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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Aug 10. 2021

마음의 수면을 조절하는 방법 (1)

글과 영상과 외출 사이 균형 잡기

근래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보통의 나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해야 할 일을 하기 싫다, 딴짓하고 싶다,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그냥 진짜로,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궁금하지 않은 영상이나 쇼핑몰의 근황, 이미 본 내가 덕질하는 연예인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고 싶지도 않았다. 근래에는 책을 많이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많이 읽었다기보다 책만 읽었다. 독서도 딱히 생산성 있는 행위는 아니지만 그나마 무언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책 읽은 것 외에는 없다. 2021년 8월 10일 현재를 기준으로 내가 읽은 책이 무엇인지 나도 좀 곱씹어봐야겠다.



1.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이건 오늘 다 읽었다. 사실상 하루 만에 다 읽은 건데 분량이 많지 않았다. 단편은 아니면서 가벼운 두께의 책이 읽고 싶어 고른 책이다. 한국문학 외에는 거의 읽지 않는데 간만에 외국 소설을 읽었다.

책을 사게 된 경위는 한때 내가 매주 챙겨봤던 민음사 유튜브 채널을 보고 구매한 것이다. 한때라 함은 김화진 편집자님과 정기현 편집자님께서 말줄임표 시즌1을 진행하셨을 때를 말한다. 물론 지금도 종종 챙겨보는 채널이다. 하지만 두 분의 케미는 진짜 너무 재밌고 유익하기까지 했다. 가끔 등장하시는 검은둘리 선생님도!! 한국문학 컨텐츠 외에도 박혜진 해외문학 편집자님의 알려드림 코너도 열심히 챙겨봤었다. 잘 모르는 해외 작가들의 생애나 작품들에 대해 짧은 시간 안에 요약해서 제시해주는 영상이라 집에서 혼자 밥 먹을 때 틀어놓은 적이 많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래서 작품보다 작가를 계기로 알게 된 소설이다.


https://youtu.be/PAE-27LbHWM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 프랑수아즈 사강. 어쩌다보니 또 다시 김영하 작가가 떠오르게 되는... (말줄임표)


프랑수아즈 사강은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부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삶의 족적을 지닌 인물인데, 매우 이른 나이에 이룬 직업적 성취와 명예 덕에 "명예와 성공을 꿈꾸는 상태에서 일찌감치 벗어날 수 있었다"고 스스로도 밝힌 바 있다.


이른 나이의 성공 덕인지, 작가의 전반적인 생애는 '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치 다사다난했다.



소설의 제목과 관련하여, 민음사 판본에 실린 작품 해설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 '성격이 곧 팔자'라는 셰익스피어식 경구를 상반되는 기질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환기시키는 것 외에도, 뻔한 전개나 통속적인 결말 대신 삶의 의표를 찌르는 통찰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독자는, 역시 열 네살 연상이었던 클라라슈만을 평생 마음에 품었던 요하네스 브람스를 떠올리게 되는데, 대개의 프랑스인들이 브람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한 브람스 전기 작가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 대중으로 하여금 브람스에게 흥미를 갖게 만드는 건 거의 절망적인 시도라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브람스의 연주회에 상대를 초대할 때는 이 질문이 필수라는 말도 이다.)을 떠올리면, 이 제목은 "모차르트를 좋아하세요"와는 다른 울림을 갖는다. (162쪽)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서른 아홉 살의 여성 '폴'과 그녀보다 몇 살 연상의 남성 '로제', 스물 다섯 살의 남성 '시몽'이다. (성별을 밝혀 적은 이유는 소설을 처음 읽을 때 내가 인물의 이름을 통해 짐작한 성별과 실제의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작품은 마치 통속적인 드라마의 플롯처럼 여성 주인공이 두 남성 인물 사이에서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갈등을 겪는 양상을 세 인물 각각의 심리 변화를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웹툰 플랫폼에서 흔히 발견되는 여성향 웹툰 - 한 명의 여자 주인공이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남자들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주된 플롯인 - 이 생각나기도 했다. 드라마나 웹툰과 같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양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시각적으로만 로맨스물을 주로 보다가 오직 글로만 읽으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가장 좋은 점은 인물들의 외적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잘생긴 배우가 등장해서 멋지고 다정한 말을 하는 것은 시청자의 몰입감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의 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이건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고 어쩐지 본격적으로 공부하듯이 조사하고 정리해야 할 부분 같긴 하지만, 이광수의 <무정>과 관련된 한 연구논문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서술적 특징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건 나중에 여유가 되면 책을 다시 읽어가면서 확인해야 할 부분인 것처럼 보이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소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문장이 좋은 소설과 이야기가 좋은 소설. 언어 감각이 좋은 작가가 있고, 이야기 감각이 남다른 작가가 있을 것이다.* 물론 두 가지가 융합된다면 베스트겠지만, '나는 뭐든지 다 중간이야' 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여행을 가면 누가 더 계획적인지, 누가 더 관광보다는 휴식을 선호하는지 드러나게 되는 것처럼 작가와 소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전자의 경우를 보다 좋아하는 독자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읽을 때의 재미를 생각하면 서사가 잘 짜여진 것이 텍스트를 대할 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인내심의 총량을 경감시킨다는 점에서 보다 좋겠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오래도록 그 책을 기억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 자체보다 읽는 도중에 종이 끝을 접고 아래에 밑줄을 치게 만든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번역된 외국 소설이라는 점에서 가슴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문장이나 구절을 찾기에는 어려웠던 것 같다. (아예 밑줄을 안 친 건 아니지만) 그러나 이러한 특징이 결코 작품의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다. 왜냐면 이야기가 진짜 재밌거든. 그리고 결말 또한, 독자로 하여금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여운을 느끼게 하는 문장으로 끝난다. 영화로 치면 킬링타임에 적합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민음사, 37쪽 참고)



어쩌다 보니 원래 쓰려던 의도와는 다르게 독후감처럼 되어 버렸다. 다음에 마무리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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