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까치가 우리 집 소나무 위에 집을 지었다. 까치들은 마당에 내려앉아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멍진이 밥을 훔쳐 먹기도 했다. 한참 신혼살림을 준비할 때는 마당에 굴러다니는 멍진이 털을 모아 갔다.
멍진이가 처음에는 까치를 잡겠다고 뛰어다니더니 나중에는 시늉만 하고 지금은 신경도 안 쓴다. 끔벅끔벅 쳐다보고 만다. 멍진이와 까치는 그렇게 서로에게 풍경이 되어갔다.
까치 새끼들도 호기심이 강하다. 부모가 자리를 비웠을 때는 나와서 놀다가 부모 오는 소리가 들리면 사사삭~.
신혼살림을 차렸던 까치들이 새끼들을 낳았다. 까치 새끼 세 마리가 어느 날 번갈아가며 머리를 내밀더니 몇 달 후 사라졌다.
새끼들이 빨리도 큰다 싶었는데 한 해만 살고 집을 비웠다. 원래 한 해만 사는 건지, 청소하기 싫어 새 집을 지으러 간 건지, 아니면 까치의 10% 정도가 한다는 이혼을 한 건지 어쨌든 집이 비었다.
그 녀석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까치들은 매일 찾아오고 매일 운다.
까치가 집을 지었던 소나무에는 아직도 까치나 박새들이 찾아와 집을 보고 간다.
어릴 적 까치 울음소리를 듣고 종일 반가운 손님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반가운 손님도 반갑지 않은 손님도 오지 않던 그날은 참 지루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스러운 마음이 컸고 배신감마저 들어 지는 해를 보며 울었다. 반가운 손님이 몹시도 필요했던 그날, 그 손님만 오면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버텼던 그날, 까치 울음소리만이 희망이었는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단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는 수많은 말들 중의 하나가 몸에 새겨져 가끔 꿈틀거린다. 이제 어릴 적의 서러움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더 이상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오늘도 까치가 또 우는구나, 오늘은 박새가 우는구나, 산비둘기가 우는구나."
서양에선 새들이 노래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왜 새들이 울까 하며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문득 새들은 노래하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니란 걸 깨닫는다. 너나 나처럼 할 말이 많은 새들이 있다. 친구를 부르기도 하고 외로워서 짝을 꼬시기도 하고 때론 잘못했다고 타박하기도 한다.
신혼살림을 차렸던 까치들이 몹시 시끄러운 날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내다보니 까치들도 육아 스트레스가 큰지 한 마리가 짝꿍을 들들 볶는다. 계속 '째재재잭' 대고 다른 한 마리는 머리를 덜렁대면서 딴 청을 피운다.
새들도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바쁘다. 까치가 나를 위해 반가운 손님을 모셔 올 시간 따위는 없다.
관심 없다며 멍진이는 눈을 감아버렸다
오늘 아침에도 까치 한 마리가 바쁘다. 보아하니 게으른 짝꿍에게 화가 났는지 목소리가 급하다.
"이 까치야, 벌레 한 마리 더 필요하다니까."
까치 말을 못 알아 들어서 다행이다. 내 세상도 버거운데 저 세상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새들도 때론 울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나를 깨우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만 구시렁대, 눈 뜰 수 있는 아침에 감사하라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전에 먼저 반가운 손님이 누군지 헤아려 봐야겠다.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