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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Jan 01. 2022

너의 겨울은 어떠니

추운 밤을 나고 있을 네가 떠올라서

우리 집은 주택가 골목에 있다. 따라서 집에 가기 위해서는 골목 초입부터 5분 정도를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집 바로 옆에는 꽤나 큰 단독 주택이 있는데 높은 담이 있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몇 개 올라야 한다. 담 때문에 주택과 마당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한다. 몇 달 전, 살던 분들이 이사 가고 난 후에는 빈 집이 되어버렸다. 현재까지도 그 집은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공사가 시작될 것 같다.


그 비어있는 공간 때문이었을까. 우리 골목에는 길냥이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골목을 올라가다 보면 고양이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사람이 오가지 않는 빈 집에서 고양이들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 작디작은 생명체를 나만 본 것은 아니었다보다. 빈 집 앞에서 서성거리면서 고양이를 찾는 사람, 사료와 장난감을 챙겨 와서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 그렇게 고양이들은 우리 골목의 일부가 되어가는 듯 보였다.


11월이 되자, 순식간에 기온은 떨어졌고 고양이들은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흰 고양이가 먼저 골목을 떠나고 검은색 털에 흰색 무늬가 눈에 띄었던 고양이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물과 사료를 챙겨서 빈 집의 계단 쪽으로 가면 고양이들은 눈치를 채고 어디선가 빠르게 달려왔다. 사료를 내어주면 급하게 밥을 먹고 또 어디론가 달려가버렸다. 고양이들과 나의 만남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배고픔을 채우고 가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 아이들이 골목을 지날 때마다 마음에 걸렸다.


겨울이 계속되던 중, 몇 주전부터 눈에 밟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회색 빛에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인데 덩치는 조금 있는 편이고 반짝거리는 눈을 가졌다.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따르는 것이 이 친구의 특징이다. 떠난 고양이들은 조금이라도 챙겨주고 싶어서 불러도 오지 않거나 피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 이상, 사람을 피하지 않고 멀리서 부르면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 어딘가 신경 쓰이는 아이였다.


골목 입구에서 자주 보여서 '마스코트' 냥이라고 불렀다


사실 이 아이도 골목을 금방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골목에는 추위를 견딜 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따로 고양이 급식소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골목 위쪽으로 올라가면 구청에서 만들어둔 길고양이 쉼터가 있기에 그곳이 훨씬 나을 것이다. 


내 생각과는 달리, 이 고양이는 계속 우리 골목 주변을 맴돌았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골목에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길가에 놓인 박스에 앉아서 몸을 녹이기도 하고 놓인 사료나 물을 먹기도 했다. 어제는 집 계단을 내려가던 언니가 발견하고는 고양이를 부르자, 집 앞까지 와서 언니를 기다렸다.


나는 이 친구에게 '재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사실 언니와 나, 엄마만 알고 부르는 이름이다. 어딘가 용맹하고 무늬가 있는 모습이 재규어 같다는 의미로 지었다. 지나치게 단순한 작명이다. 어쨌든 오늘, 재규가 있는지 보고 싶어서 일부러 천천히 골목을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은 재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이어폰을 끼는 찰나에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를 따라서 가보니 어디선가 나타난 재규가 있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곧장 슈퍼로 가서 캔 사료를 하나 샀다. 재규를 만난 김에 캔을 뜯어서 앞에 놓아주었다. 재규는 영하의 날씨에 몸을 떨면서도 사료를 먹었다. 가늘게 떨리던 몸이 아직까지 아른거린다. 내일 다시 재규를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오늘 내가 본 모습이 마지막일 수도 있고 어느샌가 갑자기 골목에 나타날 수도 있다.


겨울에 하는 한 가지 습관이 있다. 바깥 날씨가 궁금하면 창문을 살짝 열어서 손을 내밀어본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날씨를 가늠하곤 한다. 요즈음 창문으로 손을 내밀면서 무슨 옷을 입을지에 대한 생각보다, 떠난 고양이들과 재규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이 아이들은 겨울을 잘 버텨내고 있을까. 해가 뜬 낮도 이렇게 차가운데 캄캄한 밤은 얼마나 추웠을까. 따스한 온기가 가득한 방에 발을 붙이며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겨울을 생각하면 매서운 추위도 있지만, 계절만이 가진 낭만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 꽁꽁 얼어붙은 손을 녹여주는 뜨거운 커피, 곳곳을 채우는 작은 눈사람들. 하지만 이 낭만 가득한 겨울이 너희에게 너무나도 혹독할 것을 알기에, 이번 겨울은 조금 더 무거운 마음을 안고 골목을 지난다.


담 위에 앉아있던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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