 틀었다. 그리고 머리로 포물선을 그렸다. 25년 전의 물리학 지식을 동원해 숫자를 셌다. 소리 하나로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심장이 요동쳤다.

포물선을 몇 번 더 그렸다. 조용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는데 화가 났다. 전쟁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들한테 놀아난 것 같았다. 다시 전화기가 비명을 질렀다.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

순간 '알려드림'이 '놀려드림'으로 보였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은 얼마나 놀랐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묻고 싶지 않다. 그날 아침,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공포 속에 모든 것을 숨겼다.


대신 사람들의 공포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자들에게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를 권한다. 읽기는 할까 싶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작가는 아이 둘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조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어머니와 헤어지고 계엄령이 떨어져 나라를 떠날 수 없는 남편과 헤어진다. 아이 둘을 살리기 위해서.


명탐정 코난이란 만화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다.

"살인이란 건 만화 속에만 있었으면 좋겠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전쟁이란 건 소설이나 아이들 오락에나 있었으면 좋겠다. 전쟁이란 걸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전쟁이란 걸 오락쯤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전쟁이란 건 총 쏘고 '으악'하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다시 생명을 5개씩 얻고 뛰어다닐 수 없다. 포탄에 으스러진 다리는 하루 만에 낫지 않는다. 부서진 건물 속에 깔린 사람들은 쉽게 물을 찾지 못한다. 사람들은 티브이를 보면서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에게서 기적을 찾지만 오늘 하루가 기적임을 깨달아야 한다.


올가는 말한다.

"전쟁은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 15쪽"

전쟁은 괴물이다. 사람들을 집어삼킬 뿐이다. 굶주린 괴물은 검은 몸을 틀고 불을 쏘아댄다.

"번화하고 아름다운 나의 도시를 그들은 지구상에서 지우고 있다. 52쪽"

올가는 전쟁이 나자 자신과 아이들 팔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전화번호를 적는다.

네 살 난 딸이 묻는다.

"왜 적는 거야?"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라고 올가는 말하지 못한다.

"우리, 지금 놀이를 하는 거야."

"무슨 놀이?"

"'전쟁'이란 놀이."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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