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혼자 살 수 없는 이유

다용도실에 (8시간) 갇혀 깨달은,

by 혜담


'탁'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몇 분 후에 벌어질 불운한 사태를 짐작도 못했다. 여전히 바닥에 떨어진 쌀알들을 쌀통에 주워 담으며 이 귀찮은 상황을 만든 나의 부주의함을 탓했다.


1.5평 정도 되는 좁은 다용도실에서다. 그날 오후에 배달된 10kg 쌀자루를 기울여 쌀통에 덜어 담다가 바닥에 쏟았다. 누구나 한두 번은 (혹은 더 자주) 겪게 되는 일이다. 가뜩이나 바쁘고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난 늦은 밤, 게다가 아직 늦더위가 남아 있는 날 좁고 답답한 다용도실에 쪼그려 앉아 쌀을 주워 담고 있으려니 짜증이 심했다. 조명도 희미해서 떨어진 쌀알들이 어느 구석으로 숨어들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이제 거의 주워 담았구나 생각했을 때 열려있는 문 아래 쌀알들을 발견했다. 나는 문을 밀었고 그때 분명 '탁' 소리가 났었다.


문이 잠겼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나는 보이는 쌀알들을 마저 쓸어 담고 주워 담았으며 마침내 이 귀찮은 작업이 다 끝났다고 기뻐하며 허리를 펴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려 했을 때 그제서야 알게 된 거다. 내가 갇혀 버렸다는 사실을.


다용도실 문 손잡이가 고장이라는 것은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알았다.

집 보러 왔을 때 잡고 돌려보지는 않았으나 손잡이는 분명 제자리에 잘 끼워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막상 이사 와서 보니 잡고 돌리면 쑥 빠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정시키는 나사 같은 것이 분실된 것 같았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전화 걸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집주인에게 알려 고쳐달라 하라 했다. 고민했지만 어차피 2년도 채 안 살고 나갈 집이고 부엌 옆 다용도실이라 수시로 들락거릴 테니 '그냥 열어놓고 살지 뭐' 하며 사진만 찍어두고 양쪽 손잡이를 빼서 서랍에 넣어뒀다. 그때의 그 귀차니즘이 화근이 된 것이다.


사실, 1년 반 살면서 문이 잠긴 적이 몇 번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난 다용도실 밖에 있었고 손잡이를 꺼내어 끼워 돌리면 문이 열렸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에서 잠긴 것이다. 문 손잡이는 두 개가 한 쌍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었다. 손잡이가 없이 잠긴 문은 안에서는 열 수 없었다. 내가 다용도실에 들어갔을 때 시간은 이미 밤 12시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쌀알 주워 담기를 하다 보니 12시를 넘겨버렸다.


안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며 아들 이름을 불렀다. "oo야 문 열어줘~!"

5분, 10분 간격으로 열 번 이상 문을 두드리고 고함치며 아들을 목메이게 불렀지만 아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는 상태고 유튜브를 보던 TV와 선풍기도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집은 현재 온 식구가 각자의 사정으로 호주, 서울, 경기도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 집에는 나와 아들만 산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아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랑 단둘이 PC방, 건담샵, 노래방, 보드카페, 식당 등을 하루 종일 신나게 쏘다니며 딴 세상을 경험하고 온 날이었다. 너무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져 깨어나지 않았다.


손잡이 하나만 끼워 돌리면 간단히 열릴 문이 별 짓을 다해도 열리지 않았다.

처음엔 쌀자루를 자르기 위해 가지고 들어간 가위를 문틈으로 끼워 쑤셔보았다. 소용없었다.

손잡이가 빠진 구멍에도 끼워 좌우로 움직여 보았다. 소용없었다.

괜히 문에 흠집을 내어 수리해 줘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숨기고 싶은 구질구질한 살림들이 가득한 다용도실에 손잡이를 대신해 볼 만하거나 이 사태를 해결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혹시, '맥가이버'라는 인물을 아는가? 문득, '그'라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방 탈출'을 할까 궁리도 했다.


새벽 1시가 넘어가자 문 두드리기와 소리 지르기를 멈췄다. 혹시라도 이 늦은 시각에 내가 내는 소음이 이웃에게 피해를 줄까 우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난 날이 밝으면 구조될(?) 운명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바꿨다. 이 특별한 경험을 그냥 받아들이자. 다음 날이 일요일이니 내가 깨우지 않으면 아들은 푹 자다가 8시~9시쯤이면 일어날 거다. 운이 좋으면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깰 수도 있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였다.


땀이 쏟아지고 숨도 막혀 답답했다. 최대한 옷을 벗었다. 창문이 없으니 공기가 들고날 곳은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문틈 그리고 손잡이 구멍뿐이었다. 그나마 샤워도 했고 양치질도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주저앉아 이 상황에 대해 곱씹다가 허리가 아파 새벽 3시쯤 좁은 바닥에 다리를 꺾고 누웠다. 바닥에는 미처 주워 담지 못했던 쌀알들이 꺼끌 거렸다. 잠을 청하려 했지만 누운 자리가 불편했고 행여 새벽에 깨 화장실 가는 아들을 놓칠까 졸다 깨다 했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들었나 보다. 아침 7시 3~40분쯤 아들의 기척을 들었고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문 열어 ~ 엄마 다용도실에 갇혔어!"


아들이 손잡이를 찾아 끼우고 돌리니 진짜 5초 만에 문이 열렸다. 그곳에 거의 8시간을 갇혀 있었는데 말이다. 아들은 한 소리를 들었다. "넌 어쩌면 그렇게 못 듣고 잘 수가 있냐!" 하지만, 아들이 뭔 죄란 말인가!


8시간을 그 좁은 공간에서 버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1. 사소한 귀차니즘의 폐해가 클 수 있구나.

2. 의외의 장소에서, 특히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집안에서 너무 어이없는 사고를 겪을 수 있구나.

3. 평소에 모로 누워 새우 모양으로 자는 사람이라도 강제로 다리를 꺾고 자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잠을 잘 수 없구나.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혼자 사는 사람들은 사소한 사고로 인해 죽음을 맞을 수 있다.'라는 것, 그리고 '위기에 빠진 누군가를 돕는 데 큰 품이 들지 않는다.' 라는 사실이었다. 짧으면 5-6시간, 길면 8시간 후면 당연히 문이 열리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불편했고 고통스럽기조차 했다. '고독사', '사고로 인해 매몰되었거나 고립되었다가 사망'같은 상황도 생각해 보았다.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날 때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 감정이입이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난 주변을 자주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홀로 지내시는 집안 어른들이나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들어 알 수는 있어도 어떤 모양으로 죽을지는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나의 죽음'이 어떤 이벤트가 될지 늘 두렵고 걱정이다. 남은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살면서 추구했던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더럽히지 않는 존엄한 죽음을 누구나 소망한다. 나도 그렇다. 그런 죽음을 맞지 못한 이들이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집만 해도 네 식구가 세 집에 흩어져 살고 있다. 몸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자주 연락해 안부를 묻고 살피도록 해야겠다.


그날 난 이 무용담을 전하며 가족들에게 지시했다.

서로들 너무 바쁘고 피곤하여 전화나 카톡을 못하는 날이 있을 때는 카톡에 '●●(점 두 개)' 만이라도 남기자! 'OK'이라는 사인으로 읽을 테니!


ps. 며칠 전 새 세입자 계약이 완료된 후 집주인에게 부탁했다. 상황이 이러니 다음 세입자를 위해 입주 전에 문손잡이를 꼭 고쳐놓으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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