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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Sep 21. 2023

본심에 올랐으니 별을 따야지

9월 19일 비룡소 역사동화상 당선작 발표가 있었다. 사전에 연락이 없었으니 탈락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응모한 공모전이니 어떤 작품들이 본심에 오르고 당선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휴대폰을 열었는데 눈에 한 줄이 새겨졌다.

"기차를 그리는 아이"

 화면 속에 내가 응모한 동화 제목이 있었다.

...


그런 날들이 많았다. 응모하지도 못한 공모전에서 당선작들을  살펴보았다. 심사평을 읽으며 부러웠다.

"본심에 올라 심사평이라도 받아봤으면..."


그런데 내가. 아니 내 동화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 있었다. 4 편의 본심 선정작 중의 하나였다.

심사평이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의 부드러운 평가에 '그래도 내가 잘했구나' 했는데... 심사평을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잘했다가 아니었다.

 활활 타 오르는 붉은 줄이 보였다.

"너 여기까지야."

줄을 긋고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쫓아가 머리를 낚아채고 싶은데... 난 그 붉은 줄을 넘어갈 수 없다.

"내 동화 속의 아이들은 어쩌지? 이대로 나의 동화는 삼켜져 버리는 건가?"

부둥켜안아보지만 나도 안다. 못난 글이라는 것을...


본심. 네 마음, 내 마음도 아닌 본심이다. 본 심사...

내 동화를 누군가 심도 있게 보아주었다니 감사하다.

'이 게 책이 될까?' 한순간이라도 고민해 주었다니 감사하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은 암흑이다. 난 최선을 다 했는데 아니란다.


솔직해지자.

나는 얼마나 치열했는가?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했는가? 

최선을 다 하긴 했다. 내 수준에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돌아본다.

이유? 쓸 수밖에 없어서?

그런데 왜 공모전에 연연하지?

...

사람들의 인정?

아니다. 솔직해지자.

내가 공모전에 연연하는 이유는 작가라는 타이틀이다. 다시 그 작가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인정해 주는지 아닌지와 상관없다. 문제는 나의 시간이다.


전업주부가 되고 시골에 이사 온 뒤 제일 힘든 것은 나의 일정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일정을 물었지만 단지 미리 예약된 친구나 가족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내가 왜 밤을 새우고 고민을 하며 갈등하는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나도 말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 시간을 보장받고 싶었다. 나의 글쓰기 시간들을.


사람들은 말한다.

"주위 사람들 시선 신경 쓰지 마. 네가 중심을 잡아야지."

'그래. 난 글을 쓰고 싶어서 써. 이번 주까지  글 한 편을 마무리하려고 해.'

"급한 건 아니지? 이번 주에 놀러 가면 안 될까?"


"거기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심심하지 않아. 하루가 모자라.'

"도대체 뭐 하고 사냐?"

'말하고 싶지 않아. 내가 왜 말해야 하는데?'


솔직해지자.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원했다.

나의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방에 처박혀 되지도 않는 글을 쓸 명분을 얻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을 못 한다.

동화를 쓰고 소설을 쓰고 있다고.

왜 내가 글을 쓰는지 이유를 찾고 변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본심이란 에 올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오르고 보니 당선은 더 아득하다.

나의 시간들이 부서져 날아올랐다. 하늘의 별이 되었다.

본심에 오른 아이들을 불러 별을 따러 가야겠다.

당선이 안 됐으니 심심할 것이다.

"얘들아, 나오너라. 별 따러 가자.

망태 메고 장대 들고 뒷동산으로..."


내 글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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