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비룡소 역사동화상 당선작 발표가 있었다. 사전에 연락이 없었으니 탈락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응모한 공모전이니 어떤 작품들이 본심에 오르고 당선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휴대폰을 열었는데 눈에 한 줄이 새겨졌다.
"기차를 그리는 아이"
화면 속에 내가 응모한 동화 제목이 있었다.
...
그런 날들이 많았다. 응모하지도 못한 공모전에서 당선작들을 살펴보았다. 심사평을 읽으며 부러웠다.
"본심에 올라 심사평이라도 받아봤으면..."
그런데 내가. 아니 내 동화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 있었다. 4 편의 본심 선정작 중의 하나였다.
심사평이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의 부드러운 평가에 '그래도 내가 잘했구나' 했는데... 심사평을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잘했다가 아니었다.
활활 타 오르는 붉은 줄이 보였다.
"너 여기까지야."
줄을 긋고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쫓아가 머리를 낚아채고 싶은데... 난 그 붉은 줄을 넘어갈 수 없다.
"내 동화 속의 아이들은 어쩌지? 이대로 나의 동화는 삼켜져 버리는 건가?"
부둥켜안아보지만 나도 안다. 못난 글이라는 것을...
본심. 네 마음, 내 마음도 아닌 본심이다. 본 심사...
내 동화를 누군가 심도 있게 보아주었다니 감사하다.
'이 게 책이 될까?' 한순간이라도 고민해 주었다니 감사하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은 암흑이다. 난 최선을 다 했는데 아니란다.
솔직해지자.
나는 얼마나 치열했는가?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했는가?
최선을 다 하긴 했다. 내 수준에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돌아본다.
이유? 쓸 수밖에 없어서?
그런데 왜 공모전에 연연하지?
...
사람들의 인정?
아니다. 솔직해지자.
내가 공모전에 연연하는 이유는 작가라는 타이틀이다. 다시 그 작가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인정해 주는지 아닌지와 상관없다. 문제는 나의 시간이다.
전업주부가 되고 시골에 이사 온 뒤 제일 힘든 것은 나의 일정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일정을 물었지만 단지 미리 예약된 친구나 가족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내가 왜 밤을 새우고 고민을 하며 갈등하는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나도 말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 시간을 보장받고 싶었다. 나의 글쓰기 시간들을.
사람들은 말한다.
"주위 사람들 시선 신경 쓰지 마. 네가 중심을 잡아야지."
'그래. 난 글을 쓰고 싶어서 써. 이번 주까지 글 한 편을 마무리하려고 해.'
"급한 건 아니지? 이번 주에 놀러 가면 안 될까?"
"거기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심심하지 않아. 하루가 모자라.'
"도대체 뭐 하고 사냐?"
'말하고 싶지 않아. 내가 왜 말해야 하는데?'
솔직해지자.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원했다.
나의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방에 처박혀 되지도 않는 글을 쓸 명분을 얻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을 못 한다.
동화를 쓰고 소설을 쓰고 있다고.
왜 내가 글을 쓰는지 이유를 찾고 변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본심이란 것에 올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오르고 보니 당선은 더 아득하다.
나의 시간들이 부서져 날아올랐다. 하늘의 별이 되었다.
본심에 오른 아이들을 불러 별을 따러 가야겠다.
당선이 안 됐으니 심심할 것이다.
"얘들아, 나오너라. 별 따러 가자.
망태 메고 장대 들고 뒷동산으로..."
내 글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