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홍시

by 혜담


코스모스가 바람을 붙들고 춤을 추면

누런 창호지도 다그닥 다그닥

몸을 흔들어 댄다.

찻상 위에 버들강아지 꽂은 항아리 꽃병

찻상 아래 연보라색 진보라색 찻싸개가 곱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 ...

마른 풀 사이를 뛰어다니며 세던 감나무들

긴 작대기 들고 휘휘 젓고 찌르니

아기 머리통만 한 감들이 한 바구니다.


탱자나무 울타리 뒤 졸졸졸

개천 물소리가 또렷해지고

대청마루에 벌렁 누워 눈으로 좇던

마지막 구름마저 뿔뿔이 흩어지면

저녁 해 긴꼬리가 꼴깍 넘어간다.

앞산에서 튀어 오른 큰 새 두 마리가 서쪽 하늘로 날아갔다


가까워지는 헛기침 소리

할아버지 낚싯대가 돌담 위를 삐죽빼죽 걸어오면

오늘도 '자라'를 잡으셨을까?

나는 몹시 궁금하다.

정지 가마솥 솥뚜껑 위에 할머니의 행주질이 부지런해졌다.


몇 해 뒤 서울역,

삼양 라면 박스들 사이에

서 계시는 작고 마른 우리 할머니

서둘러 딴 떫은 감들을 이고 지고 홀로 오신

원더우먼 우리 할머니

나는 다디단 감 먹을 생각에

철없이 신이 났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공부하고 직장 생활까지 하며 인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 사람으로 살아왔다. 지금은 경기도민이지만 여전히 도시에 산다. 집에서 50 미터 이내에 근린 생활 시설이 있고, 쇼핑몰, 백화점이 지척이고 전철역이 도보로 10분 거리 안에 있는 주거지를 선호하며 실제로 그런 곳만 찾아다니며 살고 있다. 운전하기를 매우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갑자기 전원생활을 시도해 볼 용기도 부지런함도 없는 사람이지만 내게도 한 장의 그림처럼 남아 있는'시골'의 모습이 있다. 그곳은 어렸을 때 잠시 지냈던 할아버지 할머니 댁이다. 정확한 기간은 모르지만 아마 1~2년 정도였을 것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가 국민(초등 아님)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시골 아이로 살았다.


정지(부엌) 문 옆 처마 아래 내 몸보다 큰 항아리 속으로 똑똑똑 떨어지는 빗물

탱자나무 울타리 발치에 무성한 잡초와 그 사이를 꿈틀꿈틀 기어가는 벌레들,

강 낚시 다녀오시는 할아버지 손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물고기들

뒷밭에서 막 따온 정구지와 보라색 가지로 맛깔나게 무친 가지 나물

내 빈 밥그릇에 부어지던 뜨끈하고 구수한 숭늉

대청마루에 하루 종일 꼼짝 않고 누워 시시각각 모이고 흩어지며 삼라만상을 만들어 내는 구름을 바라보는 일

앞산 머리를 선홍색으로 물들이는 해 질 녘의 황홀함.

길게 선형으로 때로는 화살 머리 모양으로 저녁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새떼들

그리고 뒷밭에 자라던 몇 그루인지 모를 수많은 감나무들


내 어린 시절의 가장 강렬한 기억이 친구들과 뛰어놀던 기억이 아니라 이때의 기억이라는 것이 늘 놀랍다. 사실, 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 늘 혼자 다니며 생각이 많았던 좀 외로웠던 아이였다.


감나무집 손녀였던 까닭에 어릴 적부터 맛난 감들을 워낙 많이 먹어선지 지금도 나는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로 감을 꼽는다. 해마다 가을이 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서울 사는 당신의 자손 7남매와 그들의 자손들을 먹이시려고 라면 박스에 감을 가득 채워 올라오셨다. 라면 박스 여러 개와 보따리들을 들고 짠 나타나시면 "아이고, 이걸 혼자 다 어떻게 들고 오셨어요~!" 반갑고도 미안한 인사를 건네던 어른들이 생각난다. 요즘이라면 택배로 간단히 부치면 될 일인데 할머니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셨겠다. 처음엔 딱딱하고 색이 옅던 감들은 겨우내 라면 박스 안에서 말랑말랑 짙은 감색으로 익어갔고 우리들은 하나씩 꺼내 손가락 사이로 감물을 줄줄 흘리면서 베어먹고 핥아먹고 세상 행복했다.


엊그제 저녁 먹으러 간 곳 후식 코너에서 아이스 홍시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인가 찬 것이 당기지 않게 된 이후로 아이스 홍시에 손이 가는 일이 드물다. 마침 가을이어선지 감 맛 본지 오래되어선지 냄큼 몇 조각을 접시에 담아 왔다. 하지만 이가 시리고 너무 찼다. 입안에 넣고 굴리며 녹여 먹는 것이 아이스 홍시의 묘미일 텐데 차다는 감각에 몰두하다 보니 감맛을 느낄 겨를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몇 년 전만 해도 냉동실에 쟁여두고 저녁밥 먹고 나면 후식으로 애들도 먹고 나도 먹었는데... 시력도 나빠지고 치아도 부실해지고 마음이 쓸쓸했다.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우리 집 감을 얼려 먹었던 기억이 없다. 알이 너무 굵고 커서 얼리기 쉽지 않았던지 얼릴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던지 그랬을 거다.



홍시를 얼려 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부터라고 한다. 경북 청도에서 감농사를 짓던 이해두씨가 아이스 홍시를 처음 고안해 냈다. 청도는 청도 반시로 유명하다. 청도 반시의 유통을 고민하던 이해두씨는 원양어선에서 잡은 고기를 급랭하여 장기간 보관을 한다는 사실에 힌트를 얻었다. 1995년 경천 영농조합 법인을 설립하여 아이스 홍시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청도 반시는 씨가 없어 먹기 편하고 고 수압이나 식물성 연화제로 껍질을 벗겨서 식감을 개선한다. 지금은 누구나 편리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간식이 되었고 미국을 비롯 전 세계에 수출을 하며 한국의 맛을 널리 알리고 있단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http://www.agrinet.co.kr)



나는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인지 감을 보면 자주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집은 감나무집이라고 불렸어. 감나무가 무지무지 많았지."라며 감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돌볼 사람이 없어지자 감나무들은 시들시들해지더니 감도 잘 열리지 않았고 할머니의 서울행은 점점 단출해졌다. 지금은 감나무 밭을 갈아엎고 콘크리트를 부은 자리에 냉동 창고를 세워 막내 작은 아버님이 농산물 유통업을 하고 계신다. 시골집도 허물어져 세련된 전원주택이 되었고 도시에서 놀러 온 가족들의 편안한 잠자리가 되어 주고 있다. 이제는 달고 맛 좋던 커다란 감들도 추억의 시골 기와집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마트 진열대에 놓여 있는 감은 내겐 너무 잘디 잘아 손이 잘 안 나간다.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지 감들이 작아졌기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나에게 가을 자체였던 감은 꽁꽁 얼어붙은 꼬마가 되어 제 몸통만큼이나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얼음과자로 변신했다. 모처럼 가을 기분 내려고 한 입 베어 문 아이스 홍시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아이스 홍시는 물론 죄가 없다. 세월이 유죄다. 그냥 단단하고 찐득하고 한 알만 먹어도 배가 부르던, 아기 머리통만 한 홍시가 먹고 싶다.


혹시, 어디 가면 찾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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