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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Dec 20. 2021

나의 위대한 글쓰기 쌤

따르오리다


잘 아는 학생 하나가 서울대 사범대에 원서를 냈다. 주위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했고 그 학생은 수시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정시로 들어갔다. 그것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성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면 서울대 물리학과에 갈 성적으로 왜 사범대에서 떨어졌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성적이 너무 좋아서'라며 웃었다.


공지영의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보면 주인공 딸이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하는 말이 있다.

'부모님' 모셔와가 아니라 '보호자' 모셔오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어리석은 나는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그 차이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 선생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은 공부가 어려운 줄 아는 선생님이다. 그냥 공부하니까 성적이 잘 나오는 사람은 모른다. 공부할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왜'라는 단어를. 왜를 혼자 잘 풀어내는 사람은 모른다. 왜가 얼마나 무거운 단어인지. 왜가 풀리지 않고 거듭 쌓이다 보면 가야 할 길을 막아버리고 세상을 무너뜨려버린다는 사실을.


 둘째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중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학교에 적응하느라 고생할 때였다. 하루는 아이가 물었다. 왜 더하기에서 숫자들이 등호를 넘어가면 빼기가 되냐고. 천성적으로 이과인 남편과 큰 아이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남편은 뭐라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고 큰 애는 "왜가 왜 왜야. 원래 그런 거야."라고 했다.


그때, 국민학교 2학년 때의 내가 생각났다.

"왜 덧셈과 곱셈이 같이 있으면 괄호가 없어도 곱셈부터 해야 돼요?"

내 질문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아이들의 시선이 전부 나를 향했고 선생님은 입을 씰룩거렸다. 난 묻지 말아야 하는 것을 물었던 것일까? 선생님 표정을 살피던 아이들이 하나둘 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여전히 이해가 안 돼서 집에 돌아와 다시 물었다. 서울대 수학과를 나오신 아버지에게. 하지만 뼛속까지 이과였던 아버지가 해주시던 설명은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와닿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버지 눈에서 실망의 빛을 본 것 같아 억지로 아는 척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작은 것들이 쌓이더니 고등학교에 가서는 수학이란 것은 아마존 밀림 속 알려지지 않은 족속이 쓰는 언어로도 들리지 않았다. 저 먼 은하계 어디선가 떠도는 외계인의 언어보다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가 어떻게 물리는 잘해서 물리학과에 갔는지는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대학에 가서야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물리 철학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전에 나는 수학에 지쳐 나가떨어져 버렸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교실 밖으로 나서는데 한 친구가 큰 소리로 물었다.

"이 책 누구 거야."

"'소려'거지 누구 거겠냐. 우리 과에서 그런 책 읽은 사람이 쟤 말고 누가 있냐."

다른 친구들이 맞장구치는 소리가 들렸다. 책을 뺏듯이 받아 들고 도서관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여기도 내 세상이 아니었구나. 저들에게 나는 외계인일까?'


둘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수식으로 나열해서 풀어보았다. 그래도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가 흐흐 웃으며 말했다.

"얘네들이 하는 소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엄마도 그래. 얘네들도 자기들만의 언어가 있거든. 아마도 이 등호 표시는 거울 같아. 거울을 보면 오른손과 왼손이 바뀌잖아." 그러다가 수학이란 애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애들이다도 아니고 모르다가 모를 애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 둘의 이야기는 거울 너머로 넘어가면 그 세상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고생하겠다로 흘러갔다.

그런 둘째는 지금 스페인어 학과에 다닌다. 중국어도 잘하고...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게 다르다. 수학을 만든 사람들은 그 언어가 편했던 거고 소설이나 시를 쓴 사람들은 그 세계가 편했던 것이다. 내 언어와 세계를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 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내가 이상한 것도 아니다. 어쩌다가 다재다능해서 양쪽 세상을 모두 통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죽하면 그런 사람을 천재(天才), 하늘의 재주라고 부르겠는가.


공부가 어려운 줄 아는 선생님이 학생들을 이해하기 쉽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을 쉽게 파악하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쳐줄 수 있다. 학생들과 같은 언어를 쓸 수 있다.


돌고 돌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글쓰기 선생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글을 잘 써서 고민 없이 술술 글을 써나가는 사람은 하늘에서 선물(gift)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술에서는 재능이 중요하니 우리가 읽는 많은 작가들 중에서는 그런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신이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이 원망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천재가 아니지만 글을 쓰고 싶은 걸.

어린 시절에는 '명작(?)'이란 것만을 골라 읽었는데 이젠 나 같은 사람들이 쓴 책이 더 좋다. 이리저리 깨지면서도 열심히 쓰는 사람들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쓰다 보면 이렇게 좋은 글도 쓸 수 있구나. 더 보고 더 배워야겠다. 다짐한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선생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못 써도 잘 쓰고 싶은 사람은 선생이 필요하다. 그럴 때 천재 앞에 가서 머리를 조아려서는 안 된다. 우선 내 수준에 맞는 글쓰기 선생님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선생님 말을 따라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이제 가르칠 게 없구나, 하산하거라"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처음부터 글은 잘 써야 하는 줄 알고 살았다. 그런 사람만이 글을 쓸 자격이 있다고 수없이 좌절했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저 먼 우주 속만을 헤매고 있었다.


이젠 내 속부터 보련다. 내 언어부터 이해하고 글을 쓰려고 한다. 가장 좋은 선생님은 바로 나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열심히 불 때고 밥 하면서 스승을 따른다. 스승이 입을 들썩인다. 이제 좀 정신을 차렸구나.

'빨리 하산해서 브런치 속 스승님들을 찾아가고 싶은데...'

내 맘 속의 말을 어떻게 들으셨는지 스승님이 아직 멀었다고 크게 노하신다. '너 자신을 알라' 타이르신다.

 

역시 나의 가장 위대한 글쓰기 쌤은 바로 나다. 나를 너무 잘 알아주신다.

하산할 날을 위해 열심히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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