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이야기
One Drive가 소환한 추억
<성수동 대림창고 갤러리 카페> 캔버스에 유화, 80x65cm, 2019년 11월
알람 소리에 눈이 떠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한 쪽 눈만 간신히 뜬 채 화면을 쓸어내리니 예닐곱 개의 알림들이 와 있다. 몇 개는 빠르게 지우고 몇 개는 남겼다. One Drive의 '*년 전 오늘' 도 그대로 뒀다.
5분 후로 설정된 두 번째 알람을 이제 더 이상 누워 있으면 안 된다는 신호로 알고 겨우 침대에서 벗어났다. "으으으~" 곡소리 내며 부엌으로 와서 냉수 한 잔 마시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몸의 습관을 뒤쫓아 가던 몽롱한 정신이 냉기에 화들짝 놀란다. 하루 중 제일 효율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아침인데도 늘 상쾌하지 않다. '진짜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지!' 지키기 힘든 다짐을 또 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아침을 잘 챙겨 먹여 보내고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만들어 졸음과 싸워볼 시간이다. 마음은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고 싶지만 오롯이 나의 것인 이 시간 -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의 기쁨이 더 크다. 노트북을 켜 유튜브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마신다.
본격적인 아침 독서를 시작하기 전, 찬찬히 보려고 남겨뒀던 One Drive 사진들을 열어보았다. 추억의 사진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것이다. 잊고 있었던 아이들의 옛 모습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 사진을 보면서 알게 된 건데 몇 년 전에 했던 일들을 올해 같거나 비슷한 날짜에도 하고 있는 경우가 꽤 있었다. "어! 우리 *년 전에도 같은 날짜에 **를 했었네!" 이런 식이다. 사람의 욕구나 행동은 일정한 주기로 되풀이 되는 듯하다.
오늘은 큰 아이가 등장했다. 2019년 4월쯤 성수동 대림창고카페에서 내가 찍어준 사진이었다. 우리는 그때 term break로 한국에 들어와 있었고 방학 때면 지내던 서울 본가가 근처였다. 옛 사진들을 뒤져 다시 확인해 보아도 4월에 갔던 것이 분명한데 어떤 이유로 오늘 아침에 등장한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예전엔 창고였었는데 갤러리 카페로 탈바꿈한 장소였고 상당히 핫플이었던 곳이었다. (지금도 그런가?)
그날 찍은 카페 내부 사진
과연 창고였었던 옛 이력을 드러내는, 위아래로 높고 넓어 탁 트인 공간, 천장에 매달려 있던 예술적인 구조물과 벽에 걸려있던 그림들 그리고 세련된 카운터가 멋스러웠던 곳이었다. 코로나라는 대재앙이 지구 전체를 서서히 집어삼켜가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비교적 잘 방어하고 있었을 때였다. 벌써 3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림은 그로부터 반 년쯤 지나 호주에서 문득 생각나서 그렸다. 그리움이 있었던 것 같다.
성수동에 공장들이 많았었다는 사실을 나는 정말 잘 알고 있다. 성수동에 있는 초등(국민) 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그때의 성수동 모습을 아는 나에게 성수동의 현재는 늘 너무 놀랍다. 기억 속의 그곳과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화학 약품 냄새가 났었다. 공장에서 나오는 냄새였다. 화학 약품이 분명했을 텐데도 어떤 냄새는 좋아서 일부러 쓰읍 들이 마셨고 어떤 냄새는 너무 역해서 숨을 참고 그 앞을 뛰어 지나갔다. 하지만 아침 등굣길에 굳게 닫혀있던 공장들이 활발히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늘 재미있었다. 공장문들이 열려 있었고 아저씨들이 때로는 웃통도 벗은 채 길까지 나와 작업을 했다. 그중 집으로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두고 있던 곳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유리 공장이었다. 정확히는 유리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던 것 같다. 역시 거리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은 공장 안에 활활 불을 뿜는 어떤 기구가 있었는데 그 옆에 한 아저씨가(아저씨들이?) 긴 꼬챙이에 풍선껌처럼 부풀어 오른 흐물흐물한 유리를 끼워서 작업을 했다. 유리는 말랑말랑한 젤리 같기도 했고 비눗방울 같기도 했다. 아저씨 손에서 여러 번 모양을 바꾸던 유리는 순식간에 단단한 유리병이나 유리잔이 되어 공장 바로 앞 길바닥을 채워갔다. 햇빛이 닿은 그 작품들은 눈이 부시도록 반사광을 쏘아대며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그 장면이 어찌나 신기했던지 넋을 잃고 바라보던 아이가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아저씨의 손놀림도 정말 화려했는데 지켜보는 꼬마들을 관객 삼아 자신의 마술쇼를 즐기고 계셨을 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 지나 다시 찾은 성수동에서 그때 유리공장이나 다른 공장들의 위치를 나는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그 갤러리 카페가 공장 혹은 창고였었다는 사실이 반가웠을 뿐이었다. 우리 엄마는 성수동에 살았을 때 강 건너 강남땅을 사뒀던가 일찌감치 그 동네로 이사 갔던가 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셨는데 지금 성수동의 모습을 보신다면 또 어떤 말씀을 하실지 궁금하다.
그날, 트리마제 앞을 지나갈 때 큰아이는 저기에 BTS 정국이 산다며 저기 살면 그의 이웃이 되어 가끔 마주칠 수도 있지 않겠냐며 반색했다. 우리는 잠시 트리마제로 이사 가는 상상을 하며 "엄마가 돈을 많이 벌든지 네가 나중에 돈을 많이 벌든지 하자"면서 하하하 웃었다.(그런데 형에게 증여했다는 소문이... 정국님, 아직도 거기 살고 있으시나요?)
One Drive 추억 소환 서비스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한 번씩 과거에 살고 있다. 그런데 늘 그것들이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되살아난다. 내가 사진을 찍었을 때마다 그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조만간 짬을 내어 그 카페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그 카페가 어떻게 변해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하나의 추억을 사진에 담아 오고 싶어서다. 몇 년 후,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을 나를 One Drive가 불러 세울 수도 있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