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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Sep 27. 2023

추석


서울 갈 짐을 싼다

난 역귀성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틈에 앉아 서울 간다

내 짐은 갈아입을 속옷 두 장, 원피스 한 벌

화장품도 필요 없다

어머니 거 쓰면 된다

세면도구도 필요 없다

엄마 꺼 빌리면 된다


내 여행 가방 속엔 어제 따온 고추 네 봉지

꽈리고추 아삭이 고추 청양고추 그냥 고추

내 가방 속엔 오늘 따온 밤 두 봉지 노각 세 개

재작년 옮겨 심은 배 나무에 달린 배 두 개

그 밑에는 남편이 담근 꾸지뽕 청과 술, 술이



서울 갈 마음을 싼다

가서 고운 말 해야지 예쁜 말 해야지

화가 나도 웃고 힘들어도 웃어야지

추석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어야지

시어머니 모시고 맛난 거 사 먹어야지

친정엄니 만나면 맛난 거 사 드려야지


내 마음속엔 지나온 세월 다섯 봉지

매운 시간 덜 매운 시간 달았던 시간 그냥 시간 시간

내 마음속엔 오늘 쌓을 추억 두 봉지 후회 한 개 

“매일 한가위만 같아라.”

친척어른 한마디에 눈이 커졌지

“그런 심한 말씀을…” 철이 없었지 철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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