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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Dec 23. 2021

상상이 현실이 되던 순간들

강원도 양양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

“선생님, 저는 매일 눈 뜨는 게 즐거웠어요. 오늘은 학교에서 뭘 할지 너무 궁금해서요.”


수업의 마지막 날, 우리만의 수료식이 끝나고 칠판 앞에 앉아 울고 있는 준성이가 나에게 건 넨 말이었다. 온드림스쿨 다빈치교실*은 우리가 직접 기획한 예술 교육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참여하고 싶은 활동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서류와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도, 활동 참여가 확정된 후에 교육을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팀원들과의 만남 자체가 불가능 해졌고, 계속되는 전염병으로 인해 교육 진행 여부도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1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미약하게나마 확산세가 줄어들었고 교육을 진행하러 떠날 수 있었다. 우리 팀은 수업을 위한 교보재들과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한 아름 안고 그렇게 강원도 양양에 도착했다.



월요일에 있을 첫 수업을 위해 떨리는 마음을 안고 팀원들과 함께 수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5일 동안 사용할 우리 반 칭찬 온도계를 만들고 수업에 사용할 자료들도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칭찬 온도계의 맨 위에는 우리가 마지막 날 준비한 선물인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 라이언 문구세트에 대한 힌트로, 라이언을 그려 넣었다. 이 작은 그림이 아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크게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선물이 공개되는 마지막 날까지 칠판에 붙어있는 칭찬 온도계를 바라보면서 항상 관심을 가졌다.



늦은 밤이 되어서 첫날의 수업 준비가 끝이 났고, 과연 교실에 어떤 친구들이 앉아 있을지에 대한 기대를 가진 채, 인구초등학교로 향했다. 4학년 반에 들어서자, 몇몇 친구들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마스크 위로 빛나는 아이들의 두 눈이 보였다. 첫 만남이었기 때문에, 수업에서는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활동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자기소개 쪽지 돌리기 놀이와 함께 우리 수업에서 중요한 요소인 ‘스토리텔링’을 이끌어가는 데 도움을 줄 동화를 소개했다.


동화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동화의 전개를 상상해보고 이야기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아이들이 망설임 없이 던지는 창의력 가득한 말과 생각들이 교실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순간들이 정말 놀라웠고, 첫 수업을 하면서 마지막 낭독극 창작까지 아이들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교실에서 아이들이 만드는 대본이나 낭독극의 완 성도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어떤 제한도 없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했다.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어떤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하는 모든 말과 생각이 정답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수업의 초반부에는 자신을 소개하는 문장을 쓰는 데에 주저하던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나를 불러 조심스럽게 자신은 이 질문들에 하나도 대답할 것이 없는데 어떡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 아이에게 정말 사소한 경험과 생각도 너를 소개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고, 함께 좋아하는 것, 취미, 평소에 하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누자, 아이는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어떤 이야기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던 아이였지만,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아이는 자신을 소개하는 모든 질문에 자신만의 대답을 적어나갔고, 이후 활동에서도 누구보다도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대본을 만들 때는 뛰어난 대사 창작력과 스토리 구성력을 보여주었고 낭독극에서는 유일하게 자발 적으로 1인 2역을 맡아 연기하기도 했다. 5일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의 변화를 눈으로 보는 뜻깊은 순간들이 존재했다.


두 번째 날에는 낭독극에 등장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자유롭게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캐릭터에는 나의 특성이 반영되기도 하고, 캐릭터만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을 가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앉은자리에서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동물 캐릭터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놀라움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님들의 별다른 지도나 개입 없이도 자유롭게 독창적인 모습과 특징을 가진 캐릭터들이 종이 위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완성된 캐릭터들과 함께 그 등장인물들의 목표, 능력, 성격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나뭇잎 위에 적어 우리 반 나무를 만들어보는 활동을 진행했다. 나뭇잎도 아이들이 직접 색종이에 그림을 그려 만들었는데,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의 나뭇잎들이 교실 뒷벽에 하나의 특별한 나 무를 만들어냈다. 빼곡히 붙어있는 나뭇잎들을 통해 아이들의 생각과 꿈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교실에서 수업을 마치면, 약간의 휴식 시간 뒤에 곧바로 모두가 수업 준비에 집중했다. 오전에 수업이 모두 끝나기 때문에, 많은 자유 시간이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팀은 하루하루의 활동이 다음 날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두 번째 날, 아이들이 만든 캐릭터는 다음 날 만드는 대본의 주인공들이 되었고, 그 대본을 바탕으로 아이들은 연극에 필요한 소품과 음향을 직접 제작했다. 따라서 아이들이 한 활동의 결과물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그 과정에 힘이 부치기도 했지만, 다음 날 아이들이 준비해온 교육 자료들을 활용해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세 번째 날은 팀을 나눠, 대본을 써보는 활동이 진행되었다. 사실 연극 스토리와 대본을 짧은 시간 안에 구성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던 수업이었다. 우선 보물찾기 놀이를 통해 두 팀으로 구성하고 ‘인구초등학교가 위기에 빠졌다’라는 전체적인 상황과 두 개의 짧은 대사를 제시해, 이것과 관련한 내용을 팀별로 상상해보았다.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 의 머릿속에서 상황에 대한 상상과 생각들이 꺼내지기 시작했고 하나의 스토리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대본 구조에 연결성을 더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내용을 정리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스토리와 대사의 창작은 아이들이 도맡아 진행했다.



수업 이후에 선생님들이 대본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거쳤지만, 전체적인 아이디어와 구성은 모두 아이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만들어낸 대본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낭독극 공연의 전날인 네 번째 날에는 자신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브로치를 만들어보고, 완성된 대본을 보며 음향을 제작했다. 대본을 낭독해보며, 연극 속 상황에 대한 이해, 인물의 감정을 생각해보고 목소리로 표현해보았다. 낭독극이라는 형식이 처음이라, 어렵고 낯설 법도 한 데 아이들은 감정을 담아 대사를 낭독하고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습을 마친 후에는  대본에서 필요한 음향을 찾아, 직접 제작했다. 새가 날아가는 소리는 종이 두 장을 펄럭이며 만들었고 문을 여닫는 소리는 창문, 사물함, 교실 문 모든 소리를 녹음해 비교해가면서 가장 적합한 소리를 모두 함께 찾아 나갔다.



마지막 날은 최종적으로 낭독극을 연습하고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공연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진지한 태도로 연습에 임했고, 두 팀 모두 성공적으로 무대 위에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생명력을 더하고, 그 캐릭터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아이들이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접해왔던 어떤 연극보다도 뜻깊은 연극이었다. 이 활동에 참여한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하러 간 입장이었지만, 아이들의 생각과 상상력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배울 수 있었고 문화예술만이 가 지는 따뜻한 힘과 영향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교육을 기획할 때만 해도 우리가 원하는, 우리가 꼭 아이들을 위해 전달하고 싶은 교육을 상상했다. 그 상상이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고민하고 기대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구초등학교 4학년 친구들을 만난 첫날부터, 우리의 상상은 눈앞에서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생각했다 던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독창적인 현실들이 만들어졌고, 모두가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인구초등학교 4학년 친구들과 팀원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온드림스쿨 다빈치교실은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방학 기간의 교육 소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201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교육 지원 사업 중 하나입니다. 대학(원)생 선생님들이 농산어촌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과학IT,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 재능 기부를 통해 수업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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