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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Jul 15. 2023

시간의 질


어스름한 새벽, 밤의 수분이 날아가기 전에 눈을 뜬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차 한잔을 내린다. 커피도 좋지만 상큼한 과일차나 꽃 차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새벽부터 덥다면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냉차로 준비한다. 밤이슬이 아직 시리다면 뜨거운 차를 끓여 두 손에 감아쥔다. 이층 테라스에 나가 어스름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본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내려앉는 바람을 마주 본다. 솔방울의 홀리는 향기를 주워 담고 새들의 소리를 그린다.


옛날, 대학교 도서관 한 귀퉁이에 앉아  바랐다. 아무 생각 없이 책만 읽고 싶다, 꿈을 꾸었다. 친구가 말했다.

"꿈이 참 소박하구나."


그 소박한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접고 아이 둘을 다 키워놓고도 바쁘다. 빨래니 식사니 하는 일상부터 집안 큰일들이 머릿속에서 줄을 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은 찌뿌듯하고 머리는 무겁다. 어느새 해는 하늘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까치떼가 울어대며 매를 쫓는다. 에 밀려 꽁무니를 빼며 도망가는 매 한 마리를 보는 재미는 있다. 빈 손으로 돌아간 매는 새끼를 지키고 있던 암컷에게 한 번 더 구박을 받을지도 모른다. 날아오르는 마음을 낚아채듯 전화가 온다. 반가운 일보다 번거로운 일이 많은 전화. 이번에도 광고전화다. 제 소리만을 떠들어대야 하는 마케터분들에게 죄송합니다, 한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들은 프로니까, 마음이 상하지 않겠지, 하면서도  마음에는 무거운 덮개 하나가 내려앉는다. 수신차단을 하고 조성진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튼다.


나는 매일 꿈을 꿀 수 있고 매일 꿈을 이룰 수 있다. 내 꿈은 소박하니까. 그전에 할 일이 줄을 서 있을 뿐이다.

오늘은 휴대폰을 꺼 놓을까 하다가 인터넷을 무의식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꿈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일상을 한쪽에 접어 놓는다. 습관처럼 시간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의 질이 중요한 거야."

지금부터 5분 동안 난 나의 꿈을 이룬다. 과거를 잘라버리고 미래에게 구걸하지 않고 현재를 방석 삼아 앉는다.

딸이 어제 저녁에 구워 놓은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상큼한 레몬향이 풍기고 잘게 다진 레몬 조각이 씹힌다.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더하자 온몸에 향기가 퍼진다.

뻐꾸기 한 마리 짝을 찾고 바람은 갈 길을 간다. 매는 다시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내 꿈을 이루는 시간. 책을 편다. 질 좋은 시간이 몸을 부풀린다.

아침 풍경. 지난 비에 모두 별탈 없으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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